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여주 신륵사] 오늘은 스무 번만 하면 안 돼?

[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 네 번째 108배]

by ordinaryclip


2026. 2. 5. @신륵사 [네번째 108배]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느지막이 일어나 오늘은 아이에게 전철을 타고 여주에 있는 천년고찰 신륵사에 가자고 한다. 여주로 가는 경강선은 기차와 달리 따로 예매할 필요도 없고, 한 시간에 4-5대는 다녀서 언제든 떠나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게다가 40분 남짓이면 갈 수 있고 여주역까지는 환승도 필요 없다. 여주역에서 신륵사까지 가는 버스 시간이 좀 애매하긴 한데 배차간격만 잘 맞으면 대중교통으로도 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 아이에게 나갈 채비를 하라고 한다.


출근 시간이 지난 전철 안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사람이 거의 없어 빈자리도 많고 조용하다. 아이는 오늘도 노선도 공부에 열심이다. 고개를 잔뜩 빼고 출입문 앞에 서서 거쳐갈 역들을 한참 동안 눈으로 훑고는, 만족스러운 듯 내 옆에 다가와 자리에 앉는다. 아이와 나는 각자 책을 읽으며 간간이 고개를 들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낯선 동네의 풍경들을 구경했다.


여주역에 도착해 밖으로 나오니 사람이 없다. 버스터미널에 사람이라곤 우리뿐이다. 휴대폰을 열어 맵을 찍어보니 신륵사까지는 도보로 1시간, 버스로는 20분 남짓인데 배차간격이 길어 오래 기다려야 한다. 걸어갈까 하다 108배도 해야 하니 버스를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 운 좋게 버스가 바로 왔다.




신륵사 사거리 정류장에서 내려 지도를 켜고 남한강을 따라 걷는다. 처음 만난 건물은 여주시립도서관. 점심 때라 아이에게 배가 고프면 도서관 구내식당 체험을 하고 가자 했더니 좋단다. 전날 국회 도서관에 갈 일이 있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어봤는데 그 경험이 재미있었나 보다.


점심을 먹고 내친김에 식당 앞 카페에서 후식을 먹기로 한다. 도서관이 남한강 쪽으로 나 있어서 카페 안 창밖 풍경이 멋져서 끌리듯 들어갔다. 아이는 달콤한 딸기 스무디를, 나는 아메리카노에 땅콩빵이 곁들여진 세트를 시킨다. 점심도 저렴했는데 디저트마저 싸고 맛있어서 횡재한 기분이다. 게다가 식당과 카페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매우 친절해서 환대받는 느낌이 들었다.


도서관을 나와 걷다 보니 여주박물관이 보인다. 신륵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서 구경할 겸 들어가 보기로 했다. 박물관에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았다. 탁본도 하고, 스탬프 투어로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도 인화하고, 전시된 유물로 낱말퀴즈를 완성해서 경품으로 달력도 받았다. 금방 보고 나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체류하게 됐다. 아이가 낱말퀴즈를 풀면서 엄청 재밌어했다.

박물관에서 나와 좀 더 걷다 보니 이번엔 출렁다리가 보인다. 지나쳐 가려는데 출렁다리 위에서 피아노 소리가 나는 바람에 가까이 갔다가 스탬프를 발견했다. 스탬프 투어를 하고 기념품을 얻는데 재미가 들린 아이는 강 맞은편에 있는 스탬프에 욕심을 냈다. 하는 수 없이 다리를 건너 강을 가로지르게 됐는데 다리가 출렁일 때마다 엄청 무서운지 아이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작은 아이 손에 땀이 나는 게 느껴졌다.


이 작은 손을 얼마나 더 오래 잡고 다닐 수 있을까.





평일 오후라 그런지 절은 조용했다. 전날 조계사는 입춘 법회가 있어 엄청 북적북적했는데 오늘 신륵사는 사람이 거의 없어 매우 고요했다. 진짜 절에 온 기분이었다. 물소리, 바람소리, 우리가 걸을 때마다 나는 바스락 소리만 들렸다.


