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에 첫 검진을 받고 오는 날 초음파 영상을 볼 수 있는 사이트에 등록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나의 주변은 육아용품업체들의 마케팅에 둘러싸이게 된다.
궁금해서 포털사이트에서검색을 하면 알고리즘으로 연관된 제품의 광고가 뜨기 시작한다. 쇼핑몰에서 육아용품을 하나 사기 시작하면 이 또한 알고리즘으로 추천제품이 뜨기 시작한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영상을 찾아보면 그와 관련된 영상들이 뜨면서 육아제품들의 정보가 수없이 쏟아진다.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다.
필요할 것 같아서 샀던 제품들 중에는 필요 없는 것들이 꽤 많다.엄밀히 말하면 필요하지만 없어도 될 물건들이다.
출산과 동시에 한차례 '육아전쟁'이 끝나고 나면 첫돌이 될 때 즘은 '조기교육전쟁'이 시작된다.
아이의 두뇌를 계발해 준다는 교구가 쏟아져 나오고 출판사나 교구업체에서 엄청난 마케팅을 한다. 마케팅은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시작된다. SNS를 통해 내가 찾아보는 정보도 많고 간접적으로 흘러들어오는 정보도 많다. 설명을 듣고 있으면 모두 좋아 보인다. 그리고 모두들 한다고 하니 나도 하나쯤은 사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으로 유아용 전집이다.
유아기의 조기교육전쟁이 막을 내릴 무렵에는 본격적인 학령기 '교육전쟁'의 준비태세로 들어간다. 조기교육전쟁에서 살아남은 엄마들도 학령기의 교육전쟁에서는 모른 척하고 등을 돌릴 수가 없다.
조기교육전쟁에 휘말리지 않았던 엄마들은 보통 아이가 어릴 때는 '나는 저렇게 사교육에 열내는 엄마가 안 되어야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7살 학령기에 접어드는 시기에 많은 엄마들의 태도가 변한다.
한글떼기부터 시작해서 '학교에서 잘 적응할까?' 걱정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지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수업을 듣고 그에 해당되는 활동 한다.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면 학교에 적응하기 힘든다. 그리고 학교에 있는 시간이 재미가 없고 지루하며 40분씩 앉아있는 수업시간이 견디기 힘들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거의 대부분의 엄마들이 '공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유아기에는 잘 먹고 잘 자라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하던 엄마들이 아이가 커 갈수록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교육정보가 들어오면 올 수록 해야 할 것들이 많게 느껴지고 필요한 것들이 많게 느껴진다. 흔히 말하는 옆집엄마들의 움직임에 가장 많이 동요되기 시작하는 것도 초등입학 전의 시기이다.
나는 결혼 전에는 '사교육에 허리가 휘청거린다'는 말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조기교육에 유난을 떠는 엄마들을 보면 '과연 아이는 행복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면서 유아기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나서 '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은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관찰을 잘하고 호기심이 정말 많다.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궁금하다. 3살이 되면 '왜?'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한다. 아이가 궁금해할 때 지적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면 아이는 자발적으로 배우려는 동기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노출을 통해 아이의 관심을 가지게 할 수도 있고 재능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아이에게 배움의 동기가 있을 때 부모가 적절하게 채워주지 않으면 아이의 호기심은 사라진다. 그래서 유아기의 교육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힘든 공부가 아니다. 배움의 즐거움 그 자체이다.
육아전쟁과 조기교육전쟁에서 많은 장비를 사고 쟁여놓아서 집이 터질 것처럼 육아용품이 많아진 엄마들은 '미니멀 육아'라는 새로운 육아법을 받아들였다. 극단적으로 미니멀육아를 하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 주지 않고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도록 한다.
나는 물건이 적은 것만을 두고 '미니멀육아'라 생각하지 않는다. 물건의 유무를 떠나서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것을 미니멀육아라 생각한다. 아이의 관심에 따라 필요한 것들을 잘 찾아주는 것이 진정한 미니멀육아다.
옷장에 옷이 가득 차면 필요한 옷을 잘 찾을 수 없듯이, 집안에 아이의 물건이 중구난방으로 가득 차면 아이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옷을 잘 찾아 입을 수 있도록 미니멀 옷장을 만들듯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적절한 시기에 잘 공급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아이의 물건을 줄이는 것은 진정한 미니멀육아가 아니다.
