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한 주 뒤 남편의 큰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양쪽 집 큰 어른의 부고가 같은 시기 우리 부부에게 전해졌다.
달력 속 그림은 봄이지만 내가 사는 제주의 바람이 차고 매섭던 3월. 그 바람을 타고 남편과 나는 서로 번갈아가며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공동 양육자 중 한 명이 자리를 비운다는 건 다른 한 명이 두 배 이상으로 바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의 장례를 마치고, 한숨 돌릴 겸 자주 가는 동네 식당을 찾았다. 남편과 나 사이 맥주 한 병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남편, 앞으로 양가 부모님 생신에는 짧게라도 아이들 데리고 꼭 다녀오자.”
“그래. 한 번 육지에 가면 무조건 양가에 다녀오자.”
“우리 이제 딱 5년 정도 남은 것 같아. 그 이후에는 애들이 가자고 해도 안 따라올 거야.”
“맞아. 게다가 앞으로 우리는 부모님을 백번도 만나지 못할 거야...”
순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식당만 아니었다면 금세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뒤 범벅되었을 것이다. 슬프게도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굳이 따져보았다. 양가 부모님이 앞으로 살아계시는 시간을.
그 최대한을 10년이라고 가장하면,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부모님을 만나도 백번을 채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제주에 사는 나라서 그 일은 더욱 힘들 것이다. 백번이라는 숫자가 넘을 수 없는 큰 벽처럼 느껴졌다. 결국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돼버렸다.
그렇지만 희망한다. 앞으로 엄마를 백번은 더 만날 수 있길. 백한 번, 백 스무 번 그리고 그다음에도 만나고 또 만나면서 영영 이별하지 않기를. 만나면 특별한 것 없이 그저 엄마 곁에 누워 함께 티브이 보는 일이 전부라 해도. 백한 번, 백 스물한 번 그 곁에 눕고 싶다.
언젠가 나도 내 아이를 만날 일이 백번도 채 안 남지 않았을 때. 그때 나에게 엄마가 전해준 온기가 몸과 마음 곳곳에 남아있을까? 그렇다면 좋겠다. 아니, 그래야 한다. 갑자기 분주해진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부탁인데 앞으로 딱 백번만 더 만나줘.”
엄마에게 정말 하고픈 말은 이 말인데, 오늘 점심 뭐 먹었냐는 말로 대신한다.
갑작스러웠던 집안 어른의 부고가 남편과 나의 생을 겹쳐지게 만든다. 이미 겹쳐진 삶이었지만 이번 일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더 포개어진다.
우리는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살고 싶다. 오늘을 충분히 살아서 내일이 와도 후회 없도록. 부모님께 더 많이 전화하고, 더 많이 찾아가자고 약속한다.
슬픔에 마음을 소비하는 대신 지금 그 마음을 나누기 위해 돈과 시간을 쓰겠노라 다짐한다.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는 부모님의 모습에 시선을 두기보다 현재만 바라보며, 지금을 더 소중히 여기며.
그렇게 마음먹자 내 앞에 당도하는 모든 일에도 소중함이 스민다. 가족과 나누는 오늘 한 번의 눈 맞춤, 오늘 한 끼의 식사, 그리고 오늘 한 번의 전화통화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