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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는 드림을 싣고

고통의 시간, 뜻밖의 덕질이 열어준 꿈

by 이영

약 1년 6개월 간의 고소 기간 동안 상상 이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힘든 시기를 의외의 존재 덕택에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좋아하는 마음은 예상 못 한 길로 나를 이끌었다. 바로 음악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아이돌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종교 생활을 지나치게 열심히 하다 보니 세속적인 대중문화는 술, 담배와 더불어 멀리해야 할 것 중 하나였다. 또, 홍대병에 걸려 아이돌 음악은 진짜 음악이 아닌 것 같았고 우리 오빠가 최고라고 서로 싸우는 팬들도 유치하게만 보였다.


2024년 4월, 불송치 통보를 받고 직접 이의신청서를 작성하느라 엄청 스트레스를 받던 무렵 <나 혼자 산다>에 도영이라는 아이돌이 나왔다. 도영이가 누군지 몰랐지만 유튜브로 나 혼자 산다를 즐겨봤기에 습관대로 영상을 봤다. 다 보고 나니 도영이가 속한 NCT 영상들이 알고리즘에 뜨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스무 명에 달하는 멤버들 이름이 자연스레 외워질 정도로 하루에 몇 시간씩 영상을 봤다.


그러면서도 처음 한동안은 내가 NCT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이젠 아이돌이 ‘오빠’도 아니고 ‘아들’ 뻘이었다. 아이돌 좋아하는 내 또래를 보고 주책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그 주책을 떨고 있다니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과는 다르게 처음엔 난해해서 안 들었던 노래가 듣기 좋아질 정도로 어느새 나는 엔시티에 완전히 스며들었다.


2024년 9월, 지방에서 검찰 조사를 받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었다. 금요일 퇴근 시간에 겹쳐 입석으로만 표를 끊을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리니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 피곤함이 그제야 몰려왔다. 오랜만에 구두를 신었더니 다리도 너무 아팠다. 이어폰을 꺼내 나의 자양강장제, 엔시티 노래를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피곤함도 잊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엔시티를 좋아하는구나! 이날 밤, 몇 달만에 내 마음을 비로소 인정하고 엔시티드림 팬클럽에 가입했다.


유튜브에서 인정받은 상위 1% ^^


엔시티 드림 노래 중 ‘북극성’을 기타로 쳐보고 싶었다. 집 근처 기타 학원에 등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음악을 본격적으로 다시 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좋아하는 노래를 기타 치면서 불러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작은 바람은 결국 나를 다시 오랜 꿈으로 이끌었다.


융 심리학 관점으로 보면, 아이돌을 동경하게 된 건 원래 내 안에 있던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은 꿈과 관련 있다. ‘이 나이에 무슨 아이돌을 좋아해’하고 자괴감을 느낀 이유도 ‘이 나이에 무슨 음악이야’하고 내 꿈을 억눌렀기 때문이다.


고소 과정 중에 아이돌에 반하고, 그 좋아하는 마음이 포기했던 꿈을 다시 시작하는 데까지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생은 기쁨과 고통이 교차해 만들어진 직물과 같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고소라는 고통과 아이돌이라는 기쁨이 교차해 포기했던 꿈을 되찾을 줄이야! 정말 인생은 신묘막측하다.



* 2025년 9월 8일, 6년 만에 발표한 디지털 싱글 "시작이야"를 소개합니다. 좋아요 눌러주심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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