책육아 vs 미니멀육아
맥시멀한 육아를 하던 엄마들은 책도 많이 사주는 경향이 있다.
맥시멀육아를 선택한 분들에게는 고민이 되지 않겠지만 미니멀육아를 선택한 엄마들에게 난관이 봉착하는 일이 있는데 그게 바로 '책육아'이다.
책육아란, 책으로 육아한다는 것으로 책 읽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육아방법을 말한다.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책을 많이 보여주고 책과 친근한 삶을 살아가도록 가이드하는 것이다.
환경이 주는 영향을 믿기 때문에 집에는 많은 책들이 있고 엄마가 책을 선별해서 아이에게 좋은 책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소유물을 줄이려고 노력하는데 책육아를 하는 사람은 장난감은 쉽게 비우지만 책은 잘 못 비운다. 살 빠지면 입을 거라며 보관하는 작은 옷처럼 '언젠가는 읽을 거야'라는 믿음으로 책을 보관하는 것 같아서 찝찝함이 남는다. 엄마가 좋은 책이라 판단다고 전집을 사 주었지만 막상 아이가 좋아하지 않으면 비싼 값을 치렀기도 하고 자신의 안목을 믿고 싶기도 해서 책을 비우는 것에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책육아를 하는 엄마들은 두 부류가 있는데 한 부류는 자신이 책을 좋아하는 부류이고 다른 한 부류는 자신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가 책을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많이 사는 부류이다.
책육아를 할 때는 아이에게 책을 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선택할 권리를 주어야 하고 다른 놀이를 하고 있는데 책 읽기를 강요해서도 안된다.
엄마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도 자연스레 책을 읽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책을 읽어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은 최악의 행동이다.
비싼 전집을 선택한 것은 엄마의 욕심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어떠한 의무를 지게 해서는 안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미니멀육아를 선택했기에 장난감도 책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나의 육아동지가 책육아를 하고 있어서 그 집에 놀러 가면 책이 많았다.
그것도 재미있는 책이 많았다.
우리 아이가 그 집에서 책의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도 조금씩 책을 사 주기 시작했다.
물론 도서관도 이용했지만 워킹맘이었던 나는 도서관에 오가는 시간이 잘 맞지 않았고 주말에는 다른 일로 바빠서 도서관을 자주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둔 이웃이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다면서 자신의 아이 책이 우리 집에 필요한지 물어보셨다. 나는 필요 없는 책이면 주시고 가라고 했고 이사하는 날 우리 집 현관에 책을 소복이 쌓아두고 가셨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유아기부터 초등기까지 그 집 아이가 봤던 책들이 몇백 권쯤 우리 집 앞에 쌓여있었다.
아이가 어릴 때라 초등책은 처분을 할까 생각했는데 아이가 어떤 책을 볼지 몰라 그냥 두었다.
그때부터 나도 본격적인 책육아가 시작된 것 같다.
일단 책을 꽂을 책장을 샀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 어떤 책인지 유심히 살펴봤다.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원이나 학습지회사에서 전집을 함께 판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샘플로 책 한 권을 나눠주는 것 같았다. 받은 책들 중에 전집 같은데 딱 한 권 있는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아이가 좋아해서 그 책의 전집을 구매하게 되었다.
아이가 유치원 도서실에서 읽은 책을 말하면서 사달라고 했다. 초등학교에 올라가고 나서는 학교 도서관에 있는 초등학습만화에 눈이 뜨고 사달라고 했다. 이런저런 책들을 아이가 보면서 사달라고 하는 책들이 늘어났다. 모두 다 사주지는 않았지만 유익해 보이는 책들은 사 주었다.
나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많은 책들을 협찬받을 수 있었다. 전집은 아니고 단권으로 초등용 학습만화 같은 것이었는데 아이는 내가 협찬받아오는 책들을 좋아했고 다양한 책들을 보는 재미에 빠졌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에 책이 많아졌는데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나에게는 이 책들이 짐이 되기 시작했다.
잘 안 읽는 것 같아서 처분할까 생각하고 현관에 빼 두면 아이가 앉아서 그 책을 보고 있고 좀 낡아서 버릴까 싶어서 빼놓으면 아이가 물어본다.
