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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렇게 냉소적이야?

by ㅇㄹㅇ

오늘 아침, 사무실 근처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시켰다.
줄 서 있는 사람이 서너 명밖에 안 되었지만, 바리스타는 유독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그 순간 왠지 고개를 꾸벅 숙이는 젊은 바리스타가 마치 광고 속 모델처럼 멋져 보였다.

일찍부터 열심히 영혼을 갈아 넣어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혹은 매끈하게 정돈된 앞치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때로 아주 사소한 순간에도 브랜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사람의 헤어스타일부터 손끝에서 피어나는 태도까지, 감지 못한 사이에 브랜드가 되고 브랜드로 소비된다. 오늘의 커피가 유난히 쓰게 느껴지는 건 그 탓일지도 모른다.

내가 매거진에 섹스나 뷰티, 운동, 라이프스타일 기사를 쓸 때,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뭐 이렇게 냉소적이야? 조금 덜 까칠하게 못 써?”
그럼 난 이렇게 응수하곤 했다.
“인생이 원래 맛있다기엔 좀 쓰지 않아? 어차피 밑바닥 보고 나면 다들 맛없다고 투덜거리게 되어 있다구.”
물론 이런 대답은 편집장의 심기를 살짝 긁었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세상을 달콤하게만 그리는 ‘아름다운 브랜딩’ 따위엔 별 흥미가 없다.
대신 ‘달콤함 뒤에 숨어 있는 쓴맛’에 집중하는 게 재밌었다.

사람도 브랜드도 결국 자기가 흘린 땀과 눈물, 혹은 숨기고 싶은 어두운 면들이 매력을 만들어내니까.

브랜드 마케팅을 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은, “결국 이게 팔리냐, 안 팔리냐”이다.
로고의 예술적 가치, 색깔의 섬세한 조합, 심지어 수없이 밤을 지새워 수정을 거듭한 광고 문구도, 최종적으로 매출 그래프가 슬금슬금 기어 올라오지 않으면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그걸 보며 ‘결국 세상은 돈으로 돌아가지’라고 툭 뱉는 내 입맛은 늘 씁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발랄한 농담을 던지는 게 즐겁다.
‘뭐 어때, 팔기 위해 만든 거잖아. 다만, 조금 예쁘게 팔면 어디 덧나?’

오늘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생각한다.
광고도 사람도, 어쩌면 다 똑같지 않을까. 멀리서 보면 예쁘고 좋아 보이는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결이 거칠고 상처도 많다. 그러면서도 우린 꾸역꾸역 아침을 시작하고, 조금 더 맛있는 혹은 더 모던한, 아니면 ‘힙’해 보이는 무언가를 갈망한다. 그리고 거기엔 어김없이 광고가, 브랜드가, 나 같은 마케터가 우글우글 뒤섞여 있다. 그 속에서 난, 섹스·뷰티·운동·라이프스타일 같은 화려한 주제를 잘근잘근 씹어보며 “아, 이게 내 인생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나?”라고 묻는다.

답은? 아마도 ‘꼭 그렇지도 않고, 그렇다고 별로 달라질 것도 없다’가 맞겠지.
대신 아주 가끔 커피처럼 진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때 우리 마음 어딘가엔 슬쩍 미소가 번진다.
‘그래도 살아보자. 멋지거나, 혹은 멋지지 않게.’

한 모금 삼키자 입속 가득 커피의 묵직한 씁쓸함이 감돈다.
‘이 맛이 나쁘진 않네.’
아침 10시의 냉소, 그리고 아주 약간의 위트. 오늘도 그런 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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