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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가닉씨 Nov 23. 2018

이번 주말엔 뭘 먹지?

‘살 맛’ 나는 한 접시 이야기



계획대로라면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서 부엌 불을 켜야 하는데, 이번 주도 역시 실패다. 자책 대신 바깥을 살핀다. 앞엔 나와 같은 모습을 한 네모반듯한 건물이 있고 뒤엔 뻥 뚫린 노는 땅이 있다. 그래도 여름, 가을께에는 푸르고 노랗고 붉던 것들이 제법 봐줄 만했는데, 어느새 창문 밖 풍경은 튀는 색 없이 건조하고 앙상해진 느낌이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색깔의 주말을 보냈을까. 매년, 매달, 매주 셀 수없이 맞는 주말 아침인데도 늘 다르다. 평일 내내 같은 일상을 보내는 우리에게, 혹은 그렇지 않은 이에게도 정말 공기가 다른 건지 여하간 왜인지 모르게 주말 아침은 유독 특별하게 느껴진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으로 토요일 아침을 맞이하려던 야심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럴 때일수록 행동은 더 치밀해야 한다. 어제저녁부터 아니, 사실 월요일부터 생각해둔 나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면 말이다.

남편을 깨울까 했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오롯이 혼자서 특별한 아침을 보내고 싶다.  후딱 커피 한 잔과 빵을 준비한다. 빵 한 조각을 넣고 우물거리는 입도, 접시를 응시하는 초점 없는 두 눈도, 커피잔의 고리를 잡고 있는 손가락도 저마다 본래 가진 감각을 더 진하게 느끼느라 정신이 없다. 아아,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자고로 이 순간을 위해 지긋지긋한 일상을 보낸 거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문득 토요일을 기다리는 게 낙이던 중학생이던 단발머리와 허연 얼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이야 주 5일이 당연한 시대지만, 그때만 해도 회사든 학교든 주 6일 혹은 격주제가 막 도입되던 시기였다. 평소보다 수업이 적은 4교시라는 이유로 토요일의 등굣길은 그 어느 때보다 이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특히, 그중 둘째, 넷째 주 토요일에는 발걸음이 가볍다 못해 하늘로 솟아오를 지경이었다. 이날은 C.A.가 있는 날로 단발머리와 허연 얼굴의 친구는 다른 동아리보다 빨리 끝내준다는 영화감상 동아리를 선택했다. 남들보다 30분이나 일찍 학교를 마친 이들은 황급히 가방을 챙겨 깊숙한 건물 지하에 있던 일명 ‘떡볶이백화점’으로 향했다. 7~8군데의 떡볶이 가게가 몰려있던 그곳은 '영호’나 ‘나래’와 같이 그 집 딸 아들의 이름을 전면에 내 걸거나 ‘샛별’, ‘꿈’과 같은 학생이라는 타깃을 고려해 희망(?)적인 단어를 조합해서 만든 oo분식, oo떡볶이집 등 저마다 작은 간판을 달고 인근 학생들을 맞이했다. 즉석떡볶이가 주 메뉴였고 집마다 사리의 종류가 곧 그 집의 특징이 되었다. 어느 집은 즉떡이 아닌 찰찰 넘치는 달짝지근한 국물이 특징인 집이 있었는데,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니까 이게 아마도 국물떡볶이의 원조가 아닐까 싶다. 또 어느 집은 정작 떡볶이보다는 남은 떡볶이 국물에 남은 떡을 잘게 쪼개어 밥을 볶고, 거기에 거뭇한 김 가루 잔뜩, 참기름을 휘휘 뿌려주는 '떡볶음밥'이 주력 메뉴인 곳도 있었다. 하지만 ‘그 토요일’에 이들은 떡볶이가 아닌 탕수만두가 맛있는 집을 택했다. 최소 주 5일을 제집처럼 드나든 곳이라 떡볶이에는 미련이 없던 것이다. 일찍 마치기도 했겠다, 무언가 특별한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한 마디로 한 주를 무탈히 보낸 자신들에게 대접했던 일종의 특식인 셈이다. 마치 우아한 외식을 앞둔 것 마냥 ‘탕수 만두 하나 주세요.’라고 외치면 이들을 알아본 아주머니가 만두 말고도 떡과 다른 튀김까지 섞어 평소보다 많은 양의 접시를 내어주었다. 둘은 허겁지겁 정신없이 먹기만 하다가 결국 배가 불러 교복 단추 하나를 푸를 때 즈음이 돼서야 단발머리가 '아, 진짜 살 맛 나지 않냐’하고 허연 얼굴에게 묻는다. 까르르- 웃음으로 식사를 마무리한 그들은 이제야 쏟아져 나오는 친구들을 기다리거나 인근에 있는 노래방에서 열창을 하고 난 뒤에야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단발머리는 월요일마다 짝꿍인 허연 얼굴에게 ‘그 토요일’이 끼인 주간이 맞느냐고 묻는 게 일상이었다.


