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 전에 외국기업의 해외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혼을 외국에서 시작했다.
회사가 제공하는 빌트인 되어있는 풀옵션의 아파트에서 살다가 남편과 결혼을 해서 남편이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와서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혼수라는 것도 하지 않았고 새로 물건을 살 일이 없었다.
외국에서 살던 신혼집은 한국의 30평 정도 되는 아파트 크기로 방이 3개 있었다.
넓은 집에 혼자 살다가 남편과 함께 둘이 살게 되었지만, 공간은 넉넉했다.
방 하나는 침실, 하나는 드레스룸, 하나는 용도 없는 빈 공간이었다.
용도 없는 빈 공간에는 나의 가방들이 줄지어 진열되어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 아무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리고 쉬는 날이면 주로 남편과 밖에서 외식을 했고 쇼핑센터를 돌아다녔다.
신혼 때 아이도 없고 외국에서 살다 보니 이곳저곳 구경 다니며 결혼 전과 변함없이 즐거운 황금주말을 보냈다.
그러다가 월요일이 되면 치열하게 직장에서 일하며 주말을 기다렸다.
신혼 때는 집에 대해서, 미니멀라이프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20대 때부터 패션을 사랑했던 나는 계절마다 옷, 신발, 가방을 샀기에 미니멀보다는 맥시멀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공부욕심이 많았는지 교양을 쌓고 싶었는지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하다 보니 책도 많이 샀다.
대학도 대학원도 다 외국에서 다니고 취직을 한 케이스라 외국에 거주하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해외에서 이사를 다닐 때마다 옷과 책이 큰 짐이었다.
그렇다고 미니멀라이프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원하는 만큼, 필요한 만큼 물건을 사고 이사 가면 처분하고 또 사고를 반복했다.
결혼하고 나서 1년 뒤 남편이 한국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나는 퇴사를 했다.
한국에 돌아올 때는 꽤 과감하게 많은 옷들을 버리고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많은 짐들과 함께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오고 나서 임신을 계획하고 아이를 낳고 몇 년 뒤 아이를 또 한 명 더 낳았다.
그래서 우리는 4인가족이 되었다.
문제의 시작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외국에서 살던 집보다 더 작은 20평대의 구축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여러 조건이 맞는 좋은 동네에서 살려다 보니 우리가 가진 예산으로는 20평대의 구축아파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20대와 30대 초반을 외국에 있어서 한국생활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집을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미처 몰랐다.
외국에서 꽤 괜찮은 연봉이었고 10년을 넘게 집을 렌트해서 썼기에 한국에서도 월세로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집을 소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
나는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옷과 액세서리를 많이 사기는 했지만 명품을 많이 산다거나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건 아니었다. 패스트패션을 좋아해서 Zara나 H&M 같은 곳에서 주구장창 쇼핑을 했고 별로 부담 없는 가격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쌓이면 엄청난 비용인데 그 당시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외모를 꾸미는 것도 일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나름대로 합리적 소비라 생각했다.
결론적으로는 별로 많은 돈을 저축하지는 않았다.
또래 친구들 보다는 많은 연봉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에서는 작은 구축아파트에 살아야 했다.
유학할 때 룸셰어도 해봤고 셰어하우스에서 살아봐서 작은 집에 산다는 것이 나에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해외주재원일 때처럼 수영장 딸린 넓은 고급아파트에서 살면 좋겠지만, 굳이 그런 집이 아니어도 두 다리 뻗고 잠잘 수 있는 집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한국에서 얼마나 살게 될지 몰라서 가구와 가전을 사는 것도 좀 애매했다.
2,3년 정도 살고 외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정말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안 사기로 했다.
육아는 템빨이라며 육아용품을 많이 사는데 사실 나는 베이비페어 같은 곳에 가지도 않았다.
물론 주변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육아용품을 대부분 사지도 않았다.
아기침대도 사지 않고 유팡(젖병소독기) 같은 것도 필수품이라고 하지만 사지 않아서 나름 간소하게 20평대 집의 규모에 맞게 살림을 살고 있었다.
한국생활을 몇 해 하면서 지인들이 생겼고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육아용품을 많이 물려주셨다.
아이들 옷과 육아용품, 책을 많이 받게 되었다.
아이 한 명만 있을 때는 그럭저럭 구겨 넣고 정리하며 살았는데 아이가 하나 더 나오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우리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이사 vs. 집정리
아이가 없을 때는 짐을 후다닥 싸서 이사를 잘 다녔지만 아이들이 있으니 이사 가기가 쉽지 않았다.
짐이 많은 것도 귀찮긴 했지만 무엇보다 아이의 학교, 어린이집, 남편의 직장 등을 고려할 때 이곳이 최적화되어 있는 곳인데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면 집만 해결이 되고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같은 동네에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지면서 이사 갈 준비를 하면서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집을 알아보면서 물건을 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물건을 비우기 시작했다.
'당장 내일 이사 간다면 이 물건들을 가져갈 것인가? 버릴 것인가?'가 비우는 기준이었다.
물건을 정리하던 어느 날,
내가 처음 유학 갔을 때가 생각났다.
