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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가닉씨 May 29. 2018

두께는 여유의 척도

샌드위치의 계절이 다가온다



빵 한 장과 토마토, 잎채소, 햄이나 치즈, 오이, 파프리카, 구운 가지 등 내가 좋아하는 속재료 왕창 그리고 다시 빵 한 장. 이 두툼한 샌드위치 한입 베어 물기 위해서는 대체 얼마나 쩍- 하고 입을 벌려야 하는지!

뜬금없지만 한 때는 샌드위치의 두께가 내 주머니 사정과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샌드위치 하면 아직도 그때가 생각난다.     




샌드위치와의 인연

십 년도 더 된 이야기다.

머나먼 곳에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일하랴, 공부하랴 빨빨거리던 그때만 해도 나는 아침을 거르지 못했다. 일어나자마자 한 일은 문제(?)의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었다.

얇은 식빵에 치즈 한 장, 더 얇은 생햄 한 장(아르바이트비를 받는 날엔 두 장)을 올리고 다시 식빵을 얹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1, 2, 3…10초가 땡! 하기를 기다린다.

전자레인지의 문을 열고, 김이 올라 말랑거리다 못해 흐물텅거리는 빵을 꺼낸다. 이내 축축해진 빵 덩이를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서는 고소한 치즈와 짭조름한 햄 맛이 고짠고짠의 조화를 이룬다. 이런 나를 보며 룸메이트였던 중국인 리비Libby(이름도 안 잊는다)는 늘 한 마디씩 했다.


“지하이!(내 이름의 중국식 발음) 양상추, 두꺼운 햄이나 베이컨, 달걀프라이, 토마토 같은 걸 추가로 넣으면 더 근사한 한 끼가 될 텐데. 왜 그렇게 빈약하게 먹어?"

“난 심플한 맛이 좋거든.”

매일 아침마다 되풀이되는 대화였다. 하루 이틀이면 멈출 법도 한데, 리비는 이런 나를 무척이나 이해하기 어려웠나 보다. 나라고 물론 내가 좋아하는 재료를 잔뜩 넣어 먹고 싶지 않았겠는가. 넉넉하지 않은 생활에 돈을 아껴야 했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진 학원-알바의 일상으로 눈이 떠지지 않는 아침은 늘 전쟁통이었다. 그러니까 시간과 돈이 부족한 타지의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전술이었던 거다.

    

이 비련(?)의 샌드위치와 나의 인연은 다음 해에도 이어졌다.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동유럽 일주 중이었던 나는 한 손엔 기다랗게 늘어진 봉투를, 어깨엔 어마한 무게의 배낭을 짊어졌다. 배낭이 곧 삶의 무게라며 갑자기 철이든 것만 같은 스스로에게 경탄하고 나면 어느새 숙소에 다다랐다. 짐을 풀고 가볍게 나와도 한 손엔 반드시 식빵과 땅콩버터 그리고 일회용 나이프가 든 봉투가 들려있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애매한 끼니에는 빵에 땅콩버터를 발라 먹었다. 이렇게 약 40여 일 동안 나는 땅콩버터 바른 샌드위치 빵을 거의 매일같이 먹었다. 빵이 떨어지면 마트에 가서 개중에 양이 많고 가격이 가장 싼 빵을 샀다. 속재료 정도는 바꿀 만도 한데, 땅콩버터의 용량이 너무 커서 버리거나 새로 사기가 아까워 그냥 먹었다. 마지막 날 짐을 싸면서 땅콩버터병을 버리던 쾌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맘때쯤 했던 여행의 끼니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아침에 미리 싸 다니기도 했다 2009 @어디였더라(안좋은 화질 주의)


두께는 여유의 척도

사실 샌드위치는 잘 차린 것과 같은 ‘갖춤’보다는 ‘간이’, ‘대체’와 같은 가벼운 느낌이 강하다. 다른 음식에 비해 제약이 덜해서 언제 어디서든 쉽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샌드위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나의 속사정과 비슷한 유래가 있다.  


