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두 번째 고소와 함께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탄핵 시기와 겹치며 진행이 더뎌져 올해 5월까지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점을 봤다. 점쟁이는 “반쪽짜리 승리, 씁쓸한 승리를 하겠다”라고 했다. 이 말에 약 1년 전, 첫 번째 고소를 하고 얼마 뒤 우연히 봤던 주역, 타로카드 카드 점괘가 떠올랐다.
상처뿐인 승리, 70% 승리, 반쪽짜리 승리
당시 나는 온라인으로 명리학을 배우고 있었다. 하루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주역 점을 봐주신다고 했다. 고소를 하긴 했지만 계속 겁이 나던 때라 지금이라도 고소를 취하할지 물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결과는 상처뿐인 승리입니다. 제가 말려도 하시겠네요.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세요. 많이 힘드실 겁니다"
비슷한 시기, 드로잉 수업에서도 우연히 타로카드를 보게 됐다. 카드를 여러 장 뽑아 어떤 의미의 카드가 3장 나오면 100% "Yes", 2장은 70% "Yes", 한 장도 안 나오면 "No"라는 의미였다. 나는 두 장을 뽑았다. ‘이기긴 이기지만 완벽한 승리는 아니다'는 뜻이었다.
이 두 점괘를 그닥 믿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해고와 변호사를 어떻게 만날지 알아맞춘 신통방통한 점쟁이까지 비슷한 뉘앙스의 '반쪽짜리 승리, 씁쓸한 승리'를 말하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2025년 5월 말, 기다리던 인권위 진정 결과가 나왔다. 기대와 달리 결과는 "증거불충분"이었다.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아직 두 번째 고소 결과가 남았으니 희망을 놓지 않았다. 몇 주 뒤, 원하던 대로 두 번째 고소가 검찰로 기소 됐다는 소식을 받았다. 마침내 승리가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또 결과는 “불기소(증거불충분)”이었다. 변호사는 “항고가 받아들여지려면 ‘그들이 성추행 신고 때문에 나를 해고한다’고 말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를 해고하겠다 말한 증거는 이미 제출했지만 ‘성추행 신고’ 때문이라고 말한 건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성추행을 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니 말이다. 추가 증거가 없어도 항고를 할 순 있지만 증거가 명백해야 하는 형사 고소 특성상 결과를 뒤집긴 어려워 보였다. 그럼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걸까?
배가 또 아프기 시작했다. 9개월 전, 검찰 조사받은 바로 다음 날 처음 시작된 그 극심한 복통이었다. 내과에선 이번에도 스트레스성 위경련이라 했지만 처방받은 약도 효과가 없어 고통에 몸부림치다 기절할 정도였고, 물조차 삼키지 못해 3주 만에 7kg가 빠졌다. 그런데 이렇게 굶고 체중이 줄었는데도 배는 볼록했다. 문득 배꼽 아래에 얼마 전부터 주먹만 한 뭔가가 가끔 만져지던 게 떠올랐다. 혹시 이게 관련이 있나 싶어 산부인과로 향했다.
충격이었다. 자궁에 혹이 가득 차 16cm(보통 8cm), 임신 4개월 크기, 자궁이 커져서 장기를 압박해 복통을 일으킨다, 근종이 너무 많아 낱개로 제거할 순 없고 자궁을 들어내거나 호르몬 치료를 해야 한다, 단 호르몬 치료는 크기를 줄이는 게 아니어서 계속 복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무렵, 민사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형사 고소는 정확한 물증이 있어야 하지만 민사는 정황 증거만 있어도 인정되고, 나의 경우엔 노무사가 ‘직장 내 성추행’을 인정했기 때문에 승소할 가능성도 높다 했다. 갈등이 됐다. 자궁이 이 지경이 될 만큼 극심했던 스트레스를 승리로 보상받고 싶었다. 치료 중에 치료는 금융 치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내 몸은 추가 소송은커녕 일상생활도 불가한 지경이었다. 과거 일에 발목 잡힌 듯한 이 무거운 느낌에서도 이젠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 점을 봤다. 점쟁이는 "결국 이기겠지만, 그 과정이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며 놓아주고 그 에너지를 미래에 집중하기를 권했다.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마음 한편에선 여전히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우선 내 몸부터 돌보기로 했다. 결국 항고를 포기했다.
비록 고소는 가시적인 성과 없이 흐지부지 끝난 셈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타격도 주지 못한 건 아니다. 첫 번째 고소 두 달 뒤, ‘직장 내 성추행’이 인정돼 가해자는 임원 임명 세 달 만에 해임됐다. 나를 해고한 참고인 역시 이 무렵 임원직에서 자진 사퇴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해자가 정부와 관련된 기관에서도 임원을 맡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민원을 넣었고, 결국 여기서도 해임됐다. 이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이 정도면 ‘반쪽짜리 승리, 70%의 승리, 씁쓸한 승리'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무교이나 모태신앙으로 자라 신점을 보면 죄짓는 줄 알았다. 그래서 몇 년 전까지 신점은 물론 사주조차 보지 않았다. 그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소라는 큰 일을 겪으면서 점을 유독 많이 봤다. 분명 한글인데 사전이 필요한 법률 용어를 공부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변호사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점쟁이를 찾는 게 힘이 덜 들기 때문이었다.
뭔가 하긴 해야겠고, 방법은 모르겠고, 마음은 힘들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쟁이라도 찾아간 그때의 내가 안쓰러우면서도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변호사부터 선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어차피 하게 될 일을 미뤄서 고소 과정이 더 길어졌고 그만큼 건강이 더 악화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덕에 제대로 배웠다. 힘들다고 미루면 결국엔 더 힘들어진다는 걸.
신기하게도 점쟁이는 항상 '해고, 소송, 변호사 선임, 이제 그만'처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망설이던 것들에 대해 "하라"고 명쾌하게 말해줬다. 그 말은 마치 응원 같았다. 나 자신이 나에게 차마 해줄 수 없던 응원. 그래서 이렇게 점괘대로 다 된 것 같다. 결국 점괘는 예언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던 무언가였다. 그럼, 내 마음이 ‘반쪽짜리 승리, 70%의 승리, 씁쓸한 승리'를 원한 걸까? 왜? 지금은 모르겠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