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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Oct 21. 2022

정빈의 모습 #3

온실 속을 걷는 유쾌한 발

정빈의 모습

  정빈과는 의식주에서 관객과 운영자로 만나 이제는 작가와 운영자로 꽤 많은 협업을 했다. 유쾌한 발걸음, 끊이지 않은 웃음, 존중이 담겨있는 어휘, 정빈과 함께한 시간에서 그를 수사할 수 있는 세 가지다. 발걸음, 웃음, 이야기, 이 세 가지를 잘 실현할 방법은 산책이다. 걷고 이야기 하다 보면 가장 자연스러운 정빈의 면모가 담길 수 있을 것이다. ‘모습’에서 내가 작가들과 함께 걷는 이유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작업실 근처에는 멋진 식물원이 있다. 나와 정빈은 들뜬 마음으로 식물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온실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작은 해골 모형이 놓여있었다. 사실 그는 주로 뼈와 자연을 그린다. 어떠한 패턴과 관습에 속하지 않기 위한 붓질, 방대한 미술의 시간을 존중하고 내일에 완성될 자신의 화면을 위해 분투하여 만들어낸 자국은 나의 시선이 경직되지 않게 이완시켜주곤 한다. 명확한 소재는 있지만 재연한다기보다 연구의 흔적이 내려앉은 잔해 같기도 하다. 식물에서 정빈 담고자 하는 장면들도 대부분 예측이 어렵다. 


온실에서 만난 해골, 그리고 정빈의 모습


  그는 걷는 내내 휴대폰으로 많은 장면을 담았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온실은 정빈의 눈가에 미소를 가득 채우는 곳이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보이는 각기 다른 종의 모습은 구조와 구조가 겹치고 모양과 모양이 전복되는 시간을 만들어낸다. 한 곳에 함께 하기 힘든 생명들이 얽혀 끝과 시작이 중요하지 않고 고요와 소란이 공존하고 순응과 진보가 교집합을 만들어내는 동시성의 공간이다. 식물원에서 정빈의 발걸음은 여유롭지만 분주했고, 잔잔하지만 호방한 리듬을 머금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 정빈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노출에 대한 부담으로 표정과 몸짓은 경직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정빈은 무척 자연스럽다. 작업실에서는 자신의 모습과 컬렉션을 소개하는 호스트의 분주함과 마주했다면, 식물원에서는 게스트로서 많은 것들을 눈에 담고자 하는 호기심 어린 눈과 마주할 수 있었다. 호기, 정빈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절한 단어다. 눈으로 유희할 수 있는 시공간을 언제 어디서든 만들 수 있는, 다른 이의 눈도 그 유희의 공간 속으로 어렵지 않게 함께할 수 있게 하는 그의 호기는 여명과 황혼의 보편적인 의미마저 뒤집는다.


정빈의 모습
정빈의 작품 / 바깥에서 Hors, oil on canvas, 193.9 x 112.1 cm, 2020

 저물고 뜨는 해의 동선과 움직임보다 그 어떤 것도 맞이할 수 있는 그의 믿음과 웃음은 어쩌면 내가 동경하는 어른의 면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만들어낸 뼈와 풀이 엉켜있는 화면, 온실에서 거닐고 있는 정빈의 모습과 교차한다.


기록하는 사람 _ 박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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