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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법대로 한다 Jul 18. 2021

시간을 내주는 사람


‘너에게 시간을 내주는 사람을 만나’


보고 싶다고 백번 말하기보단, 직접 보러 오는 사람. 데이트 계획을 백날 짜기보단 계획을 실행시키는 사람을 만나.


어느 연애 에세이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말.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주둥이 러버보단 액션파 러버를 하란 말. 말로는 누구나 사랑을 속삭일 수 있다, 실행이 힘들 뿐.


이론은 충분히 이해했다. 근데 왜 난 이 쉬운 공식을 요상하게 풀어제끼는걸까.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공식을 알려주면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 망하는 애. 그게 아마 나인 거 같다. 선생님 복장 터지게 하는, 많은 연애 고수들 속 뒤집어지게 하는 트러블메이커.


내 창의력에도 나름 변명은 있다. 내가 이 쉽디 쉬운 사랑 공식을 요상하게 해석하는 데는 ‘나’라는 변수와 ‘합리화’라는 새로운 공식이 도입되기 때문.


왜 그는 내가 보고 싶다면서 오지 않을까? 음 바쁘니깐 그렇겠지. 몸이 안 좋으니깐 그렇겠지. 요새 피곤하잖아. 대신 애정표현 충분히 해 주잖아. 보고 싶은 마음은 진짜인데 사정이 있어 못 오는 사람도 있지. 저 말이 절대 공식은 아니잖아. 내 사랑은 안전해.


합리화를 하면서 내 사랑을 지키고 싶었다. 어떻게 모든 사랑이 복사판처럼 일치하겠어하며. 그런데 불행히도 모든 연애 에세이에 쓰여 있는 말은 99프로 정답이더라. 그래, 일반적인 사랑이 저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겠지.


한때는 에세이 사랑공식을 피하기 위해, 나만의 방어벽을 참 높게 쌓았다. 세상의 정답으로부터 내 사랑을 지키기 위해, 그런데 그 견고했던 방어막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온도가 식었다. 이상하다 뭐가 잘못된 거지. 이럴 리 없어. 단순히 피곤한 거 아닐까. 아니야, 어쩌면 내가 부정했던 것들이 현실이 아닐까.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일주일 만에 보는 그와 1분이라도 더 함께 있으려 노력할 거 같아. 보고 싶으면 내가 보러 갈 거 같아. 그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빨리 가서 추억을 쌓기 위해, 그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바로 다음 데이트에 갈 거 같아. 혹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예약이라도 하겠지.


아, 그는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내가 현실 부정했구나. 여태까지 부정했던 모든 것들이 ‘나’를 넣어보니 그동안의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다. 아니 더 빨리 현실을 자각했어야 한다. 그래야 돌릴 수 있는 기회라도 있을 테니.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합리화의 당착에 빠져있을 거다. 그런데 말이다. 그 사람 마음이 헷갈릴 땐, 나를 대입해 넣어보자. 그럼 답은 명확해진다.


‘시간을 내주는 사람’의 또 다른 의미는 ‘여자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 남자’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결코 자기 여자를 불안하게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눈 뜨자마자 카톡을 하고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연락을 한다. 사랑하니깐. 갖고 싶으니깐.


애써 외면하고 싶은가? 좋다, ‘나’라는 변수를 넣어서도 ‘절대 사랑’이 성립되면 그대는 계속 사랑해도 괜찮을 듯하다. 매우 희박한 확률이겠다만.


그래도 희박한 확률보단 대중성을 따라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대가 덜 아프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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