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푸른 산과 또 다른 매력의 푸른 빙하
우리는 깊은 산속의 영험한 폭포수의 기운을 받아 정신을 차리고(스바르티포스에 대한 Dana님의 글 참조!)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도착한 그곳은... 여행하면서 두 번이나 들른 나의 최애 스팟이 되었다
와 이게 뭐야?
이곳은 바로 요쿨살롱! 거대한 빙하에서 떨어져 나와 모여있는 이 곳. 수많은 폭포도, 산도 너무 멋진 광경이었지만, 빙하 뷰는 정말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사실 아이슬란드는 화산지형이라서, 때로는 제주도스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스케일이 아~주 큰 제주도 같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도 했었다. 친구들한테 사진을 보내주면 가끔 '이거 제주도 아냐?ㅋㅋㅋ'하는 답변이 돌아오기도 했었다.
와 진짜 미쳤다
그렇지만 이 요쿨살롱은 정말 달랐다! 그냥 얼음덩어리일 줄 알았는데, 무슨 원리인지 빙하는 '투명한 얼음' 느낌이 아니라 그냥 "영롱" 그 자체였다. 냉동창고에 있는 큰 얼음과는 또 다르다! 물은 투명한 색이고, 얼음도 투명한데 왜 빙하는 투명한 색이 아니라 '뽕따색'일까? Po문과wer인 나는 그 까닭을 헤아릴 수 없었지만 그 광경에 감탄할 수는 있었다.(돌아와서 찾아보니 빛의 스펙트럼 중에서 빨간색 쪽이 파장이 길고, 푸른쪽은 파장이 짧아서 파란색은 빙하를 다 통과하지 못해 금방 산란되어 파란색이 눈에 반사되는 거라고 함). 사실 6월에 가서 빙하가 많이 녹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빙하가 깨져 속살을 드러내며 떠 있는 모습은 현실감이 없었다. 그 푸른 빙하 사이를 물개들이 헤엄쳐 다니고, 빙하들은 저들끼리 부딪히며 갈라지기도 하며 물속을 유영했다.
대부분 우리가 그동안 본 색은 초록~갈색 계열이었고 우리는 이것을 '자연의 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마주친 색다른 자연의 색 앞에서 모든 것을 잊고 신비함마저 느꼈다. 나는 너무 놀라워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소리를 질렀고 사진을 찍고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모든 여행지에서 신이 났지만, sunnyi님과 Dana님은 내가 이렇게 최고조로 신난 것은 여기가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이 요쿨살롱에서 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어떤 예술사진을 찍는듯한 아저씨가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신 것. 그 아저씨는 카메라 앞의 렌즈를 두툼하게 끼고 능숙하게 카메라를 다루었다. 그런 아저씨가 우리 사진을 찍어주신다고 하여 그 호의에 감사 반, 사진 능력에 기대 반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사진을 보니 우리 다리는 (더욱더) 짧게 나왔고, 빙하도 잘 보이지 않았다. 겉만 보고 기대해버렸지만 또 사진이 잘못 나와도 걱정 없는 우리는 그냥 그 자리에서 깔깔 웃었다. (그 와중에 정말 그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서 지워버렸는지 사진도 없어졌다..)
볼수록 눈이 시린 이 곳에서 꼭 해야 할 일, 인스타에서 많이 봤던 '빙하 맥주 마시기'다. 우리는 너무 신이 나서 트렁크에서 에인스톡 맥주와 함께 딸려온 맥주잔을 챙겨 왔다. 그리고 적당한 크기의 빙하를 골라 컵에 넣고 맥주를 꼴꼴꼴... 크으- 이것이 바로 빙하 맥주구나!
땅에서 주운(..) 빙하였지만 투명하고 깨끗했고, 맥주는 너무도 시원하고 맛있었다(처음 샀을 땐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빙하를 보며 마시니 어쩜 이렇게 맛있는지!) 맥주는 다 마셨는데도 눈이 부시게 푸른 빙하가 눈앞에 있으니 청량함이 계속 맴도는 것 같았다.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빙하를 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모든 것에 감사했다. 내가 보는 풍경을 믿을 수 없었지만, 그 현실감 없는 기분이 좋았다.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걱정들보다 더 현실인 이 비현실감. 아무 생각 없이 왜 빙하는 파랗구나 하고 얼음 속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것이 온전히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거구나. 여기에 있으면서도 저기에 존재했던 시간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우리가 '물의 일생'을 따라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비가 내리고, 어떤 물은 얼고, 그 물이 녹아서 강이 되고, 어느 지점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증발된 물은 빛을 반사하여 무지개를 보여주고... 자연 속에서 물의 순환을 보며 풀과 땅과는 색다른 즐거움이 느껴졌다. 이 느낌을 가지러 다들 떠나는구나.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는 요쿨살롱을 돌아 나섰다.
다음으로 향한 숙소는 전원일기 뷰를 가진 숙소! 이 곳 역시 아무것도 없는 자연 사이에 덜렁 남겨진 숙소였다. 그렇지만 내부 분위기는 따뜻하고 정갈했다.
낮에 먹은 도시락을 씻어야 했는데, 이곳은 부엌이 없어서 난감했다. 주인아주머니께 말씀드렸더니 너무도 흔쾌하게 부엌을 개방해주셨다. 이곳은 우리나라와 달리 수세미가 없었고 솔과 거품이 많이 나지 않는 세제가 있었다. 김치 색이 배일까, 조심스럽게 도시락을 헹구다 바로 앞의 창문을 보았는데 끝도 없이 펼쳐진 땅과 저 멀리 보이는 산. 이런 광경을 바라보며 설거지도 해보는구나 싶어 신기하고, 이런 풍경을 매일 보는 주인아주머니는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보았다. 매일 보면서도 감탄스러울까? 아니면 어느덧 무덤덤해졌을까? 나라면 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놀랄 거 같은데. 자주 볼수록 무덤덤해지는 법이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 푸른 자연도 지겨운 일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곳에 고립되어있다고 생각하며 도시 갈 날을 손에 꼽을지도 모를 일이지.
파란 빙하로 여전히 눈은 시렸고 백야의 하늘은 아직도 파랬다. 그렇지만 내일도 갈 곳이 많으니 서둘러 잠을 청했다. 밤 열 시에도 빛이 새어 들어오는 여전히 낯설고 설레는 백야를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