"엄마 이거 버릴 거야? 내가 좋아하는 책인데..."
첫째가 초등학교에 올라가면 유아용 책은 다 비워야겠다 결심하고 몇 년을 기다렸는데 5살 터울의 동생이 태어났다.
이런, 내 생애 미니멀라이프는 힘들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미니멀라이프가 아니었다.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한다면서 많은 책을 안고 있는 나의 모습에 모순을 느꼈는데 그때 알게 되었다.
미니멀라이프는 물건의 양이 아니라는 것과 필요로 하는 물건의 양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5,60평대 넓은 집에 살면 이 책들이 그리 큰 짐으로 느껴지지 않을 거야.
우리 집이 작아서 큰 짐으로 느껴질 뿐이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삶이 미니멀라이프이다.
필요한 것이 많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맥시멀이라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미니멀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미니멀리스트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심플라이프를 추구한다고 한다.
엄마표영어 vs. 미니멀육아
한국엄마들 중에 영어교육에 관심이 없는 엄마는 없을 것이다.
나는 20대를 외국에서 보내고 영어의 스트레스가 없이 회사에 취직했던 터라 한국의 분위기를 잘 몰랐다.
한국에 와서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영어교육열풍이다.
우리 때는 중학교 1학년에 학교에서 영어를 시작했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영어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예전에 비하면 영어교육을 시작하는 나이는 점점 어려지고 있는데 요즘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교에서 영어수업이 있다 보니 어린이집에서부터 영어수업이 있다.
기관에 의존하기보다는 엄마가 선생님이 되어 아이의 영어를 가르치는 것을 '엄마표영어'라고 한다.
영어교육기관의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집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기관에 보내기에는 아이가 어려서 집에서 영어교육을 하는 경우도 있다.
10년을 넘게 영어를 배웠는데도 영어에서 자유롭지 못한 엄마들 또는 영어를 전문적으로 배운 엄마들이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서 엄마표영어를 시작한다.
먼저 엄마표영어를 시작한 엄마들은 영어교재나 프로그램들을 소개하는 선배맘이 되어서 엄마표영어인플루언서가 되어있다. 아이가 영어로 말하는 영상을 올리면 반응은 폭발적이어서 그 엄마의 영어교육방식을 추종하는 팔로워들이 늘어나고 그 선배맘이 사용한 교재, 선배맘이 추천하는 책을 사게 된다.
미니멀라이프로 닫혀있던 엄마들이 지갑도 쉽게 열게 하는 마술을 가지고 있다.
책육아 못지않게 엄마들 지갑을 잘 여는 것이 엄마표영어이다.
지갑만 열리는 게 아니라 집에 영어책과 교재들, CD, DVD 그리고 요즘은 각종 소리펜까지 영어와 관련된 물건들이 쌓이고 또 쌓인다. 아이가 잘 따라와 주면 좋겠지만 아이가 보지 않으면 엄마들은 마음이 조급해지고 비싼 값을 치른 물건들이라 쉽게 처분하지도 못한다.
선택한 교재가 우리 아이와 잘 안 맞나 보다 생각하고 또 다른 책을 사고 또 다른 프로그램을 선택한다.
그러면 또 그만큼의 짐들이 집을 가득 메운다.
엄마표영어를 하는 집들을 대부분 거실이 공부방이 되어있다.
책육아하는 엄마들 중에 엄마표영어를 안 하는 엄마는 있지만 엄마표영어를 하는 엄마들 중에 책육아를 안 하는 엄마는 없는 것 같다.
영어도 결국 언어이기 때문에 언어능력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어로 된 책도 많이 읽어야 하기에 엄마표영어에서 책육아는 필수적이다.
엄마표영어 분야의 인플루언서엄마들을 추종하면서 새로 나온 영어책, 한국어 전집을 마구마구 사게 된다.
인플루언서 선배맘이 공구를 한다, 세일을 한다, 특별판매, 한정판매를 한다고 하면 백화점세일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엄마들이 어느새 결제를 하고 있다.
아이에 대한 교육열이 소비를 억제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아이가 잘 따라와 주고 영어를 잘하게 되면 그것만큼 보람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엄마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포기를 하게 되고 아이를 학원에 보내게 된다.
