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어렸을 때부터 남을 돕는 것에서 기쁨을 느꼈다. 대학 전공과 봉사 시간은 전혀 관련이 없으면서도 자발적으로 200시간 이상을 봉사했다. 봉사현장에서 만난 동료가 나보고 사회복지사가 꿈이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친절한 웃음과 순종적인 이미지. 나는 내 이미지를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잘 사용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친절한 베풂을 받고 싶어서였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에 내가 살아있다고 느꼈다.
누군가 음식을 먹다 흘리면 나는 그 사람에게 냅킨을 쥐어주거나, 옷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취향별 사이트를 친절하게 찾아서 쇼핑몰 링크들을 카톡으로 보냈다. 그렇게 하고 나는 늘 뿌듯함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러다 식당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보게 되었다. 어떤 한 손님이 있었는데 멀끔한 외모에 젠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손님은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세상 나이스 한 미소를 지으며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오히려 직원은 시크했다.
손님은 메뉴판도 두 손으로 받고, 큰 소리로 감사 인사까지 했다. 직원보다 손님이 더 친절한 아이러니한 상황. 오히려 직원은 필요한 상황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예의를 표했다.
문득 어떤 친절이 더 상대방을 위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은 끝까지 함박웃음으로 직원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저 정도면 거의 오기로 하고 있는 거 아닐까 싶었다. 손님은 잔돈을 받을 때도 특이했다. 직원에게 한 두 번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상냥한 손님 그 이상이었다. 손님인 내가 봐도 좀 과하다 싶어 불편했다. 그 손님의 과한 친절로 직원도 불편함을 느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반면, 손님은 정말 뿌듯한 표정으로 가게를 나섰다. 불편해하는 직원의 표정이 안 보이는 것 같았다. 저 손님은 직원과 오고 간 좋은 감정이 없는데 왜 뿌듯해할까. 무엇이 저렇게 기분이 좋은 걸까.
'역시 나는 정말 친절한 사람이야. 나에게 차갑게 대하는 사람에게도 나는 끝까지 상냥하게 대하잖아.'
이런 생각이면 어떡하나 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누군가를 돕는 내 모습에 도취되어 저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차가운 상대방에게 친절을 마음껏 뽐내면서 내가 친절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 상대방은 정작 그런 친절은 원하지 않았다.
그제야 내가 음식을 먹다 흘린 사람에게 냅킨을 쥐어준 것, 옷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취향별 사이트를 친절하게 찾아서 링크들을 카톡으로 보낸 것이 상대방에게는 친절이 아님을 깨달았다.
공자의 <논어>에 이런 말이 나온다.
지나친 친절은 위선이다.
공자왈 숙위 미생 고직고혹이걸 혜언이어 늘걸제기린이 여지로 다(子曰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鄰而與之) 즉, 풀어말하자면 '어떤 이가 미생고를 찾아가서 식초 구걸. 미생 고는 이웃집서 식초 구해 주었다네. 지나치게 친절함은 속 보이는 일이라오. 이런 일은 소인들이 즐겨 쓰는 위선이다.'
논어는 과한 친절이 위선(僞善)이기 쉽다고 말한다. 바라는 게 있기에 도를 넘는 선심을 쓰는 것이고,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넘치는 친절을 행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주변을 살펴보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부분 부정직하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언어에도 온도가 필요하듯이
행동에도 온도가 필요했다.
누군가 밥을 먹다 흘렸으면 냅킨을 직접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근처로 쓰윽 밀어주는 것.
옷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내 취향의 쇼핑몰을 강요하지 않고 어떤 옷을 찾는지 한 번 더 물어보는 것.
친절함은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에서 나온다. 상대방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진짜 친절이었다. 하지만 때마다 사람마다 다르게 해야 하기에 친절해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래서 일단 내가 행동에 옮긴 것은 '봉사를 끊은 것'. 친절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스펙처럼 쌓던 봉사를 그만뒀다. 요즘은 그 에너지를 모아 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한 번 더 생각하는 진짜 친절을 베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