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온 Feb 17. 2024

인생의 새로운 챕터

2017년 12월의 끝자락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크리스마스가 이제 다시는 없을 것처럼 즐기고 추억을 쌓았다. 하지만 사실 그 어떤 누구도 그 해의 크리스마스를 진정으로 즐기지는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2월 27일, 내가 한국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정하는 사람과의 오랜 이별을 눈앞에 두면 으레 더 낯 뜨거운 행동을 부끄럼 없이 하게 되는 것 같다. 평소에 그리 살가운 딸이 아닌데도 엄마 옆에 붙어서 괜히 치덕 대며 뽀뽀 세래를 퍼붓고 싶어 진다던지, 평소에 친구들에게 간지러운 말을 잘 못하는데 희한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된다던지. 기약 없는 이별 앞에 부끄러움이고 나발이고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 마음을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전하고 싶었다. 그대가 얼마나 나에게 소중하고 커다란 존재인지, 그대의 존재가 나라는 사람의 삶을 얼마나 보듬어 주었는지, 그대라는 안식처가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오두막이었으며 든든한 버팀목인지, 한정된 시간에 그 마음을 모두 표현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까지는 왜 말로 전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후회만 가득했다.


 "1년마다  올게."라는 말을 누구도 믿지 않았다. 말을 하는 나도, 말을 듣는 그들도. 한 번 한국을 방문하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1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나 짧다. 하지만 그들을 향한 그리움이 쌓이고 그에 따른 외로움이 나를 삼키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1년이라는 시간은 길다. 동전에는 양면이, 검에는 양날이 있다고 한다. 모두가 행복한 척 웃고 떠들고 즐기는 만큼 겪어야 할 슬픔도 크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굳이 직면하고 싶지는 않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짧든 길든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오래도록 보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이별의 시간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와는 대구공항에서 작별을 고했다. 대구 공항은 많은 사람들로 생각보다 붐볐다. 솔직히 말하면 그날의 엄마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의 눈을 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거나 다른 곳을 응시해야만 했다. 끝내 눈물은 보이고 싶지 않아서, 또 우울한 분위기를 전환시키고자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여놓았다. 마지막까지 엄마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입국 심사장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꾹꾹 눌러왔던 것이 터졌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줄을 섰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있잖아, 어머님도 너와 같은 표정을 지으셨어." 옆에서 말없이 등을 다독여주던 남편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엄마도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고, 입은 웃는데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고. 어쩜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와 나는 이렇게 비슷할까.


  인천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로 환승을 해야 했다. 탑승 수속을 하기 전까지 약 4시간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외숙모와 외사촌들이 우릴 마중 나왔다. 내리기 전에 비행기에서 최대한 단정하게 정돈을 하고 내렸음에도 부은 눈은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외숙모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맛있는 것이라도 먹이고 싶으셨는지 나에게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물어봐주셨다. "탕수육이요." 한국을 떠나는 마지막 날의 만찬 치고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탕수육을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탕수육과 짬뽕, 짜장면 등을 시킨 우리는 입국장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한달음에 달려와주시는 외숙모와 외사촌들이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이젠 정말 가야 한다.


 인천공항은 대구공항과는 다르게 크고 복잡했다. 사람들도 많았고 게이트도 많았다. 잠깐이라도 한 눈을 팔면 남편을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 손을 꼭 잡고 돌아다녔다. 긴장감이 들어서인지 슬픔은 뒷전이었다. 한참을 걸어 한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앉은 후에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 못다 한 마음을 전했다. 아까 많이 울어서 이젠 눈물이 나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 목소리가 들리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내 울음소리를 들은 엄마도 말을 잇지 못하셨다. 20분 정도의 전화 통화 중에서 18분은 울음소리였을 것이다. 엄마와의 통화를 가까스로 마치고 남은 시간을 쪼개어 주변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돌리느라 부산히 움직이다 보니 어느덧 탑승시간이 되었다. 비행기를 타면 창가 좌석보다 복도 좌석을 선호하기에 그날도 어김없이 복도 좌석에 앉았다. 창가 쪽에 앉은 승객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한국을 바라보았다. 비행기가 이륙을 하자 화려했던 불빛들이 점점 작아지고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창가 쪽 승객은 이내 흥미가 떨어졌는지 고개를 돌리고 다른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 희미한 불빛마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다.


 인생의 한 챕터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려 한다.

이전 01화 시절인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