출판사의 마케팅에 가장 잘 먹히는 게 엄마표인플루언서인 것 같다.
나 역시 엄마표인플루언서를 팔로우하며 여러 가지 노하우를 배우고 필요한 책들을 샀다. 소리펜도 하나 구매했다. 그러나 이전에 샀던 책을 아이가 다 끝내지 않으면 새로운 책을 사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이의 흥미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종류를 보여주고 시도했는데 3,4 가지 방법을 시도하면서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영어를 노출하는데 집중했다.
3,4종류의 방법으로 아이의 흥미를 못 찾았다면 엄마가 엄마표영어에 소질이 없거나 아이가 준비가 안 된 것이다. 적당한 때에 학원이나 학교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 좋겠지만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직업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잘하지는 못하지만 외국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영어를 사용하는 일을 했고 필요할 때마다 공부했다. 어릴 때 영어를 시작하면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중언어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아이에게 영어노출을 해 주는 편이다.
우리 아버지의 경우에는, 나보다 더 늦게 영어공부를 시작하셨다. 나는 초등학교에 시작했지만 아버지는 중학교정규과정에서 알파벳을 처음 배웠고 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다. 다른 일을 하시다가 50대에 영어공부를 다시 하셨고 영어통역일을 시작하셔서 80세가 된 지금까지 현업에 종사하신다.
아버지를 통해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것을 보았기에 아이에게도 어릴 때 배워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나 역시 20살에 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가 생겨서 20대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외국에 유학 가서 공부하면서 내가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헛웃음도 나왔다. 때가 되어야지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다만, 아이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 엄마보다는 빨리 철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기교육을 하지만 지나친 조기교육은 아이의 정서발달에 도움이 안 된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육아
아이들은 빈 공간에서 상상하며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우리 아이의 경우 소파를 비워낼 때는 많이 아쉬워했지만,
그만큼 넓어진 거실에서 책으로 집을 짓고 놀이를 했다.
테이블에 이불을 덮고 아래에 숨어서 아지트를 만들며 놀기도 했다.
한 번은 아이가 종이집을 지어보는 것이 소원이라 하여,
우체국에서 택배박스를 2만 원 넘게 주고 여러 개 사 와서 그걸 잘라서 거실에 종이집을 만들었다.
어마어마하게 부피가 커서 한 달쯤 자유롭게 놀게 해주고 나서 모두 치웠다.
집에서 빈 공간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도화지 같은 역할을 한다.
아이 스스로 흰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색채를 입히며 놀이를 하기 때문에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모든 아이들은 새 장난감을 좋아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장난감은 한 달을 넘게 재미있게 가지고 놀지 않는다.
아이가 사달라고 한다고 무조건 사주지 않고, 단순한 욕심으로 단순한 호기심으로 원하는 물건은 사주지 않는다.
우리 아이의 경우에는 블록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레고를 포함해서 블록은 여러 종류가 있었고 블록으로 엄마와 함께 놀았다.
캐릭터 자동차, 변신로봇 같은 것을 좋아하는 5,6세 시기에는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에만 원하는 장난감을 사 주었기 때문에 아주 고심해서 고르고 여러 번 생각하고 결정했다.
정말로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스스로 물어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도록 했다.
7세 정도부터는 장난감보다는 경험을 선물했다.
당일치기 여행을 간다거나, 동물원, 수족관, 공연 등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했다.
고양이, 강아지를 사 달라고 할 때는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사 주겠다고 했는데 고양이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 조금 더 키우기 쉬운 금붕어를 키워보기로 했다.
스스로 아침저녁으로 금붕어 밥을 주기로 약속했지만 3개월쯤 뒤에는 귀찮아졌는지 이제 금붕어를 안 키우고 싶다고 했다. 막상 금붕어를 키워보니 동물은 장난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그리고 장수풍뎅이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장수풍뎅이를 키우면서 고양이, 강아지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다.
장수풍뎅이와 장수풍뎅이 사료(곤충젤리), 장수풍뎅이 집까지 모두 아이의 용돈으로 사서 키우고 있다. 아이는 스스로 용돈을 벌어서 장수풍뎅이 두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아이가 학교에 지각하지 않은 날이면 100원을 주는데 장수풍뎅이 두 마리가 하루에 곤충젤리 하나를 먹는데 곤충젤리 하나가 100원 정도 한다. 아이는 지각을 하지 않고 학교에 가면 장수풍뎅이에게 먹이를 사 줄 수 있다.
