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부인을 둔 남편의 마음고생담
아침에 일어났더니 그녀는 옆에서 울고 있었다.
요즘 부쩍 아침에 일어나서 우는 일이 잦아졌다. 안고 있으면 심장이 진정된다며 안아달라고 했다. 한참 동안 안아주어도 계속 눈물을 흘리곤 했다. 차라리 이럴 거면 회사를 그만두라고, 그렇게 힘든 곳 때려치우라고 했지만 억지로 웃어 보이고는 나갈 채비를 한다.
아침에는 이렇게 힘들어하지만 나름 회사에 가면 바쁘게 잘 보내고 있는 듯하다. 회사 일은 효율적으로 끝내 놓고 어떻게 하면 마음이 가라앉을지 여러 가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했다. 저번에는 국가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특강을 들으러 갔었고, 한 달에 한 번은 일하는 여성들의 모임에 나가 뭔가 이것저것 하는 것 같았다. 찾아가기 불편한 위치에 있는 희망제작소에 찾아가 연구원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뉴스에서 화제가 되었던 평화교육 모모의 대표를 만나러 가기도 했었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정확히 하고 싶은지는 알기 어려웠지만 현재 상황에 무척 답답해하고 있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회사 일로 피곤할 만도 한데 퇴근 후의 일정을 위해 회사에서의 8시간을 버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오히려 그렇게 돌아다니며 뭔가를 알아가는 것으로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와서도 뭔가를 계속 알아보는 게 일상이었다. 쉬어야 하는데 쉬는 게 불안하고 멍 때리며 쉬지를 못하겠다고 했다. 주말에도 어딘가를 다녀오곤 했다. 퇴직한 어르신들이 듣는 세금 관련 무료특강에 무작정 찾아가기도 했다. 돈을 내야 한다면 그 자리에서 내면 된다면서. 어쨌든 부지런히 다녔다. 그러다가 사회적 기업 지원사업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서류 준비도 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느냐고 물었지만 그게 한 가지를 하는 것보다 재미도 있고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단다. 나처럼 한 가지를 철저하게 알아야지 마음이 놓이고 그동안에 다른 것은 눈에 안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녀처럼 다소 부산해 보이더라도 여러 가지를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게 더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보다.
어떤 날에는 집을 짓기 위해 설계사무소를 찾아야 한다며 아는 선배의 설계사무소를 찾아가서 상담을 하기도 했다. 아니, 집을 지을 땅도 정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중요한 돈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간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상상하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돈이 모일 때까지 아무 꿈도 꾸지 않고 있으면 그동안의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냐고 말이다. 돈은 몇 년 후에 생겼다 치고(혹은 이미 돈은 가지고 있다고 치고) 그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준비를 해놓는다면 실제로 실행할 때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했다. 들어보니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막상 돈이 10억이 뚝 떨어졌는데 내 취향을 몰라 막 아무렇게나 짓다가 막상 그 집에 살게 되었을 때 하나씩 후회가 남아 또 다른 돈을 들이게 되는 게 더 심한 돈 낭비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미리 상상하는 동안에는 꽤 달콤하다고 한다. 이미 그런 재정이 확보되었다는 상상만으로도 사람은 행복할 수가 있는 건가 보다.
그러던 어느 날, 잘 버티는 것 같던 그녀 입에서 더 이상 힘들다는 말 대신 회사에 있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는 말이 나왔다. 지원사업에서 합격하면 추가 면접이나 합숙캠프가 있는데 이걸 하려면 회사 일과 병행하기 힘들다고 했다. 마침 회사에서는 해외전시회 일정으로 그녀의 출장 일정이 잡히려던 찰나였다. 그녀는 퇴사해야겠다고 했다. 울면서 힘들다고 했던 그녀가 6개월 뒤에는 활짝 웃으면서 회사에 있는 시간이 아까워 당장 퇴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솔직히 멀쩡히 잘 다니던(실제로 잘 다니던 것은 아니고 힘들어하긴 했지만 잘리지 않았다는 의미로)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계속 다니지 하는 마음이 조금 있었다. 하지만 그때 잠시 든 생각이고 지금은 잘되었다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회사 다닐 때보다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고 무엇보다도 좋은 소식이 왔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다음날이 기대된다고 말하며 그녀는 좋아했다. 퇴직금 3년 치만큼은 푹 쉬어야겠다며 정말 잉여인간이 되었다. 걱정될 만큼 누워있기만 했다. 그렇게 회사 다니며 부지런 떨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침대에서 누워서 잉여 짓을 계속하던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아직 조심스럽긴 한데 임신한 거 같아!'
그녀는 결혼 초부터 임신을 계획(?)해왔다. 결혼의 목적이 임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임신을 간절히 바라 왔다. 나는 육아하려면 돈이 여기저기 많이 들 거라는 생각에 그리 급하게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막상 임신 소식을 들으니 날아갈 것 같았다. 역시 임신을 하려면 마음을 비우고 편안해야 하나 보다. 퇴사하자마자 임신이 되다니....
