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추구미에 관해서

추구미는 가능성을 따지지 않는다.

by ordinaryjo

https://youtu.be/3Rgntw_-f70?si=0QNujsyXeB8uv4gX&t=1048


추구미란, 본인에게 투영하고자 하는 특질, 미래의 나에게 탑재하고픈 요소를 '인물'에게서 훔쳐오는 일이다. 추구미는 본인이 쌓은 서사 위로, 훗날 이어질 챕터에 들어갈 소스를 고르는 일이다. 그리고 훔쳐온 추구미와 본인 사이의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추구미는 '착하게 살아야지' '웃으며 살아야지' 처럼 광범위하거나 추상적이지 않으며, '~OO처럼' 같이 모두가 알만한 인물의 특질을 말함으로써 언어로 전부 포착되지 않는 '느낌'에 의존한다. 그래서, 추구미는 이성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추구미는 가능성을 따지지 않는다. 오직 美, 아름다움이라는 느낌과 정서를 가지고 설정한다.


언어는 개념을 포착하기 유용한 도구일 뿐, 추구미 이전에 추구미가 없었던 건 아니다. 누구나 닮고 싶은 연예인, 놀라운 생각을 가진 예술가의 속성을 좇으며 성장한다. 나 같은 경우엔 돌이켜보면, 추구를 넘어 내재화까지 이룬 사례는 없는 듯 한다. 심지어는 지금 생각해보면 닮고 싶지 않은 추구미까지도 떠오른다. 그렇다고 이런 추구미가 손해를 봤다거나 실패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추구미는 성패를 가르는 미션이 아니다. 그저 자기 완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추구미를 그려보고 나아가고 방황하고 도달하지 못하는 것, 그 자체가 변증법적이고 미학적인 사건이다.


누구를,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추구함의 美를 향유하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추구미가 없는 인물은 노화만 일어날 뿐 시간에 갇혀있는, 동일성에 갇힌 인간이다. 추구미의 즐거움 대신 두려움을 느껴도 불행해진다. 희망 대신 불안을 떠올리고, 즐거움 대신 가능성을 재는 사람은 무언가를 추구할 수 없다. 손해를 보지 않는 일은 높은 확률로 현재와 가깝다. 그 역시 마찬가지로 동일성에 갇힌 인간이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흔즈음에>와 언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