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끝났지만 다른 길은 시작이야
참 많이 넘어졌지. 여기까지 오는데
참 많이 울었었지. 여기까지 오는데
아직 나 포기 안 했어. 아직 나 계속 걷고 있어
살면서 최선인 선택만을 하길 바라지만 그러지 못했다. 실수도 하고, 후회도 했다. 다만 그러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삶이 나의 이런 실수도 예상하지 못했던 복으로 바꿔준다는 점이다. 물론 이 고통이 나중에 어떤 전화위복, 새옹지마가 될 지 그 당시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매 순간 위기는 위기이고, 힘든 건 힘든거다.
첫번째 고소를 한 지 1년, 두 번째 고소 후 3개월이 지난 2025년 1월 12일, <직장내 성추행, 부당해고. 오히려 좋아>라는 제목으로 브런치 연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법적 절차 같은 실질적인 부분에 대해 자세히 쓰려했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분께 이왕이면 실용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글은 마치 인생처럼, 계획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마음에 묻어두려 했던 감정이 손끝으로 빠져나와 모니터를 채웠다.
해고 통보는 성벽을 무너트렸다. 무너진 벽 너머엔 그동안 외면했던 아픈 진실이 있었다. 나는 내 편이 아니었다. 성추행과 부당 해고는 고통의 원인이 아니라 오랫동안 내가 나를 외면한 결과였다. 이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 '이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지만 이젠 진실을 마주해야 했다.
어미 새가 새끼 새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 날개 쓰는 방법을 가르치듯 삶은 나를 둥지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제야 비로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언젠가 제 역할을 할 새끼 새의 날개처럼 오래전부터 내게 있던 용기를.
많이 배워야했지. 여기까지 오는데
변하기도 했지. 여기까지 오는데
아직 나 멈추지 않았어. 아직 나 계속 걷고 있어
연재 초반엔 해고된지 1년이나 지난 무렵인데도 감정 정리가 덜 된 상태였다. 피해의식과 억울함 그리고 분노가 계속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풀어내며 중후반부에 이르자 이제 내 편으로 사는 인생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브런치 제목도 바꿨다. “45살에 부당해고, 오히려 좋아”로.
그렇다고 삶이 단번에 180도 달라지진 않았다. 가해자를 용서할 마음도 없다. 용서는커녕 복수심을 솔직히 인정했고, 이 마음을 응원한다. 건강 문제로 일단 소송을 멈췄지만 나중에 여건이 되면 재개할 생각이다.
연재를 시작한 지 8개월, 그 사이 많은 일이 일어났다. 두 번째 고소에서도 증거불충분 불송치 판정을 받았고, 실망할 새도 없이 병원에선 자궁 적출을 권유받았다. 그리고 6년 만에 디지털 싱글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중에 8개월 전 계획했거나 예상했던 일은 단 하나도 없다.
“해고당하고, 아이돌에 빠지고, 자궁 근종이 그동안 표현 못한 감정 찌꺼기일 수도 있겠다고 깨닫고. 그러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흐름을 통해 급작스럽게 발표한 노래가 대박이 났으니 부당해고가 완전 전화위복이 됐다." 고 글을 마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다.
그렇다고 아무 ‘위복’도 없는 건 아니다. 해고 통보를 받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무작정 뛰기 시작한 게 습관이 된 덕택에 살도 빠지고 폐활량도 늘었다. 특히나 다시 노래를 시작한 지금, 좋아진 폐활량은 많은 도움이 된다.
명상을 시작하고 얼마 뒤, 출근길에 들었던 ‘이 꼽사리 낀 듯한 느낌, 낯설지 않아! 나도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당당하게 내가 있을 곳에 있고 싶다’는 작은 목소리가 여기까지 나를 이끌었다. 성추행, 부당해고, 홧병 등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으나 이제 나는 정말 원했던 곳으로 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매 순간 위기는 위기이고, 힘든 건 힘든 거지만 인생이 또 전화위복으로 만들어주리라 믿는다.
“시작이야” - 이영
참 많이 넘어졌지. 여기까지 오는데
참 많이 울었었지. 여기까지 오는데
아직 나 포기 안 했어. 아직 나 계속 걷고 있어
많이 배워야했지. 여기까지 오는데
변하기도 했지. 여기까지 오는데
아직 나 멈추지 않았어. 아직 나 계속 걷고 있어
이젠 넘어져도 울지 않아. 다시 일어설 거니까
고개 들어. 저기 끝이 보이네
혼자 걷는 게 아냐. 늘 내곁에 있는
날 사랑하는 그 손 잡고 걸을래
영원한 사랑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 드립니다. 보내주신 공감 덕택에 힘내서 연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이야기와 노래로 만나뵐게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