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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육체 안에서 투쟁중인 서브스턴스들에게

많이 늦은 서브스턴스 리뷰

by ordinaryjo Feb 20. 2025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육체와 정신은 어떻게 망가지는가. 

사회의 욕망은 곧 자신의 욕망이되고, 자신에게서 태어난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자신은 살해당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라는 건 영화를 보면 누구나 알았을 내용이다.


나는 stance를 제멋대로 해석한 내 제멋대로의 해석이 더 좋다. 스탠스를 '입장'으로 간단히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면 입장은 수면 위로 드러난 표상이며, 그 기저엔 태도와 신념, 자아가 았다. '입장'은 우리가 갖는 나름의 사고 체계 (aka 개똥철학)를 바탕으로 삐져나오지만, 우리의 입장은 일관적이지 않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라는 물음을 엄마가 물었을 때와 여자친구가 물었을 때는 완전히 다른 것 처럼 말이다. 우리는 누구와 있거나, 어디에 있거나, 어떤 기분에 처해져있을 때 마다 '또 다른 나'를 생성한다. 이렇게 '또 다른 나'를 서브-스탠스로 봐도 되지 않을까? 란 생각에서 나의 제멋대로 해석을 이어가려한다.


아무튼간에 이런 논리로 인하여- 인간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다양한 서브 스탠스가 만들어질테고, 그것은 애초에 단 하나의 '나'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나'이다. 다만, 그것들은 모두 '나'이지만, 모두 내가 바라는 '나'는 아니다. 우리의 육체 안에선 매일 다양한 서브스탠스가 투쟁하고 때론 죽어간다. 다만 스스로 인지를 하지 못하고 어느 날 깨닫게 될 뿐이다. "어, 그러고보니 힙합을 좋아하던 나는 뒤져버렸네?" 하는 식으로.


회사에서의 '나'는 대표적인 서브-스탠스다. 노동자라면 평일 하루 8시간을 '회사-서브-스탠스'로 살아간다.  근데 정말로 평일 8시간만일까? 때로는 일이 너무 많거나 생각이 매몰되어 가끔은 주말에도 '회사-서브-스탠스'로 살아간다. 서브 스탠스들 간에 시간 균형이 무너진다. 이러는 와중에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다른 '서브-스탠스'를 죽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서브 스탠스들은 얼마만큼이나 죽었을까. 


<서브스턴스> 영화는 고어한 영화로 알려져있다. 그럴만하다. 

보면서 실제로 죽어버린(혹은 죽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니 얼마나 잔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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