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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별 Dec 12. 2023

권고사직을 받았습니다

복직 2주 만에 생긴 일

내 나이 33세.

남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권고사직을 처음 경험했다.


그동안 누가 권고사직을 받았다고 하면

직원이 아주 일머리가 없거나

아니면 회사가 영세하거나

둘 중에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복직 2주가 채 안된 나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시작은 인사담당자의

부사수 호출이었다.


나는 복직하자마자 부사수가 생겼는데

수습 3개월 조건하에 입사하여

2개월째 다니고 있는 신입이었다.


사수도 없이 고군분투했을 날들이 안타까워서

남은 수습 기간 1달이라도

같이 의미 있는 발전을 해보자며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그 파이팅이 무색하게

부사수는 계약 연장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고 왔다.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네다

문득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꼈다.


왠지 이 바람이

나에게도 불어올 것 같은 느낌.


곧이어 나에게도 인사담당자의

호출이 왔다.


잠깐 얘기를 나누자는 말로 시작했으나

듣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알 것 같았다.


역시나 나는 권고사직을 받았고

표면적으로는 거부할 수 있었다.


"강제가 아니다.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2주도 안 된 시점에 복직자에게

권고사직을 꺼낸 것은 뜻이 분명했다.


“나가라.”


그러니 내가 더 버텨서

좋을 것이 뭐가 있으랴.


나는 권고사직의 이유를 물었다.


일단은 회사가 어렵다는 것과

부족한 퍼포먼스가 문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 가만, 퍼포먼스를 낼 기회를

나한테 주긴 했던가?‘


내가 월요일에 복직해서

프로젝트를 맡은 것은 수요일.

그리고 그 프로젝트의 마감은 금요일.


그 결과물로 대표에게 불려가

한 소리 들은 것은 바로 그 다음 주 화요일.

그로부터 3일이 지난 오늘,

나는 권고사직을 들었다.


지켜보겠다며

더 잘할 수 있지 않느냐며

신경 좀 써달라는 말을 들었던 게

엊그제의 일인데..


단 이틀 만에

나를 재기불능이라 판단하고

내보내기로 한 것일까.


아니면 내보내기 위한

멍석으로 나를 불렀던 걸까.


적어도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면..

프로젝트를 한 번이라도 더 맡아봤다면..

이렇게 납득이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복직하자마자 3일간 진행한

단 하나의 프로젝트로

나는 권고사직 대상자가 되었고,

거부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았다.


이 회사는 대표가 직접 실무를 하며

컨펌을 하는 구조인데

거부하며 계속 다닌다 한들

나를 향한 시선이 과연 어떨까.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몇 년을 재직한 직원인데

복직 후 최소한의 기회는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억울함과 배신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을이며 약자인 나는

결국 현실을 바라보며

이직을 준비하기로 했다.


권고사직을 받으면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단순 경영악화만이 아닌

내 퍼포먼스까지 이유가 되어서다.


주변에서는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들 했지만

내 커리어와 자존심에는

처음 보는 큰 상처가 났다.


‘내가 그렇게 재기불능의 상태일까.’

‘기회조차 주기 아까운 정도인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뱅뱅 맴돌았다.


주말 내내 나에게는 정말 잘못이 없었던 건지

계속해서 자책하고 나를 몰아세우는 시간이 이어졌다.


어떻게든 나에게서 문제점을 찾고

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임신을 했든

복직을 했든

정당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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