이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 단발머리와 허연 얼굴은 하는 일은 다르지만, 토요일 아침을 열렬히 기다리는 공통점을 가진 직장인이 되었다. 다 큰 성인에게 특히 직장인에겐 불금은 빠질 수 없는 이벤트나 다름없다. 한때는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예외일 리 없었다. 창문 밖 어둠과 <무한도전> 시그널이 뒤섞인 어느 토요일 저녁, 그제야 빙글빙글 돌던 침대가 멈춰 섰다. 엊저녁 그깟 게 대수냐면서 토요일 따위는 없어도 된다고, 불금이라는 낙도 없으면 대체 대한민국 사람들은 뭘 위해 사는 거냐고, 남편과 친구와 동료와 술잔을 들며 외친 큰 소리도 비잉 빙 돌다 제자리를 찾았다. 휴대폰엔 대체 나의 토요일을 누가 훔쳐갔냐는 메시지가 정신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금에 가려져서 평화의 토요일이 사라지는 듯했다.


대체 주말엔 공기에 무슨 금가루라도 뿌려져있는 걸까. 늘 보는 집인데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여느 때처럼 해가 져있어야 하는데 시계를 보니 고작 오전 7시 30분. 출근하라고 신이 내 눈을 뜨이게 한 건가 싶어 아찔한 생각에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휴대폰을 보니 다행히 토요일. 불금 대신 건전한 금요일을 보내고 일찍 잠이든 덕에 토요일 아침을 맞은 것이다. 해장거리를 찾아 헤매는 대신 시원한 물 한 잔을 들이켜고 습관처럼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말라비틀어지기 직전의 빵과 가기 직전의 원두가 있다. 대개 주중에 먹다 남거나, 기껏 사두었는데 잊힌 것들. 뭐가 그리 바쁘다고 이 귀한 걸 기껏 사놓고선 방치했을까. 유청이 분리되어 물이 고인 크림치즈도 꺼냈다. 냄새를 맡아보니 다행히 아직은 괜찮다. 오늘내일하는 채소도 몽땅 꺼내 접시에 담았다.

부스석- 빵을 썰어 데우고, 드륵드륵-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렸다. 우두커니 앉아서 빵을 입안에 넣고 우물대다가 이때다 싶어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침과 빵만이 존재하던 퍽퍽한 입안에 퍼지던 커피 한 모금으로부터 ‘살 맛’ 나는 평화를 느끼는 토요일 아침, 이 순간이 시쳇말로 나의 소확행이 된 게 벌써 삼 년은 더 된 것 같다.


이렇게 매주 토요일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매일 먹던 떡볶이가 아닌 특별히 탕수만두를 간택했던 '그 토요일’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하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든다. 토요일의 접시는 평범하기 짝이 없지만, 특별하게만 느껴진다. 대개 한 접시에 담긴 것으로 커피와 곁들이면 좋은 빵이나 디저트, 요구르트나 과일 등이 대부분이다. 물론 어떤 날은 거창한 과정을 거친 음식도 있고 여전히 해장이 목적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접시엔 음식 외에 일상의 것이 담겨있다. 쳇바퀴 같이 흘러가는 일상의 지루함, 업무 스트레스와 고단함, 한 주도 무탈했다는 안도와 평화, 그리고 내겐 늘 고마운 식재료가 모두 한 접시에 담긴 걸 보고 있자니 어쩌면 인생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좋은 음악과 글귀까지 더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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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12시쯤 됐을까, 머리 위에 까치집을 얹은 남편이 구부정한 자세로 안방 문을 열고 나온다. 요새 업무 스트레스가 부쩍 심해진 남편을 위해 나의 접시를 비우고, 일 인분의 황태해장국을 미리 끓여두었다. 대체 어제 얼마나 마셨길래 이제야 일어났냐고 잔소리 한 바가지를 퍼붓고 싶지만, 덕분에 나는 오롯이 혼자 토요일 아침을 즐겼으니까 입을 꾹 다문다. 남편에겐 특식이나 다름없는 아무것도 섞지 않는 흰밥, 쉬기 직전의 파김치를 내어준다. 한 숟가락 뜨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걸쭉한 목소리로 ‘어우, 시원하다.’고 연신 외쳐댄다. 이내 그는 몇 숟갈 뜨다가 밥공기를 통째로 들어 국에 쏟아냈다. 황태와 무가, 흰밥이 뒤섞인 꽉 찬 한술을 입으로 가져간다. 부디 모든 스트레스도 얹어 잘근 씹어 넘기길, 그리고 내가 느낀 ‘살 맛’을 느끼길 바라며.





