[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 여섯 번째 108배]
무릉도원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낙산사에서 내려와 점심을 먹고 근처 갯배를 타고 아바이마을에 갈까 하다 해가 떠 있는 동안 다녀오기 좋은 신흥사에 가보기로 한다. 신흥사는 익숙한 이름은 아니었는데 속초, 강릉, 양양, 고성 인근 천년고찰을 찾다 발견했다. 석사 시절 답사로 갔던 금강산 끝자락 절을 찾다 여기가 거긴가 했는데 그곳은 금강산 화암사였던 듯하다. 그때 주지스님께 대접받았던 차가 무척이나 맛있었는데.
3시 반쯤 신흥사가 있는 설악산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아직 해가 있긴 했는데 넘어가는 해라 사위에 그늘이 지기 시작해 추웠다. 신흥사가 설악산 국립공원 초입에 있어서 덕분에 설악산도 구경도 하게 됐다. 입장료는 없다. 예전에 설악산에 왔을 땐 입장료를 냈던 것 같은데 이젠 무료다. 찾아보니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되면서 2023년부터 국립공원에 있는 여러 사찰들의 입장료가 사라졌단다.
토요일 오후의 신흥사는 낙산사처럼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설악산 입구에는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꽤 있었는데 신흥사 경내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했다. 설악산 입구에서부터 꽤 걸어 들어갔는데 가는 길이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내가 생각하던 절의 모습 딱 그대로다.
신흥사 입구에 다다르니 한약 달이는 냄새가 났다. 나도 모르게 킁킁대며 냄새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절 앞에 있는 찻집에서 십전대보탕 냄새가 향긋하게 퍼지고 있었다. 몸을 좀 녹일 겸 한 잔 할까 찻집으로 들어가려 하니 남편이 뒷덜미를 잡는다. 너무 늦으면 해가 떨어져 어두워진단다. 이따 나올 때 시간이 되면 마시기로 하고 입맛을 다시며 지나쳐 간다.
사천왕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가자 나도 모르게 "와" 하고 입이 벌어졌다.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모습을 담고 싶어 연신 셔터를 누르며 사진을 찍어봤는데 사진으론 담기지 않았다. 그 시간 그 분위기, 그 공기, 그 햇살, 그 바람.
절 전체가 넘어가는 햇살을 받아 뭔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을 만큼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경내에 사람이 없던 건 아니었는데 모두 다 조용히 관람하는 분위기여서 거슬리는 소리가 없었다.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사람이 없어서일까. 낙산사에서처럼 세속적인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극락보전에 들러 108배를 하기로 한다. 낙산사에 이어 두 번째 108배다. 여태 하루에 두 번 108배를 한 적은 없어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셈이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가 운을 뗀다.
"20배만 하면 안 돼?"
아이가 이미 낙산사에서 108배를 했으니 신흥사에서는 20배만 하자고 한다.
"넌 20배만 해.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난 108배를 할 테니 아이에게 힘들면 20배만 하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이번에도 108배를 해낸다. 엄마가 하니 지기 싫었나 보다. 여주 신륵사에서도 힘들다며 20배만 하자고 했다가 내가 108배를 하니 따라서 108배를 완주했었는데, 이번에도 불타는 경쟁심으로 위기를 이겨낸다.
이로써 1월 31일부터 시작한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의 목표인 10회 중에 6회를 달성했다. 일주일만의 일이다.
절을 마치고 나오니 다리가 아까보다 더 후들거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은 더 개운했다. 낙산사에서처럼 추웠는데 땀이 났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
경내를 마저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아까 올라가는 길에 봤던 십전대보탕을 마시고 싶었는데 뒤로 돌아 나오느라 못 먹었다. 냄새가 참 좋았는데. 108배를 마치고 쉬면서 차 한잔하고 오면 몸에 온기가 확 퍼질 것 같았는데. 내려오는 내내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다.
아이는 올라가는 길, 내려오는 길에 계속 재잘댔다. 말하는 게 너무 좋단다. 말하면서 걸으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니 말을 해야 힘이 난단다. 터덜터덜 내려오는 길 신흥사 뒤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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