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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집어내어

by ㅇㄹㅇ

요즘 들어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묻는다. “요즘 글 안 써요? 안 올린 지 너무 된 것 같던데.” 나도 내가 한동안 브런치 스토리를 방치하고 있었다는 걸 안다. 한때는 술술 써내려가던 문장들이 어느새 타이핑조차 꺼려질 만큼 버거워졌달까. 도시가, 일상이, 또 사무실이 왜 이렇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건지. 백팩에 끼워 둔 노트북은 주로 제안서나 회의록 작성에만 쓰이고, 정작 내 마음속 이야기는 방치됐었다.

사실 매일 어딘가 쫓기는 기분으로 뛰어다녔다. 브랜드 마케팅 대행사를 운영하다 보니, 늘 새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이니, 협업 논의니 하며 일정이 빡빡했다. SNS에 올라온 내 모습도 늘 비슷했다. 오레오 사진이나, 샴페인 마시는 사진 정도? 별다른 메시지도 없이 사진만 슬쩍. 그마저도 광고 촬영하느라 급히 찍은 것들이었다. '내가 이러려고 글 쓰는 일을 시작했나' 싶을 정도로 마음 한켠이 허전해졌다.

그러다 오늘 아침, 사무실 건물 앞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데 문득 생각이 스쳤다. “브런치에 글 올린 지 얼마나 됐더라?” 지난 기록을 확인해 보니, 일주일이 훌쩍 넘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거였던가. 언제부턴가 글은 뒷전, 일만 앞세우는 내 모습이 좀 싫었다. 늦은 밤을 새우면서도, 새 수영복 살 시간은 챙기면서 정작 글 쓸 시간은 만들지 못했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그래서 지금이라도 부랴부랴 노트북을 열어 본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잠깐 머뭇거리더니, 금세 몇 줄의 문장이 찍힌다. “별일 없다는 듯 하루가 지나가도, 마음속에 쌓이는 짜증은 사소한 틈새를 통해서라도 새어 나온다.” 이런 식의 문장들. 사실 이걸 글이라고 부르긴 애매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금 나는 마음속 구름을 털어놓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털어놓는 순간, 어딘가에서 나를 부드럽게 건드리는 바람 같은 감각이 느껴진다.

주변에선 “그래도 대표면 더 화려하게 사는 거 아닌가”라고 기대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냥 새벽까지 야근하다가 오레오 밥 챙겨주고 산책하고, 메일함에 쌓인 문의에 일일이 답장하는 일이 반복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할 시간도 부족하고, 낯선 사람 만나기 싫어하는 내 성격상, 대형 행사장에서는 늘 뻘쭘하게 서 있곤 한다. 그래도 그러다 보면, 불현듯 기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찮아 보일지 몰라도, 바로 그 짜릿한 순간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는 거다.

지금 쓴 글이 대단한 문학작품일 리 없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다. 나는 이 도시에서, 조금은 지루하고 때론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사는 중이니까. 내게 중요한 건, 삶의 면면을 낯가림 없이 기록하는 일—그게 사진이든, 한두 문장의 글이든 상관없다. “잠깐 쉬었다 간다”는 마음을 분명히 표현하면, 다음 스텝을 조금 더 가볍게 밟을 수 있으니까.

오늘 이 에스프레소 한 잔이 식기 전에, 브런치 스토리에 이 글을 올려야지. 별다른 사건이나 대단한 반전이 없어도 괜찮다고, 지금 내 삶은 그렇게 흘러가는 중이라고. 그리고 어쩌면, 이런 차분한 일상 속에서 비로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이 천천히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예전처럼 일주일에 한 번쯤은 꼭, 나만의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되찾고 싶다.

문득, 사만다가 이 장면을 본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나 같으면 이 건조한 도시 생활에 반항이라도 한 번 해보겠어!”라고 했을 법도. 나야, 그 정도 배짱은 못 되지만, 이렇게 글을 써서 올리는 것만으로도 제법 유쾌한 소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때론 아주 작은 변화가 인생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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