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주는 뜻밖의 선물, 치유
임신, 출산, 육아라는 큰 변화를 거치며 나에게 산후우울증이 찾아왔다. 나는 20년도 넘은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현관문을 열면 복도가 바로 바깥에 노출되어 있는 구조다. 그런데 어느 날, 아기를 안은 채 복도를 바라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떨어지기 되게 쉽겠다
3년을 살면서 수없이 복도를 지나다녔으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이었다. 순간의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지만 내면의 소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무언가 비상등이 켜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보건소에서 가져왔던 리플릿을 꺼내 산후우울증 자가진단을 해보니 상담이 필요한 수준인 '경계선' 점수가 나왔다. 나는 바로 구청에서 연결해 주는 우울증 무료상담을 신청했다.
처음이었지만 비용이 들지 않으니 상담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이 낮았다. 일단 몇 번 받아보고, 별로다 싶을 땐 관둘 요량이었다. 상담은 주 1회, 1시간씩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상담사는 나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생각들을 스스로 다시 꺼낼 수 있도록 섬세한 꼬리 질문을 던져가며 도움을 주었다. 생각보다 굉장히 도움이 되었고, 계획보다 더 오래 상담을 이어갔다.
상담을 통해 나는 과거의 어린 나와 마주했는데,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도 내면아이는 여전히 미숙하고 상처가 많은 존재였다. 이 내면아이를 먼저 보듬어주어야 현실의 내 아기를 잘 돌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어릴 적 내가 듣고 싶었지만 듣지 못했던 말을 아기에게 대신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한 한 가지를 추가했다. 아기에게 한 번, 그리고 연달아 내 이름을 부르면서 한 번 더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가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엄마가 항상 옆에 있어줄게. 사랑해
오리별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엄마가 항상 옆에 있어줄게. 사랑해
어린 나와 언니를 두고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장사에 뛰어든 엄마의 부재가 나에게는 참으로 컸다. 늘 엄마가 보고 싶었고, 그리웠다. 무슨 일이 생겨도 엄마는 집에 없으니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피곤에 찌든 엄마에게 울면서 나름대로의 고민도 털어놓고 도움도 요청해 보았지만, 그때의 엄마는 여력이 없었다. 빚을 갚고 먹고살 돈을 마련하기 바빴다. 나는 점점 혼자 참아내고 괜찮은 척하며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됐다. 이제 성인이 된 나는 그때의 엄마를 이해하고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아직 내면아이는 듣고 싶은 말이 많고 좀 더 사랑받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누구든지 내면아이와 마주하고 싶다면 거울을 바라보며 치유의 말을 건네보기를 추천한다. 혼자여도 좋지만 나와 닮은 아기를 실제로 보면서 하는 것은 좀 더 깊은 차원의 치유 효과가 있다. 고된 육아에 지쳐 앞이 흐려진 나에게 아기가 주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일찍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외로움 때문인지 나는 사랑받고 자랐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사랑표현이 많고 다정한 분위기의 집을 보면 누리지 못한 것이기에 너무나 부러웠다. 하지만 구태여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베푸는 사랑이 있음을 이제는 안다. 아기를 키우면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서 나는 확실히 사랑받았음을 절절히 느낀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 고된 육아노동을 절대 버텨낼 수 없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최소 20년의 무보수 뒤치다꺼리다. 무뚝뚝했지만 진실했던 부모님의 사랑방식을 이제야 깨닫고 감사함을 느낀다. 나 혼자 알아서 큰 것으로 착각하고 불만만 많았던 우매한 지난날을 반성한다.
혹시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면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저 소녀에 불과했던 한 여자가, 아기의 엄마가 되어 어떤 마음으로 키워냈을지 헤아려보자. 그 정성이 내가 나를 더욱 소중히 하고 아끼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아가 받았던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더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