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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온 Feb 18. 2024

뜬금없는 뉴욕행

New York City가 아닌, New York 주

 우리의 목적지는 뉴욕이었다. 남편은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본가 역시 뉴욕주의 작은 마을이었다. 처음에는 뉴욕 하면 뉴욕시티만을  떠올려서 "와, 너는 엄청난 도시에서 왔구나!"라고 감탄했는데 그가 당황해하며 "뉴욕이긴 하지만 뉴욕시티는 아니야." 하며  정정해주곤 했다. 뉴욕인데 뉴욕이 아니라니? 의아한 마음에 미국 지도를 펼쳤다. 세상에 뉴욕이라는 주가 이렇게나 컸구나! 그제야 미국은 땅덩어리가 우리나라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큰 곳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서는 입국 심사대를 통과해야만 했다. 미국에서 입국 심사를 받는 적은 많았지만 미국인과 결혼을 한 이후에는 처음이었다. 미국 시민권자들의 배우자들에게 유난히 까다로운 입국 심사관들의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비행기에서 내리기도 전부터 긴장했다. '혹시 남편은 가도 된다고 하고 나는 입국 금지되면 어쩌지?'라는 생각부터 '혹시 내가 범죄자라고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이르기까지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심사관은 아주 환한 미소와 밝은 표정으로 반겨주었다.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던 심사관의 밝은 표정과 환영에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미국이 친근하게만 느껴졌다. 촉박하게 다가온 환승 시간에 우리는 짐을 들고 달려야만 했다. 겨우 도착한 게이트 앞에서 숨을 몰아쉬며 물을 한 모금 마시려는데 탑승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타이밍이 딱 떨어지기도 쉽지 않은데, 운이 따라주려나보다.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뉴욕 버펄로 공항까지는 1시간 반 정도의 비행시간이 있었다. 한국에서 미국까지 올 때는 점보 비행기인 보잉 777을 타고 왔는데 뉴욕에서 버펄로까지는 정원이 30명도 안 될 것 같은 아주 작은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정신적인 피로로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것이 버펄로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숙면을 취하고 말았다. 옆을 보니 남편도 입가에 침을 흘리며 푹 자고 있었다.


 이미 환승 전에 입국 심사대를 거쳤기 때문에 버펄로 공항에서의 수속은 매우 빠르게 끝났다. 비행기에서 하기함과 동시에 짐을 찾고 바로 출구로 나가면 된다. 그런데 우리 짐이 가장 늦게 나오는 바람에 한참 기다려야만 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또 걱정거리가  쌓였다. 시가족을 직접 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가 혼인신고를 한 날이 10월 말인데 남편이 시어머니께 결혼 소식을 통보한 게 11월 중순이었다. 자신의 아들에게서 갑자기 '결혼을 했다'는 통보를 들은 어머니의 심정이 어떨지 잘 알기에,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화난 목소리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본의 아니게 그런 첫인상을 남기게 되었으니 당연히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공항에서 <사랑과 전쟁>에 나올 법한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로 시작해서 '이 결혼 인정 못한다고 나만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어떡하지?'까지 있지도 않을 걱정 하곤 했다. 나는 참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다.


 출국장으로 나가자 아들을 발견한 어머니는 한 걸음에 달려와 눈물지었다. 두 사람은 모자 지간이 아니랄까 봐 참 많이 닮아있었다. 시어머니는 당신의 아들 옆에서 쭈뼛쭈뼛 긴장한 채 서 있는 나를 보시고는 환하게 웃으며 크게 안아주었다. "환영한다. 고생했지?" 너무나도 따뜻하고 진심 가득한 환영 인사에 괜히 눈물이 찔끔 나왔다. 마음을 조금 안정시키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시어머니 옆에 쫄래쫄래  따라온 두 명의 꼬마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 시누이와 시동생이 되는 아이들이었다. 이제 초등학생인 두 아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이것저것 질문공세를 해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친형, 친오빠를 보는데도 그에게는 전혀 관심 없고 모든 관심과 애정을 나에게 쏟는 것을 보고 시어머니와 남편이 웃었다.


 영국으로 떠나기까지 이제 3주 정도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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