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신적(?) 변호사 선임

by 이영

검찰 조사를 마치고 기차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 국선 변호사와 대화를 하다 비로소 알게 됐다. 행여 졌을 때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지불해야 하는 건 민사 소송이고 형사 소송은 아니라는 사실을!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아껴둔 돈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목돈을 쓰려니 망설여졌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괜히 돈만 날리는 건 아닐까? 이전에 “신이 네 용기를 시험할 거다”라고 말했던 점쟁이를 다시 찾았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이렇게라도 다잡고 싶었다.


그는 말했다.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 전문가가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이 말에 변호사를 선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때만 해도 선택의 폭이 넓을 줄 알았다. 수많은 변호사 중 누굴 택해야 할지 물었다. 점쟁이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이렇게 해보면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다. 하지만 그전에 정말 많은 거절을 당하겠구나.


처음엔 전화로 문의했다. 솔직히 변호사 선임은 돈만 내면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였다. “다른 곳을 알아보세요.” 거절을 많이 당할 거라 각오하긴 했지만 직접 겪으니 예상보다 훨씬 당혹스러웠다. 마음이 급해졌다. 결국 발품을 팔고, 나중엔 유료 상담도 받았다. 그럼에도 결과는 같았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는커녕 오히려 “경찰, 검찰 모두 불송치(증거불충분)라면 더 이상 가망이 없다. 그냥 포기하라”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점쟁이 말이 틀렸나보다. 이러다 선임 못하면 어떡하지?’ 거절이 쌓일수록 절망이 커졌다.


15곳에서 거절을 당하고 거의 포기하고 있을 무렵 문자가 왔다. 6주 전, 변호사 선임 생각이 없을 때 예약하고 까맣게 잊고 있던 구청 무료법률상담 안내였다. 처음엔 그냥 취소하려 했다. 변호사를 선임할 거니 더 이상의 상담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하는 변호사라면 경험이 많지 않을 확률이 높았고, 나는 이왕이면 판검사 출신의 경험 많은 변호사를 원했기에 여기서 만난 변호사를 선임할 일도 없을 거라 여겼다. 갈지 말지 고민하다 그래도 일단 가보기로 했다. 만약 변호사를 못 구하면 혼자서라도 계속해야 하니까.


예상대로 변호사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듯 굉장히 앳되어 보였다. 그동안 수없이 들었던 "방법이 없다"는 대답을 예상하며 반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내 얘길 끝까지 집중해서 듣던 그는 뭔가를 확인하더니 뜻밖의 말을 꺼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다시 고소를 해보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점쟁이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해보면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다”


드디어 만났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혼자 느끼는 내적 친밀감에 나도 모르게 지어지는 미소를 감추며 물었다. “혹시… 변호사님이 맡아주실 수 있나요?” 내가 하고 싶었던 검찰 항고에 ‘남녀고용평등법’에 의거한 추가 고소 그리고 인권위 진정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마침내 변호사를 선임해 다행인 한편, 며칠 동안 허탕 치면서 쓴 시간과 비용(50만원ㄷㄷ)이 너무 아까웠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 아무도 안 맡으려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에 판검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는 고집을 꺾을 수 있었다.


이런 신기한 과정이 있었으니 변호사와 함께 한 두 번째 고소 결과는 다를 줄 알았다.

keyword
이전 19화점쟁이는 말했다. "신이 네 용기를 시험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