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말, 또다시 ‘불송치(증거불충분)’ 통보를 받은 뒤 기절할 정도로 극심한 복통이 시작됐다. 3주간 고생하다 혹시나 싶어 산부인과를 찾았다. 검사 결과 자궁 근종이 심각한 상태였다. 치료 방법은 자궁 제거 또는 호르몬 요법이 있었다. 다만 호르몬 요법은 우울감이나 자궁 천궁 같은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있고, 커진 자궁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어서 복통이 계속될 수도 있다고 했다.
복통을 없애려면 자궁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어안이 벙벙했다. 한편으론 위경련 약이 효과 없던 이유와 배꼽 아래에서 만져지던 딱딱한 무언가의 정체를 확실히 알게 되어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정확한 원인을 알았으니 복통이 왠지 줄어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치료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 먼저 자궁 근종의 원인부터 찾아봤다. 현대 의학에서는 여러 가지 호르몬·유전·생활습관·환경 요인·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봤다. 발생 원인을 한 마디로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지만, 스트레스가 증상을 악화시키는 건 분명했다.
한의학, 동종요법 등 전통 의학에서는 자궁근종 원인을 ‘기와 혈’의 순환장애로 보았다. 특히 여러 전통 의학에서 공통적으로 ‘감정 억제’를 순환장애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한의학 기혈울체(氣血鬱滯): 스트레스, 감정 억눌림으로 간기(肝氣) 울체 → 자궁혈류 정체 → 어혈 형성
중의학 간울기체(肝鬱氣滯): 감정적 억제, 스트레스로 자궁 혈류 불균형
동종요법: 감정 억제, 오래된 슬픔, 분노, 억눌린 욕망 → 생식기 에너지 정체
평소 느껴지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단 옳고 그름, 상황에 따라 일단 덮어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나중엔 감정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진짜 내 감정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지경이 됐다. 겉으로 볼 땐 별 문제없어 보였지만 외면당한 감정들은 자궁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10대 때부터 20년 넘게 노래를 만들고 무대에도 섰다. 지금 보면 이렇게 창의력을 발휘하고 표현하는 시간이 쌓인 감정을 해소시켰던 것 같다. 그런데 마흔 살이 되던 해 1월 1일, 이 고생의 시작이 된 전 직장에 입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처음엔 1~2년만 다닐 생각이었으나 계획과 달리 6년이나 일했다. 그러면서 음악은커녕 고시공부, 부업 등 돈과 관련된 일에만 매달렸고, 이후 2년은 고소 문제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결국 약 8년 동안 창작이나 공연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철학, 종교, 심리학에서는 자궁을 ‘무(無)에서 유(有)가 태어나는 우주의 근원, 창조의 장소’로 비유한다. 여기에 전통의학에서 말하는 자궁 근종의 원인 ‘감정 억제’와 그동안 내 삶을 종합해 보니 자궁에 근종이 가득 찬 현상이 의미하는 바가 있는 듯했다. 억눌린 감정, 부르지 않은 노래, 쓰지 못한 글, 삼킨 말들이 자궁에서 근종이라는 형태로 자라난 건 아닐까?
그동안 막혀 있던 것들을 다시 흐르게 하면 근종에도 변화가 생길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당장 자궁을 제거하거나 미레나를 삽입하는 대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억눌린 감정을 알아차리고 창의력을 발산하는 것이 치유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 같았다. 잠시 쉬고 있던 브런치 연재를 재개했고 다시는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신곡 발표 작업도 시작했다.
물론 건강 관리도 병행했다. 유제품, 고기, 계란, 밀가루를 끊고 매일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며 소식, 운동을 실천했다. 원인을 정확히 알았으니 복통이 사라질 것 같다는 예감은 맞았다. 진단받은 그날부터복통은 줄어들기 시작해 며칠 뒤엔 완전히 사라졌다. 아직 아랫배는 딱딱하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엔 나의 실험이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