내 짐의 무게는 60kg 정도였다.
이민가방에 꾹꾹 눌러서 최대한 많은 짐을 넣었는데 그중 40kg 정도는 한국음식이었고 나머지는 옷과 책이었다.
그리고 처음 살았던 기숙사는 한 방에 3명이 살았는데 옷행거 하나와 책상, 그리고 침대가 나에게 주어진 공간이었다. 내 옷은 행거에 다 걸었고 플라스틱 서랍을 하나 사서 그 안에 속옷을 정리해서 넣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했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소비가 늘어났고 수입이 늘어나면서 소비는 더 많이 늘어나서 현재 나에게 많은 물건들이 함께한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옷과 신발, 가방.
그리고 지인들에게 받은 육아용품들과 아이들 옷 책들을 내가 선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아이들에게 잘 사용된 물건이라고 해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불필요한 것들이 있다.
잠깐 몇 달 동안 사용하고 필요 없어지는 육아용품도있고 아이들 옷은 금세 작아진다.
한철이 지나면 아이들 옷은 비워줘야 한다.
집을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이 상태로 더 넓은 집에 간다고 해서 우리 집이 정돈이 된 깨끗한 집이 될까?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비우고 나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사 가는 것을 보류했다.
그리고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순서 1 : 사용하지 않는 물건 비우기
시작은 비우기부터였다.
사용하지 않는 것부터 비우고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도 비웠다.
일 년에 한두 번 사용하는 레저용품 같은 것은 모두 비웠다.
정리순서 2 : 2개 이상 있는 물건은 1개만 남기고 비우기
같은 종류가 2개 있으면 되도록 하나만 남겨 두었다.
선풍기 3개, 식탁 2개, 아기띠 2개 등등..
모두 하나씩 만 남겨두고 비웠다.
2개가 있으면 편리할 때가 있긴 하지만 공간을 생각하면 없는 게 더 쾌적하다.
정리순서 3 : 한 공간에서 우선순위의 물건을 남기고 나머지는 비우기
거실에 소파와 식탁높이의 테이블이 있었다.
구축아파트라 주방이 좁아서 테이블을 거실에 두어야 했다.
거실에는 소파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집을 쾌적하게 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더 필요했다.
거실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소파와 테이블 중 우선순위는 당연히 테이블이다.
그래서 과감히 소파를 비웠다.
아이가 소파에서 뒹굴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소파에 앉아서 책도 읽고 간식도 먹고 유튜브도 보면서 놀아서 소파를 비울 때 고민을 많이 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소파가 있었기 때문에 아이는 소파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아이는 소파 비우는 것을 반대했지만 아이를 설득하고 우리는 넓은 공간을 선택했다.
미니멀육아
육아는 템빨이라며 조금이라도 엄마들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많은 육아용품들이 나온다.
물론 엄마들이 조금 편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갖추다 보면 물건에 치여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공간이 없으면 아이도 자유롭지 못하다.
1) 아기침대
2) 범퍼침대
3) 놀이매트
4) 유아용 테이블
5) 베이비룸
위 다섯 가지는 대표적으로 육아용품으로 사는 것들이다.
옛날 어른들이 아기를 키울 때 이런 물건들이 필요했을까?
아기띠의 종류도 참 많다.
아기띠의 경우 편한 아기띠가 있고 그렇지 않은 아기띠가 있어서 시행착오가 좀 있었다. 국민아기띠라는 제품을 알아서 사용했는데 너무 편하고 좋았다. 그리고 아기가 좀 커서 힙시트가 좋다고 해서 힙시트를 샀는데 의외로 힙시트가 편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국민아기띠 하나만 있으면 충분했다.
육아용품의 경우 좋은 제품을 찾는 것이 어렵다. 워낙 마케팅을 많이 하기 때문에 좋은 것처럼 보인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많이 해서 진짜 좋다는 솔직한 후기인지 제품을 제공받아서 쓰는 후기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고 좋은 제품을 잘 선택한다면 굳이 여러 종류의 아기띠도 여러 종류의 유모차도 필요 없다.
수면분리를 하겠다고 아기침대를 사용하고 토들러침대를 사용하고 유아용 침대를 사용한다.
아기가 성장할 때마다 침대를 바꾸는가 하면 아기침대를 두고 범퍼침대를 추가하기도 한다. 아기침대를 사고도 수면분리가 안 되어서 결국 침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처음부터 어린이용 침대를 사서 사용해도 무방하고 침대를 따로 사지 않아도 괜찮다. 물론 모두 다 잘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옛 어른들이 사용한 육아방법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많은 육아용품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에 있는 물건을 치우면 아기가 부딪힐 일이 적어진다.
침대프레임이 없이 매트리스만 있다면 아기가 보다 안전하다.
베이비룸이 필요 없는 환경으로 만들 수 있고 아기침대가 필요 없는 환경으로도 만들 수 있다.
젖병소독기, 기저귀갈이선반, 기저귀전용쓰레기통, 전동바운서 등 다양한 육아용품이 나오고 엄마들을 조금 더 편리하게 해 주지만, 상황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고 필요 없을 수도 있는 물건이 육아용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