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백번만 만나줘 >
제주에 살고 있습니다.
제주로 이사 올 때는 그저 들떠서 몰랐습니다. 제주에 살게 되면 부모님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확연히 줄어든다는 것을요.
사실 제주에서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너른 자연과 여유로운 사람들 그 기운 속에서 밝게 크는 아이들. 사시사철 풍요로운 먹거리와 열두 달 열리는 문화행사로 그야말로 오감만족의 삶을 사는 중입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부모님을 자주 볼 수 없다는 점만 빼면요.
해마다 추석 무렵, 부모님은 제주로 오십니다. 일 년에 딱 한 번 부모님을 만나는 시간. 그 시간이 그냥 흘러가지 않도록 부지런히 제주의 곳곳을 미리 다녀둡니다. 좋은 곳을 발견하면 절로 생각합니다. 엄마 아빠와 꼭 다시 와야겠다고요.
여기서 좋았던 곳이라 함은 저희 가족에게 좋은 곳입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엄마와 중증 호흡기 질환이 있는 아빠가 걷기에 불편하지 않은 곳, 사람이 너무 많지 않아서 면역력이 약한 두 분에게 안전한 곳, 여정 중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 다 먹은 후에도 속이 편안한 메뉴, 그러면서도 제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자연과 분위기가 스며있는 곳을 찾아둡니다.
어쩌면 엄마 아빠 덕분에 집순이인 제가 그나마 부지런히 제주 곳곳을 미리 여행합니다. 부모님은 이렇게 아픈 몸으로도 저에게 한 없이 좋은 것을 주는 존재인가 봅니다.
하지만 철없을 때 부모님에게 했던 모진 말과 행동은 여전히 부끄럽고 일 년에 한 번, 삼 박 사일의 제주 여행을 제외하면 딱히 대단한 효녀는 아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을 향한 마음이 계속 자라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갑자기 표현하면 엄마 아빠도 어색할 테니 잡고 싶은 엄마 아빠의 손 대신 운전대를 잡습니다. 각자 안전벨트를 단단히 맨 채 오늘도 출발! 하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으로 출발합니다. 앞으로 5년. 딱 5년만 더. 지금의 모습으로 걷고, 먹고, 제주 곳곳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이 책에는 지난 5년간 부모님과 함께 누렸던 제주 곳곳의 이야기와 그때의 순간을 기록했습니다.
여행의 만족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문제이라서 제가 다닌 곳이 최고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매우 사적인 이야기와 취향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해외여행이 버거운 부모님과 제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가족에게 저의 경험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부모님의 남은 날 중 가장 젊은 날인 지금의 어느 날, 제주를 편안하게 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희 가족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