절 입구에 카페가 있었는데 경치가 몹시 좋아 보였다. 신륵사로 오는 길에 들른 도서관과 박물관에도 모두 카페가 있었는데 남한강을 끼고 있어 모두 전망이 좋았다. 카페 안에 차를 마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평일 오후에 이런 곳에 와서 여유롭게 차를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경내로 들어가니 벽돌로 쌓은 탑이 보였다. 벽돌로 쌓은 다층전탑 때문에 고려시대에는 벽절로 불리기도 했단다. 신륵사는 신라 시대 원효대사가 용 아홉 마리가 승천한 연못을 메워 절을 지었다 전해진다. 보통 사찰은 산속에 짓는 경우가 많은데 신륵사는 보기 드물게 남한강이 바라보이는 강변에 세워졌단다. 그래서 옛날에는 육로로 가는 길이 없어서 남한강 나루터에서만 접근이 가능했다고 한다.





"오늘은 108배 말고, 20번만 하면 안 돼?"


대웅전을 찾아 들어가려는데 아이가 말했다. 어제 조계사에서 108배를 하고 하루 종일 종로 구석구석을 누볐더니 다리가 아프단다. 게다가 신륵사로 오는 길 도서관도 들르고, 박물관도 들르고, 출렁다리 건너 여강도 가로지르는 바람에 오늘 써야 할 에너지를 다 썼단다. 그래서 아무래도 오늘은 힘들어서 108배는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아이에게 이건 각자의 마음이니까 하고 싶은 만큼만 하라고 했다. 아이가 엄마도 20번만 할 거냐고 묻는다. 나는 108배를 할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엄마도 20배만 하자고 한다. 엄마는 올해 천년고찰 10군데 108배가 프로젝트라 108배를 하겠다고 했다. 아이에게 힘든데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각자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하자고 했다.



대웅전에 들어가 손을 모아 불상에 인사를 하고 방석을 꺼내 자리를 잡는다.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인 뒤 절을 시작한다. 하나, 둘, 셋... 서른 번을 셌을 때 옆을 보니 아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분명 스무 번을 다 했을 텐데 멈추지 않고 계속 절을 하고 있다.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80배쯤 했을 때 아이가 합장을 하고 조용히 자리를 정리한다. 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곁눈으로 훑으면서 남은 숫자를 마저 채운다. 108배를 마치고 둘러보니 그 사이 법당 안에는 사람들이 늘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아이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 얼굴을 보니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108배를 다 한 거야?"

아이에게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힘들어서 못 하겠다며? 무리한 거 아냐?"

"엄마가 108배한다니까 나도 그냥 했어. 엄마도 하는데 질 수 없지."

걱정이 되어 물었더니 아이가 대답했다.



신륵사를 나와 출렁다리에서 얻은 스탬프투어 종이를 들고 여주 관광안내소로 간다. 두 군데 더 스티커를 모으면 그립톡과 키링을 준단다. 요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스탬프투어에 취미가 들린 아이는 여주의 기념품도 받아가고 싶단다. 많이 걸은 데다 108배까지 해서 힘들 텐데 기어이 스탬프 투어를 완료한다. 기념품을 받은 아이는 피곤한 얼굴이었는데도 엄청 뿌듯해했다.


대중교통으로 신륵사에 와서 돌아가는 길에도 버스를 타야 했다. 지방은 버스 배차간격이 넓어서 시간을 잘 맞춰야 하는데 지도앱을 확인해 보니 돌아가는 버스가 조금 멀리 떨어진 정류장에 곧 도착한단다.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 뛰었다. 108배를 하고 걸어오느라 다리가 후들거렸을 텐데 아이는 잘도 뛴다. 버스를 놓치면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해서 버스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아이가 잘 뛴 덕분에 딱 맞게 탔다.




버스의 종점은 여주역. 해 지기 전에 여주역으로 돌아와 경강선을 탔다. 아이에게 피곤한지 물어보니 괜찮단다. 그런데 혓바늘이 돋았단다. 당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챙겨 온 사탕을 꺼내 아이 하나 나 하나 나눠 먹는다. 시고 달달한 레몬맛 사탕을 오물거리며 생각했다. 뭔가 달라졌다고.


또래보다 성장이 빠른 아이는 종종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오래 걷거나 무리한 운동을 한 날이면 저녁에 다리가 아파 찜질이든, 마사지든, 진통제를 먹든 해야 했다. 어제오늘 2만보에 가까운 걸음을 걸어서 분명 다리가 아플 텐데. 힘들다, 아프다 칭얼대지 않는다.


새삼 아이가 많이 자랐다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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