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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온 Jun 30. 2021

시절인연

만나야 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

 1990년대 후반, 당시 나는 캐나다의 밴쿠버에 거주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던 어린이였다. 나는 내 나잇대의 다른 또래 어린이들과 함께 한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당시, 한국에 이민 붐이 불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북미 지역으로 이민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동양인이 나와 나의 친오빠뿐이었다. 다행히도 아직 어린아이들이었기에 인종차별로 곤혹을 치른 기억은 없었다.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던 중, 어른들의 사정으로 우리는 다시 고국인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Kyle이라는 이름의 주근깨가 가득한 귀여운 소년 어딜 가든 항상 나와 붙어 다녔는데, 하루는 학교에서 내 옆자리에 앉지 못해 그 아이가 엉엉 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우리는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커플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나의 ‘한국으로의 귀국’은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숨이 넘어갈 듯 울며 나에게 작별 카드를 전해주던 그 소년에게 나는 “우리가 인연이라면 나중에 커서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왔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그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다. 만날 인연이라면 꼭 만나게 된다는 그 말이 얼마나 간지럽고 낭만적인지, 곱씹을 때마다 오소소 닭살이 돋는 듯하다


  한국에서 남은 청소년기를 보내며 나는 끊임없이 캐나다에 홀로 남겨진 Kyle이라는 소년을 생각하며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지만, 우리는 역시 인연이 아니었던 건지 다시는 그를 볼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락처도 모르고 메일 주소도 모르고 심지어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도 않은, 기억에도 희미한 그 소년을 10년도 훨씬 더 지난 후에 우연히 마주칠 확률이 과연 얼마일지 가늠해보면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희박한 확률이 아닐까?


 ‘나의 인연’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다가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지 28년이 지났을 때 즈음엔 솔직히 그 믿음이 많이 흐려진 상태였다. 내 첫사랑이었던 그 소년은 아무리 기다려도 내 앞에 나타나지 않지, 만날 인연은 꼭 만난다는데 도무지 내 인연은 어디에 있는 건지 보이지도 않고 그렇게 믿음이 현실에 풍화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기적인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그 인연이 나와 한 사람을 만나게 했는데 그 사람이 지금의 내 남편이다.


 2016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괴롭던 한 해였기에 2017년에는 숨이라도 쉬고 싶은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주를 보러 갔다. 원래 이런 것은 잘 믿지 않지만, 힘들 때는 뭐라도 의지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때 역술가 분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가씨는 하반기에 신분이 바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해 그게 무슨 말인지를 물었는데, 취준생이 취업에 성공을 한다거나 직장인이 취준생이 된다거나 미혼이 기혼이 되거나 기혼이 미혼이 되는 등의 그런 사회적인 신분이 바뀐다는 말이라고 친절히 설명을 해주셨다.


  당시 나는 한국의 한 항공사의 승무원으로 근무를 했는데 외항사로 이직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이직에 성공하나 보다!’하고 희망을 품고 2017년은 작년보다 조금 더 나은 한 해가 되겠다는 희망을 얻었다.


 그 이후에는 외항사 면접 준비를 위해 스터디도 하면서 해외로 면접도 보러 다니느라 바쁘게 지내느라 사주를 본 것조차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 유명한 아랍 에미레이트 항공사의 최종면접까지 봤지만 고배를 마시는 바람에 많이 힘들던 그때,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외항사에 올인을 위해 퇴사를 하고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는 직업을 구해 몇 달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몇 개월의 아르바이트를 마무리 후에 다행히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카타르 항공사의 면접에 참석을 할 수 있었기회를 얻었다.


 면접에 참석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던 날, 평소 친근하게 지냈던 외국인 친구들 한두 명에게 연락처를 알려주었지만 개인적인 연락을 귀찮아하는 성향 때문에 따로 문자를 하거나 메신저를 보내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싱가포르로 떠나던 날, 나의 메신저에 한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도착했다.

 [Big day! Wish you a good luck.]

 평소 나와 사사로운 장난을 치던 한 친구로부터의 메시지였다. 짧은 그 문장을 보고 있자니 면접으로 가득한 내 머릿속과 또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으로 쿵쾅대는 심장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인천공항에서 시작된 그 메시지는 면접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2017년 6월 그렇게 연락을 시작했고 2017년 7월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2017년 10월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시절인연. 만나야 할 사람을 드디어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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