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와 관련해 세 번 점을 봤다. 한 번은 고소를 하기 전, 두 번은 고소 후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다. 이건 첫 번째 레슨~ 아니, 고소에 관련된 첫 번째 점괘에 대한 이야기이다.
“너는 그동안 참는 게 좋은 거라며 매사 등신처럼 참고 살았구나. 변하지 않으면 남은 인생도 그렇게 계속 당하며 살 거다. 이젠 그만 참아야 한다.”
해고 통보를 받기 두 달 전, 가해자와 참고인이 나를 해고할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마음이 답답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점을 봤다(?). “저.. 해고당할까요..?” 점쟁이는 그렇게 될 거라 했다. 믿기 힘들었다. 비록 안 좋은 일이 있었어도 당사자와 나만 아는 일이었고, 소문을 들은 거래처에서 ‘원하시면 우리가 해고하지 말아 달라고 건의하겠다’고 먼저 제안할 정도로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창회 같은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 잘하는 직원’이 아니라 ‘회원 간 친목’이다. 이런 모임은 대부분 5인 미만 사업장이라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회장이 바뀔 때마다 직원이 바뀌는 일이 흔하고, 회원끼리 얼굴 붉히는 일을 피하려다 보니 목소리 큰 사람이 왕처럼 군림하는 경우도 많다. 이 사실을 잘 알기에 성추행 신고를 망설였으면서도 정작 해고 소문이 돌았을 땐 외면했다. 해고될 거란 걸 받아들이기 싫은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고소를 하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해고를 맞춘 그 점쟁이를 다시 찾았다. 그는 말했다. “너는 그동안 참는 게 좋은 거라며 등신처럼 참고만 살았구나. 그래서 두 번이나 성추행을 당하고 거기에 부당해고까지 당한 거야. 그 사람들이 널 만만하게 본 거지. 얘는 이래도 가만있네? 하고. 니가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 이런 억울한 일을 또 당할 거다. 계속 그렇게 살고 싶니? 아니지? 이제 너는 참지만 말고 화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너 자신을 지키며 살 수 있어. 고소가 그 시작이 될 거다. 결과는 좋을 거지만 과정이 쉽지는 않겠구나. 신이 계속해서 네 용기를 시험할 거다.”
그동안 나의 이해심과 배려를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렇기에 ‘변하지 않으면 이런 일을 또 당할 거다’라는 말이 깊이 와닿았다.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느라 정작 내 감정을 돌보지 않는, 스스로를 상처 내는 삶을 이제는 끝내고 싶었다. 결과가 어떻든 고소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곧 나 자신에게 하는 선언이 될 것 같았다. ‘이거 봐! 난 이제 달라졌어. 이젠 나도 내 감정을 표현할 거야!’.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워도 발을 내딛는 마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여전히 두려웠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냈다. 마침내 변화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네 용기를 시험할 거다’는 말처럼 고소 과정은 몇 번이고 '계속 싸울까? 그냥 포기할까'?를 선택하게 했다. 그때마다 나는 용기 내어 항고에 재항고, 재재항고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이의 신청을 다 하며 싸움을 이어갔다. 그러다 피해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피해자가 항고해서 검찰 조사를 받는 일은 정말 드물다고 한다(1% 이하?). 그러니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실제론 거의 일어나지 않는 온갖 경우까지 모두 경험한 셈이다.
경찰의 불송치 통보서도 맥락을 같이 한다. 어느 여성 단체 간사님께 이런 말을 들었다 “일 하면서 이렇게 긴 통보서는 처음 본다. 보통 반 장 정도가 대부분이고 심하게 짧은 건 한 문장 짜리도 있다.” 이 말에 '신이 네 용기를 시험할 거다'는 말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받은 4장이나 되는 통보서는 마치 내가 항고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자세했고, 덕택에 이를 토대로 나 혼자 항고장을 작성할 수 있었다. 만약 일반적인 통보서를 받았다면 이 과정이 훨씬 복잡하고 어려웠을 거다. 어쩌면 아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아무 생각 없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받은 통보서는 매우 특별한 경우였던 것이다!
불송치(증거불충분), 4장 분량의 불송치 통보서 그리고 검찰 조사. 나는 이 모든 일들이 내 용기를 시험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