어느 날 장수풍뎅이가 작은 집 있는 게 답답해 보였는지 장수풍뎅이에게 더 큰 집을 사주고 싶다고 했다. 장수풍뎅이집도 용돈을 모아서 사 주라고 했다. 아이는 저금통에서 돈을 꺼내서 장수풍뎅이 집을 사 주었고 매일 아침 장수풍뎅이집에 젤리를 하나씩 넣어주고 있다. 장수풍뎅이 젤리를 사주기 위해 아이는 지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워크북도 열심히 한다.
'소유'를 한다는 것은 경제적 책임도 따른 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싶어서 그렇게 하기로 정하고 장수풍뎅이를 키우는 것을 허락했다. 생명이 있는 것을 소유한다는 것은 장난감을 소유하는 것보다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수학, 영어, 한자워크북을 하는데 매일 해야 할 분량을 다 하면 100원씩 줬다. 더 어릴 때는 책이 한 권 끝나면 선물을 사 주었는데 돈의 개념이 생겨서 이제는 돈을 주고 스스로 갖고 싶은 곳에 사용하도록 한다. 아이는 용돈으로 과자를 사 먹어도 되고 문방구에서 포켓몬카드를 사거나 딱지를 사도 되고 뽑기를 해도 된다. 평소에 엄마가 잘 사주지 않는 것들을 잔소리 듣지 않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했다.
올해 9살이 된 아들, 아직도 갖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다. 용돈을 많이 모았지만 쉽사리 사지 않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구매하는 좋은 소비습관을 가지고 있다. 미니멀육아를 하면서 경제관념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소비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면서 돈정리를 하게 된 것처럼 아이도 아이 수준에 맞는 돈정리를 배울 수 있었다.
극단적인 미니멀육아도 올바른 방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이들은 보고 경험하는 것들이 많아야 그중에서 자신의 적성을 찾고 흥미를 찾을 수 있다.
흰 벽만 있는 집에서 창의성을 길러라고 한다면 어떻게 아이가 창의성을 기를 수 있을까?
꼭 장난감이 아니더라도 훌륭한 교구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놀잇감은 필요하다.
집에 장난감이 별로 없을 때, 나는 첫째가 앉아서 딸랑이를 가지고 놀 무렵 투명한 페트병에 콩을 넣어서 뚜껑을 닫고 놀게 했다. 흔들면서 소리를 듣고 병을 굴리면서 함께 굴러가는 병 속의 콩을 보며 놀았다.
집에서 보지 못한다면 밖에서 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집에서 만질 수 없다면 밖에서 만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첫째가 모래놀이를 좋아했는데 우리 집에서는 모래놀이할 공간이 없어서 모래놀이 장난감은 사 주지 않고 대신 모래놀이터가 있는 유치원에 보냈다. 아이들은 보고 만지면서 발달한다. 공원에서 숲에서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흙을 만지고 나뭇가지로 놀아본 아이와 흰 벽만 있는 집에서 패드로 영상만 본 아이는 느끼는 것이 분명히 다를 것이다.
미니멀 육아를 선택했다면, 내가 아이의 권리를 막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니멀육아'라고 하면 나무장난감 1개만 사주고 책은 도서관에서만 빌려보는 이미지가 있다.
사람마다 미니멀의 기준이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 육아'는,
각 아이의 특성에 맞게 아이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공간에 맞는 양을 공급하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서 육아가 조금 더 편해졌다.
미니멀라이프로 소비와 소유의 기준이 생기다 보니 아이에게도 이를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인지, 아이에게 필요한 경험인지,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인지 명확해진다.
육아가 힘든 이유 중에 하나가 엄마가 기준을 세우지 못할 때이다.
다른 집 아이들이 하는 것, 다른 집에 있는 것이 우리 집에 필요한 것인지 엄마가 판단해야 한다.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것, 우리 집에 필요한 것을 잘 구별하면 힘을 빼고 육아를 할 수 있고 엄마도 아이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미니멀육아'는 소유물의 양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남들이 하는 교육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