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양양 낙산사] 절에서 떠들어도 돼?

[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 다섯 번째 108배]

by ordinaryclip
2026. 2. 7. @양양 낙산사 [다섯번째 108배]


말씀은 가만가만.

구례 쌍계사 계단 어딘가에 새겨져 있던 글귀.




"이번 주말엔 강원도 어때?"


108배를 하러 천년고찰에 가야 한다고 했더니 남편이 귀찮은 듯 아이랑 둘이 다녀오라고 한다. 나는 운전을 잘 못하니 기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가 아빠를 위해 108배를 한다는데 정성이 갸륵하지 않냐 했더니 마지못해 그러겠다고 한다.


일찍 일어나 출발하려고 했는데 전날 늦게 들어온 남편이 늦잠을 자서 9시쯤 길을 나선다. 각자 하루치 여행짐을 꾸리고 차에서 먹을 간식 꾸러미를 챙긴다. 지난주 공주에 갈 때 해보니 짐이 많을 필요가 없어 가볍게 떠난다.


이번에도 잠 잘 곳을 예약하지 않았다. 비수기라 가서 상황을 보고 정하기로 한다. 마치 주사위를 돌려 여행을 떠나는 티브이 프로그램처럼.





주차장에 내려 일주문을 지나니 저 멀리 하늘 아래 엄청 커다란 불상이 보인다. 나무로 뒤덮인 언덕 위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해수관음상이 온화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완만한 경사로를 올라 홍예문과 사천왕문을 차례로 지나 경내로 들어간다. 화재 이후 다시 다 지어진 낙산사는 천년고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신상(?) 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각의 단청도 선명하고, 경내에 심어놓은 나무들도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인다.


671년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낙산사는 2005년 봄 불이나 사찰의 대부분이 소실됐다. 이때 보물로 지정된 낙산사 동종도 불에 녹았다 한다. 복원할 때 김홍도가 그린 낙산사도를 참고했다 한다. 화마에 휩싸인 낙산사를 뉴스로 보던 게 기억난다. 매끈하게 깔린 길을 걸으면서 화재가 있기 전에 왔을 때 낙산사가 어땠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여기저기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가족 단위로 놀러 온 사람들이 여기 서봐라, 저기 서봐라 포즈는 이렇게 해라, 어디 갔냐, 왜 안 오냐며 왁자지껄한 게 시장통 같다. 절이라기보다 관광지에 가까운 느낌.


"엄마, 절에서 떠들어도 되는 거야?"


아이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절에서 크게 떠들어도 되냐고 귓속말로 묻는다. 108배를 다니며 아이에게 절에서는 소곤소곤 말해야 한다고 일러두었다. 다른 이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에티켓을 잘 지켜야 한다고 엄격하게 교육했었다. 그런 연유로 아이는 절에 오면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소곤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인지 왁자지껄한 낙산사의 분위기가 아이 눈에는 이상해 보였나 보다.





소란함을 뒤로하고 대웅전을 찾는다. 한참을 돌아보는데 대웅전이 쓰인 현판이 보이지 않는다. 눈치껏 사람들이 절하고 있는 전각에 들어간다. 전각의 이름은 '원통보전'


찾아보니 낙산사에는 대웅전이 없단다. 원통전 또는 원통보전이라 불리는 전각은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곳인데 낙산사는 창건 때부터 관세음보살과 관련이 있어 대웅전 대신 원통보전이 절 중심에 있단다.


아이와 나는 조용한 원통보전에 들어가 108배를 한다. 처음 들어갔을 땐 우리 말고는 없었는데, 절을 하는 동안 계속 사람들이 들고났다. 다들 시주를 하거나, 조용히 명상을 하거나, 절을 하고 나갔다. 원통보전 안은 하하 호호 소리 지르며 웃고 사진 찍는 이들이 가득한 바깥과 사뭇 다른 분위기라 시공을 초월한 느낌이었다.


70배쯤 하고 있을 무렵 아이가 절을 끝내고 먼저 나간다. 108배를 마치자 몸에 열기가 느껴졌다. 법당 안이 꽤 쌀쌀했는데도 땀이 났다. 밖으로 나오니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어 이마에 맺힌 땀이 식었다. 개운함이 느껴졌다.





절을 하고 나와 절 초입에서 봤던 큰 불상을 보러 언덕을 오른다. 양양 오봉산에 위치한 낙산사 언덕에서는 동해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낙산사'라는 명칭이 인도 어딘가 바닷가에 자리한, 관세음보살이 머문다는 '보타낙가산'에서 따온 거라 한다.


불상의 이름은 해수관음상. 멀리서 봤을 때도 크다고 느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고개를 한껏 쳐들고 봐야 할 만큼 거대했다. 낙산사의 해수관음상은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3대 해수관음상으로 꼽힌다.


낙산사 해수 관음상을 방문한 계기로 우리는 이후 드래곤볼 구슬을 모으듯 보문사와 보리암도방문하게 됐다.




커다란 불상 아래 절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지런히 놓인 신발 뒤로 절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간절해 보였다. 해가 비추는 맑은 날이긴 했지만 아직 겨울이고 바닷바람이 불어 추웠는데 흔들림 없이 의연해 보였다.

해수관음상과 바다가 보이는 전망대 주변은 웃고 떠들며 사진 찍기 여념 없는 사람들로 붐볐다. 사방이 뚫린 언덕에서 신발을 벗고 두 손을 모으고 온몸을 바닥에 붙여 엎드렸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사람들과 대조되는 모습. 108배가 아니라 관광을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같은 공간 다른 분위기.


우리는 언덕 벤치에 앉아 한동안 바다를 바라봤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시끌벅적한 소리를 거르며 자연이 만들어 내는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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