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막의 꽃>, 영화 <데저트 플라워>
여성 할례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FGM(Female Genital Mutilation), 여성 할례는 아프리카에서 여성의 순결을 지킨다는 이유로 5~6세 여자 아이들의 성기 일부를 잘라낸 뒤 1cm 정도의 작은 구멍만 남겨놓고 외음부를 봉합하는 악습입니다. 심지어 위생적인 환경에서 치러지는 것도 아니어서 많은 아이들이 이 과정 중 세균에 감염되어 목숨을 잃고, 살아남은 여자들은 소변과 생리혈이 몸 안에 고여 여러 질병에 노출되는 부작용에 고통받습니다. 여성의 건강과 목숨을 위협하는 이 실은 결혼 첫날밤 남편만이 제거할 수 있습니다.
전통이라는 명목하에 무려 400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이 악습을 소말리아 출신 모델 와리스 디리가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습니다. 덕택에 2003년 UN에서는 세계 여성 할례 금지의 날을 지정했습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 성기 절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이주하면서 이젠 유럽에서까지 몰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 지구적으로 FGM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에서도 이 정도인데, 만약 와리스 디리가 여성 할례를 공론화시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요?
여성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드러내기 힘든 자신의 경험과 몸에 남은 흔적을 용감하게 고백해 FGM, 여성 성기 절제 종식을 위한 물꼬를 튼 와리스 디리를 소개합니다.
와리스 디리는 1965년 소말리아 어느 유목민 부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부족에겐 여성 할례를 하는 악습이 남아있었습니다. 여성 할례는 부족이 모여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움막에서 돌이나 오래된 칼로 위험하고 비위생적으로 행해집니다. 마취도 안 된 상태에서 몸에 끔찍한 상처를 입은 아이는 보살핌을 받기는커녕 한동안 그곳에 홀로 방치됩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그곳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겁니다. 여기서 운 좋게 살아남은 아이는 계속 삶을 이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아이는 고통 속에 외롭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와리스 디리는 다행히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13살이 되던 해, 또 위기를 맞이합니다. 60살 남자의 네 번째 부인이 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죠. 그녀는 이 결혼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할 바엔 차라리 죽겠다는 각오로 사하라 사막으로 도망칩니다. 그곳은 유목민조차 위험해서 가지 않는 곳이었으나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사막은 더위와 배고픔 그리고 갈증으로 그녀의 의지를 시험했습니다.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 그녀는 마침내 먼 친척이 가정부로 일하고 있던 영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언어도 문화도 전혀 다른 이곳에서 와리스 디리는 새 삶을 시작합니다. 하루는 맥도날드에서 일을 하던 중 사진작가 테렌스 도노번(Terence Donovan)에게 명함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사기꾼인 줄 알고 신경도 안 썼습니다. 그러다 그가 유명 작가라는 걸 알고 있던 룸메이트의 적극적인 권유로 그를 찾아가고 모델로 데뷔하는 행운을 붙잡게 됩니다.
모델 커리어는 순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말 못 할 고충이 있었습니다. 바로 비자 때문에 해야 했던 위장 결혼과 어렸을 때 받은 여성 할례 후유증이 그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위장 결혼은 정해진 기간을 유지한 뒤 벗어날 수 있었으나 후유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기가 봉합된 상태라 소변을 보는데 30~40분씩 걸리고 생리를 하는 건 더 큰 고역이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친구들과의 대화로 그녀는 여성 할례가 아프리카만의 악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당장이라도 수술을 하면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게 참 어려웠습니다. 불편하기만 한 이 흔적이 결혼 전까지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전통이라고 어렸을 때 워낙 세뇌가 된 탓이었습니다. 갈등 끝에 그녀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병원에 찾아갑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녀와 같은 나라 출신의 남자가 통역을 하러 들어옵니다. 그는 의사의 말을 그대로 통역하는 대신 와리스 디리를 비난하고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야 맙니다. 그의 악담이 마음속에 아직 남아있던 두려움을 다시 자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숨 걸고 사하라 사막을 걸어서 건넌 그녀에게도 깊게 세뇌된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건 이토록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계속된 친구들의 격려 덕택에 다시 용기를 냈고, 결국엔 그 악습의 흔적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톱모델이 된 와리스 디리는 1997년 마리끌레르 잡지 인터뷰에서 자신이 여성 할례 피해자임을 최초로 고백합니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에서만 행해지던 여성 할례가 전 세계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2003년까지 그녀는 UN의 여성 성기 절제 근절 특별 홍보 대사로 활동하며 이 악습을 뿌리 뽑는 데 일조했습니다.
1998년 와리스 디리는 첫 번째 책《사막의 꽃》(Desert Flower)을 발표했습니다. 이 책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동명의 영화(Desert Flower)로도 제작되었습니다. 그 뒤《사막의 새벽》(Desert Dawn, 2004년), 《사막의 어린이》(Desert Children, 2005년), 《엄마에게 쓰는 편지》(Letter to My Mother, 2007년) 등 여러 편의 자서전을 발표하며 FGM 여성 성기 절제 근절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와리스 디리의 첫 번째 책 <사막의 꽃>은 거의 10년 전에 읽었는데도 여전히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특히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장면과 수술실에서 소말리아 남자의 악담을 듣고 도망쳤다가 다시 용기를 낸 부분은 지금도 저에게 많은 동기부여가 됩니다.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굳은 믿음을 박살내고 자유의 세상으로 나가고 싶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