임신이 된 걸 알고 나서는 약간 걱정되는 게 한 가지 생겼다. 그렇게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뭔가 철저히 조사해야지만 마음이 놓인다던 그녀는 임신에 대해 당최! 정보수집을 안 하는 것이었다. 그녀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너무 정보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며 쓸데없는 걱정만 생기는 것보다는 적당히 넘어가고 모르고 있는 게 낫다는 것이다. 어차피 정말 중요한 건 병원에서 알려줄 것이라며 말이다. 내가 불안해서 내쪽에서 오히려 이것저것 찾다가 한 번은 그녀에게 나보다도 엄마가 더 알아봐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가 크게 다툴뻔했다. 아, 다시 한번 느끼지만 가만히 그녀의 의견을 믿어주는 게 나을 때가 많다. 그래야 평화롭고 나도 좋다. 싸움은 싫다. 나는 평화주의자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싶으면 나도 의견을 제시한다. 제시만 한다......(저 잠깐 할뫌 있어요... 앗 드립 자제해야지...)
임신 후에도 그녀는 뭔가를 계속 계획 세우고 실행하고 있다. 참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다. 요새는 요리하는 걸 재미있어하고 나에게 맛있는 걸 해주려고 해서 기특하고 고맙다. 그녀 자신은 요새가 아니라 원래 그러려고 한 거라며 으쓱거린다. 맛있는 걸 해주면 난 그냥 좋다.
정리하는 것도 열중하더니 집을 여기저기 옮겨놓는다. 가끔은 한 동안 집안 한 구석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막 뭔가를 시작한다 싶으면 대. 정. 리가 시작된다. 정리하는 걸 좋아하니 참 좋긴 한데, 그래도 너무 갑자기 집안을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만들고 싶다고 할 때는 당황스러웠다. 물건을 없애고 싶다니... '아무것도 없는 블로그'를 보고 푹 빠진 모양이다. 단순하게 사는 삶을 동경해오더니 드디어 극단적으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살 작정인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는 별 문제없어 보이는데 자꾸 버리려고 하고 책장마저 없애고 싶어 했다. 그래도 최근에는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팔아 7만 원이나 벌었다며 신나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좀 좋았다.(하지만 내게 떨어진 것은 없었다.)
그녀는 뭘 사지를 않고 싶어 한다. 옷도 되도록 안 사고 싶다며 저번에는 옷장 하나를 비우더니 그 옷장을 버렸다. 그 덕에 집이 넓어져서 결과적으로는 좋았지만 어디까지 물건을 줄일지 걱정되긴 한다. 새 옷을 살 거면 있던 옷을 하나 버려야 들여놓을 거라고 한다. 하아... 적당히 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아까워하지 않고 돈을 쓰는 건 먹거리다. 그렇다고 정크푸드나 외식을 자주 하고 싶어 한다는 건 아니고,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에 환장한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도 적어서 내가 먹지 못하는 향신료도 겁 없이 도전한다. 먹는 것 걱정만은 안 시킬 테니 걱정 말라고 하며 사내대장부처럼 나를 다독인다. 나도 요리하기 좋아하는 그녀가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는 건 참 좋다.
얼마 전에는 일본 원서를 주문하더니 읽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하는 말...
'나 어쩌다 보니 번역 땄다!'
그 책은 보육 관련 책이었는데 혼자만 보기 아까워서 한국의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공감해줬으면 해서 출판사에 출판 의사 여부를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때마침 며칠 전에 계약을 끝낸 상황이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그녀는 기쁜 나머지 번역이든 뭐든 자기가 그 책이 출판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시켜달라는 절절한 메일을 썼다고 한다. 그만큼 그녀는 그 책에 푹 빠져있었다. 평소에는 번역 알바는 질색하던 그녀였다. 자기 말고도 언어로 돈 버는 사람은 많다며 번역하는 건 스스로에게 전혀 플러스가 안된다고 했었다. 번역할 바에야 혼자 읽고 이해하고 끝내거나 그 시간에 좀 더 다른 재미난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책은 그녀의 마음속 무언가를 움직인 듯하다. 다른 사람이 번역하는 것보다 자신의 목소리로 원서의 재미와 간절함을 전하고 싶었단다. 그렇게 예상치도 못했던 번역 일을 그녀는 하기 시작했다. 아마추어에게 번역을 맡기는 것도 출판사 측에서는 모험이었겠지만 그녀의 열정에 한 번 맡겨보자고 좋게 봐주신 것이라고 한다. 번역작가로 데뷔라니... 나도 놀라고 그녀도 놀라고 모두가 놀랐다...
한동안 번역에만 매달리다가 원고를 넘긴 후 이제는 좀 쉬나 했더니 그녀는 또다시 무언가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텃밭... 어느 날 구청에서 무료 텃밭 참여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페북으로 접하고 신청서를 냈는데 덜컥되어버렸다. 아니 임산부가 텃밭이라니. 그것도 7월에 출산 예정인데 어쩌려고 저러나 싶었다. 그녀 역시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내년이나 내후년에 떨어진 사람들을 우선 추첨해주기 때문에 일단 넣어둔 건데 될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곧 신나 하며 농가의 며느리도 다 흙 만지고 할 거 다 한다며 해낼 수 있다고 했다. 걱정된다.
요새는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주제들이 심상치 않다. 아버지를 이해하겠다며 중국 경제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중국 경제 전문가가 되려고 그러나... 건축학 전공인데?
대체 그녀의 추진력은 어디까지인 걸까.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일을 낼 것 같긴 하다. 그녀의 롤모델은 엘론 머스크다. 전기차 테슬라의 CEO인 요즘 핫한 기업인. 나의 마누라의 목표는 기업인이 되는 거라고 했다. 그래... 열심히 해서 성공하면 나 1년 간만 휴가 주세요. 일본 아키바랑 나고야 갔다 올게요. 파도가 너무 많던 나의 인생에 그녀의 성공으로 약간의 휴식을 바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녀는 오늘도 뭔가 일을 벌이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