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dinaryjo Aug 09. 2021

불펜의 시간: 현생에서 아름다운 볼을 던지는 법

이겨야만 하는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법

어떻게 살고 싶냐. 종종 어떤 이들은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라 한다.


그럼 평범의 가치는 무엇일까.


아마도 대답하던 이들이 떠올렸을 중산층의 삶, 소설에 따르면 여가를 가진 삶으로 대변되는 '평범한 삶'은 지극히 유동적이다. 시대에 따라, 어떤 사건에 따라, 평범함이란 선은 비트코인 마냥 시시때때로 요동 친다. 평범한 삶이란 대답은 언뜻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지만,(사실 대부분 그저 둘러 대기용 대답이었을지 모르겠다.) 전적으로 세상의 기준에 의존한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시점에서 부족하지도 않고 낫지도 않는 모나지 않은 삶. 그래서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자는 항상 불안하다. 이 삶은 너무 잘나서 타인들의 시기를 받지 않아야 하며, 또는 너무 못나서 타인들에게 무시를 받아서도 안 된다. 괴로움은 평범함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 언제나 찾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이름이 죄책감이 되었든 무능력함이 되었든 간에.

평범계의 탑이라 불리는 남자


실제로 '평범주의자' 선언을 했든 안 했든 간에 대부분은 저런 위태로운 현생을 산다고 생각한다. 다들 어릴 때 강백호 보며 최고가 되겠단 생각 한번쯤 했겠지만, 택도 없단 걸 깨닫기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극락은 너무 멀지만 나락에 가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사수하려 애쓸 뿐이다. 당연히 그 위치는 그대로 있는다고 주어지지 않는다. 무한히 흔들리는 공 위에서 보통 인간은 불안히 중심을 잡아간다. 알고보면 우리 삶은 이 불가능에 가까운 곡예에 가깝다.


뭐하는 놈인지는 다 몰라도 확실한 건 우리네 인생과 매우 멀어보인다


게임체인저라는 말이 유행이다.


평범한 사람이 게임 체인저가 되어 이런 무한 경쟁의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없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어떤 기준으로 해석할 것인지, 또는 어떠한 지점에서 기뻐할 것인지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자신의 세계와 사회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내 세계의 룰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무작정 사회의 룰에 따를 때, 우리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이 룰에서 이길 수 있는 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인간들의 게임 체인지는 사회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고, 그래야만 한다.


coo'L'ist


소설 속의 혁오는 사실 나같은 비루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평범을 선택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최고의 수준에 올랐지만 그에게도 괴로움이 따르긴 마찬가지다. 어쨌든 사회의 룰은 낙오자를 만들고 그가 낙오자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죄책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혁오는 현실의 룰이 잘못됐다고 여기고 금새 공허함을 느낀다. 그는 이런 야구의 각종 공식 기록을 무시하고, 팀적인 부분에서 손해가 가지않는 그만의 룰을 도착적으로 만든다. 자신이 받는 연봉만큼 적당한 이닝을 던지고 적당히 스트라이크를 만든다. 중간계투로만 나와 이기는 팀을 그대로 이기게만 연결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현생에서 야구를 하지만 혁오 자신의 세계 안에서 현생의 야구는 다르게 해석되고 활용된다. 지젝이 말한대로 현실의 섹스가 자신이 가진 도착에 관한 환상의 받침대로 쓰이는 것처럼, 혁오는 공허한 현실을 '진호리그'라는 환상으로 보충한다.

 


그렇다면 자신만의 기준은 어떻게 수립할 수 있을까.

그 새로운 기준은 이미 자신 안에 있다. 어려운 사람을 돕자든 불의에 저항하자든 간에.

애초부터 우리는 내 안에 기준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어른이 된답시고 잠시 잊고 산다. 아니면 외면하고 산다.

그래서 기준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두 가지를 물어야 한다.

그 기준을 찾을 용기가 있는가.

만약 찾았다면 완벽한 혁오의 폼처럼 현생과 내면에서 모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가.

작가의 이전글 랑종: 공포는 신념을 위협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