주말 아침엔 더 특별한 브런치를
‘살 맛’ 나는 한 접시 이야기

사실 주말인 만큼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기도 하지만, 여차저차 평일의 전쟁터를 겪고 온 지라 아무리 먹는 게 전부인 저도 과정이 복잡한 음식은 꺼리게 됩니다. 대부분 유통기한이 임박한 냉장고 속 음식이나 과일, 식탁 위의 빵을 한 접시에 올려 커피 한 잔을 먹는 게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음식에서 왜 ‘살 맛’을 느낄까요. 생각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뻔한 생각마저 듭니다.

여하간 요리법이랄 건 딱히 없지만, 그간 즐긴 '살 맛'나는 몇 가지의 토요일 아침 접시를 소개합니다.




자투리 채소를 맛있게 처리할 수 있는 데엔 단연 샌드위치가 최고입니다. 샌드위치 예찬은 이미 전에 글로 쓴 터라 더 이상 쓰지 않겠습니다. 빵이 없을 땐 우리밀 또르띠야가 제 몫을 해냅니다.     


최근엔 홈베이킹에 빠져있습니다. 호기롭게 당근케이크, 무화과 타르트, 흑당 파운드케이크도 만들어보았습니다. 삐뚤빼뚤 모양은 형편없지만, 직접 만든 디저트와 커피를 마시는 것이 내심 대단하다 여겨집니다.

토마토가 넘쳐날 땐 자투리 빵과 치즈를 곁들여 먹으면 남부럽지 않은 브런치 한 접시가 완성됩니다.

여기에 유정란이나 요구르트, 치즈, 버터, 과일 등 냉장고에 든 랜덤 재료를 선택하는 것도 빅재미입니다.

냉장실 대신 냉동실을 터는 재미도 한몫합니다. 사놓고 깜빡 잊은 찰수수 부꾸미와 지난여름에 손질해 얼려둔 완두콩을 찾은 날엔 실실 웃음이 나서 혼났습니다. 부꾸미는 데워먹고, 완두콩은 두유와 부드럽게 갈아서 후루룩 마셨습니다.


어느 토요일엔 면이 먹고 싶어 져서 요리다운 요리를 하기도 합니다. 번거롭지만 직접 육수를 내어 잔치국수, 우동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날엔 자투리 채소를 넣어 휘리릭 볶아 먹기도 합니다. 대개 이런 날은 아침을 넘겨 늦잠을 잔 토요일입니다.

여전히 해장이 필요한 날이 있습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시원한 맑은 국이나 된장찌개와 한상을 차려 먹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를 배려하고 대접하는 것이 익숙한 일상을 보냅니다. 어떤 방식이든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쯤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대접하는 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 방법으로 '살 맛’ 나는 토요일 아침의 접시를 택했습니다.

금요일 퇴근길인 오늘, 원두가 맛있다는 회사 금처 카페에 들러 원두 한 봉지를 샀습니다. 내일 아침, 그러니까 토요일 아침에 먹으려고 말입니다.


지금은 제주산 양배추와 무가 달큰하니 맛있고, 귤이 알맞게 맛이 들었다고 해요. 이번 한 주도 우리 농산물 많이 드시고 감기 조심하시길!


오늘도 '살 맛'나는 한 접시를 위해 애써주신

이 땅의 모든 농부님께

 감사를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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