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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Oct 19. 2022

정빈의 모습 #2

모눈종이 위의 뼈

  정빈의 작업실은 나에게 매우 익숙한 공간이다. 이번 ‘모습’의 촬영을 앞두고 정빈에게 작업실 공사로 인해 촬영 일정을 조정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오늘 말끔해 졌을 공간을 기대하면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작은 공간에서도 활용 여부에 따라 새로운 공간이 태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상기하게 된다. 작업실 환경이 열악하다고(정빈의 주관적인 생각..) 하여 초대받는 사람에 대해 미안함이 항상 자리하고 있는 정빈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시간은 그에게도 매우 설레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정빈의 작업실 / 해골모형과 이미지, 그리고 정리된 물건들


  작업실이 있는 층은 매우 조용하다. 누구의 방해도 받을 수 없는 그런 시간이기도 했지만, 오로지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정리된 작업실은 매우 말끔했다. 움직이는 테이블이 들어왔고 작은 테라스에 수도와 진열장도 만들어졌다.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그전에는 자세히 볼 수 없었던 사물과 오브제들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작은 소파에 앉으면 자신의 얼굴과 마주할 수 있는 동그랗고 귀여운 거울, 수호신처럼 앉아있는 해골 모형, 각종 미술과 교육에 관한 서적들, 많은 물건은 각자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다. 놓여있다기보다 누군가의 시선을 갈망하듯 수집된 형태로 자리하고 있었다.


정빈의 테이블과 재료, 그리고 지우개 컬렉션

 

  그리고 잠시 후 이동형 테이블에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수집한 지우개의 향연이 펼쳐졌다.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구매한 것들이다. 이 지우개들은 본래의 역할을 뒤로하고 조형물처럼 디자인되어 전시, 혹은 작품의 캐릭터를 담고 있다. 이 작업실은 흡사 박물관과 닮아있다. 화려하고 거대한 컬렉션이라기보다 정빈의 주변에서 옹기종기 잉태된 귀여운 컬렉션이다. 보관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어울리는 자리에 자신의 자리를 잡고 진열되어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추억이 깃든 사진, 신체조건에 맞추어 설계된 도구들, 관심사가 드러나는 여러 종류의 서적, 잘 정돈된 일정과 계획표, 작업으로 사용되었을 작은 조각들은 유쾌한 정빈의 모습과 닮았다. 


기록하는 사람 _ 박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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