영국에 ‘샌드위치’라는 (지금으로 치면)공무원이 있었다. 도박을 즐기던 그가 게임 중에 빨리, 그리고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빵 사이에 고기를 끼워 먹던 것이 샌드위치의 시작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상대 진영의 루머로 밝혀졌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도박과는 거리가 멀었고, 스포츠가 취미였으며 루머만큼 부패하거나 무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시간을 다투며 일을 처리해야 해서 간단히 먹기 시작한 것이 이 샌드위치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미국과의 전쟁에서 전술의 삑사리(?)로 그의 이미지는 무능한 공무원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단다. 이것 말고도 샌드위치의 여러 가지 유래가 있지만, 어찌 됐든 시간을 아끼기 위해 먹던 것이 샌드위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국 현지(?)의 오픈 샌드위치 먹기는 힘들, 맛은 긋긋 @Jamie's Restaurant, London, UK

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는 샌드위치 붐이 일었는데 지금의 가벼운 이미지와는 좀 다르다. 이때 샌드위치는 특급 요리사가 직접 내왔으며, 캐비어나 로브스터 등 값비싼 속재료를 넣는 요리사가 최고의 평가를 받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요리였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샌드위치의 두께는 곧 내 여유의 척도라는 게 전혀 아닌 말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속이 갖춰지지 않은 나의 샌드위치 이야기에 지지리 궁상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에 비해 자기 절제가 서툰 내가 악착(?)과 의지를 보인 시절의 추억이기 때문이다. 샌드위치라는 음식에 대한 나만의 기억과 애정이랄까. 아마 아주 옛날부터 저마다의 방법으로 샌드위치를 먹어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오 년 동안 샌드위치를 먹지 않았던 건 왜 때문이죠.          


어느 해의 봄부터는 쳐다도 안 볼 것 같은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상추, 로메인, 치커리, 겨자채, 오크리프, 케일 등의 푸성귀와 오이, 애호박, 피망, 단호박 등 땅의 열매가 지천인 그즈음에.

덮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속을 꽉 채워서 빵을 꾸왁- 누를 때, 여기저기 떨어지는 자투리를 주워 빵 틈바구니에 넣을 때마다 십 년 전에 먹던 그 빈약한 샌드위치가 떠오른다.      

올해도 역시나 기나긴 겨울과 봄을 지나, 어느덧 여름이 다가온다. 다시 빵과 빵 사이에 다양한 속재료를 잔뜩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계절이 온 것이다.     



빈약함이란 없다
생김새와 맛도 두께도
내 맘대로 샌드위치  
채소 담뿍 낑겨 넣은 샌드위치

속재료는 잎채소면 다 됩니다.(잎채소 중 단단한 로메인이 좋아요. 하루 이상 두고 먹을 때는 상추 같은 물기 많은 채소는 피해 주세요.)

샌드위치용 식빵(혹은 기호에 따라 통밀빵, 넓적하게 자른 바게트, 사우어 브레드, 베이글 등도 모두 가능) 한 면에 홀그레인 머스터드소스를 얇게 발라줍니다(물론 마요네즈, 허니머스터드 등도 가능, 그렇지만 맛이 너무 강한 케첩류는 피해 주세요). *맛보다는 식빵에 물기가 스며드는 걸 방지하는 용도입니다.

잎채소의 끄트머리를 교차로, 큰 것은 반 접어서 잔뜩 쌓아줍니다.

토마토는 필수! 햄, 치즈, 닭가슴살, 참치 등 토핑은 온전히 개인 기호에 따라, 양껏 아주 잔뜩 넣습니다.(속재료를 넣는 순서가 있지만, 그런 것까지 살필 여유 있나요! 흘리지 않을 정도로 잘 넣어주세요!)

안 닫힐 것 같지만 살살 달래어 뚜껑(?)을 덮어주고, 랩으로 꽉 감싸줍니다.

자리싸움으로 한바탕 치열했을 속재료가 잠잠해지도록 약 20분 후에 반을 가르면 완성!

속 메인 재료를 익히고, 빵을 구워 싸면 핫 샌드위치, 생채소와 조리하지 않은 속재료를 이용하면 콜드 샌드위치!      

먹기는 힘든, 뚜껑없는 오픈 샌드위치

꼭 뚜껑을 덮어야 할까요, 가끔 다르게 만들어 봅니다. 특히, 빵이 홀수로 남았을 때 좋아요!

식빵 위에 토마토와 양파, 치즈를 올립니다(데울 거니까 잎채소를 제외하고는 어떤 재료도 가능합니다).

미니 오븐에 넣고 5분을 데웁니다. *프라이팬에 올리고 물을 살짝 뿌려 뚜껑을 덮어도 돼요.

치즈가 녹으면 꺼냅니다.


빵 사이에 뭔가를 끼우기만 하면 #그게바로 #샌드위치의길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달랑 치즈와 햄만을 넣은 샌드위치는 프랑스의 크로크 무슈(croque-monsieur, 바른 표기는 크로크므시외)와 닮아있었다. 그리고 땅콩버터와 잼을 발라 먹는 달달하고 고소한 샌드위치는 미국인이 즐겨 먹는 것이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상황껏 최선을 다했던 나의 젊은 날이 대견하다.      


푸성귀와 온갖 열매가 지천인 여름엔 샌드위치가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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