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길을 가다 친구를 마주쳤다. 갑자기 할 말은 없어 이맘때쯤이면 대충 안부를 주고받을 질문이 뭐였더라 생각했다.
"요즘 시험기간인데 공부는 잘 돼가?"
내가 안부를 묻자 친구는 나에게 허무한 눈초리를 하며 "나 회사 다니잖아."라고 했다. 아, 맞다 맞다. 맞아, 그랬지. 나도 졸업하고 회사 다니지. 그러면서 상황을 무마했다. 관심을 담은 대화가 아닌 대화를 위한 대화였다는 게 들통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사실 남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사랑받을 것에만 관심이 있다. 상대가 하루아침에 떠난 경험이 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사랑을 받고 싶지만 마땅한 아픔이나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 사랑을 받기로만 결정했다.
야 진짜 너 너무 하지 않냐
나를 늘 잘 챙겨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우울했던 나를 늘 옆에 끼고 챙겨준 친구 수지. 수지는 학교에서 집이 먼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 밥도 차려주고, 생일이면 선물도 주고, 서울에 있는 예쁜 빈티지 가게도 데려가 줬다. 자존감 낮은 나에게 너는 너만의 색깔이 있다고 용기도 줬다. 그런데 나는 수지의 생일을 제대로 챙긴 적이 한 번도 없다. 자연스럽게 연락은 뜸해졌고 점차 만나는 횟수도 줄었다. 나는 아직도 수지 생일이 몇 월 며칠인지 모른다.
대학생 때 남자 기피증이 있던 나에게 유일한 남자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나랑 집 가는 방향이 같아서 버스도 같이 타고, 노트북에 인터넷이 연결 안 되면 어떻게 해결하는지 알려도 주고, 내가 디자인을 공부할 때 내게 디자인 의뢰도 해줬다. 그런데 나는 그 친구에게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를 해본 적이 없다. 늘 어물쩡 거렸다. 우연히 길에서 그 남자인 친구를 마주쳤다.
"나 학교 졸업한다. 이제 나 학교에 없어."
그렇게 말하던 친구에게 나는 가자미 눈을 흘겼다.
"근데?"
"야. 너 진짜 끝까지 너무한다."
그 뒤로 그 친구와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날의 어리고 어렸던 내 모습이 창피해서 연락을 선뜻하지 못했다. 새해가 되면 그 두 친구가 생각이 난다. 잘 지내고 있을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런 생각에 핸드폰을 켜다 문득 부끄러운 내 모습이 떠올라 이내 덮어버렸다. 친구인들 나를 챙겨주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상처 받기 싫어서 사랑을 받기만 했을 때에는 몰랐다.
그 뒤로 나는 몇 번의 과정을 겪었다. 사랑만 받고 싶던 마음을 건너 누군가를 사랑해보기도 하고, 엉엉 울기도 해봤다. 그 과정을 하나씩 통과하며 나도 드디어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여린 마음이 가끔 사랑에 찔려 눈물 찔끔 흘리는 밤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사랑은 받고만 싶은데. 그 말을 중얼거리며 밤의 허공을 헤엄친다.
사랑하라!
단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알게 되었다.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보다 주고받을 때 더욱 행복했다. 상처 받을까 봐 사랑을 받기만 택한다면 평생 그 너머에 있는 더 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지 못할 뻔했다.
나는 당신이 아파봤으면 좋겠다. 마음껏 울고 웃으며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사랑을 알게 되기를.
얼마 전 그 남자인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연락을 했다. 옛날이었으면 나는 “근데?"라고 했겠지만 이번에는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하며 결혼식장에 꼭 가겠다고 했다. 친구는 나의 따뜻한 반응에 여간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먼저 받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