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 애도의 기술_박우란

감정을 잘 말한다는 것에 대하여

by 숨결

6개월 만에 시작된 상담에서

나는 배설하듯이 내 이야기를 쏟아냈다.

(속마음) “나를 이해해 줘”-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

나는 마치 열거중독자처럼 엄마의 행태를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상담실 공기는 무거워졌고

상담사의 얼굴은 탈진에 가까웠다. 그리고 질주하듯이 말하는 나를 멈추기 위해 상담사는 힘 있게 ‘숨결님’하고 말했다. 상담을 나오면서 레포가 끝나지 않은 듯한 미완의 찜찜함만 남았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엄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내 감정이 무엇일까?”


그건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불안, 긴장, 초조였다.


감정을 쏟아내는 일과 잘 말하는 일


“가까운 사람이나 분석가에게 스트레스나 쌓인 감정을

거침없이 쏟아내면 해소가 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나큰 오해이지요.”

— 『애도의 기술』 박우란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나를 떠올렸다.

나는 감정이 아난 상황을 ‘말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저 ‘쏟아내고’ 있었다.


박우란은 말한다.


감정은 단순히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기거할 언어를 찾아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말해도

감정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가까운 사람이나 분석가에게 스트레스나 쌓인 감정을

거침없이 쏟아내면 해소가 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나큰 오해이지요. 말을 쏟아붓는 것은

배설물처럼 쏟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감정은 단순히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기거할 언어를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말해도 감정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오물 같은 감정도, 온갖 역겨운 생각과 감정도

그것을 ‘잘 말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미사여구를 쓰는 말이 아니라,

상징적 언어 절차에 의해 풀어서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상 언어]

즉각적, 감정적, 반사적인 표현

“진짜 너무 화나!”, “왜 나한테만 이래?”

엄마가 또 나를 비난했어. 진짜 짜증 나.”


[상징적 언어]

감정을 ‘이해 가능한 형태’로 재구성

“나는 무시당한 느낌이 들어서 화가 났어.” / “그 순간 사랑받지 못한 아이로 돌아간 기분이었어.”

“엄마의 비난을 들으면, 인정받지 못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다시 깨어나는 것 같아.

그때의 무력감이 지금 내 화 속에 숨어 있는 것 같아.”


상징적 언어는 감정의 본질을 드러내는 말이다.

감정을 쏟아내는 말이 아니라,

감정의 뿌리를 이해하는 말.

그 말을 찾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고통의 주인이 된다.



저자는 감정이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잘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감정은 억눌러지면 폭력적으로 튀어나오고,

말로 표현될 때에야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간다.


“감정은 그것이 기거할 언어, 즉 기표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신과 타인을 집어삼킨다.”

— 『애도의 기술』 p.214


감정은 언어를 필요로 한다.

이 언어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설명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다가가기 위한 언어다.

미사여구가 아닌, 상징적 언어의 질서 속에서

조용히 내 감정을 ‘잘 말하는’ 일.

그것이 회복의 첫 문장이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받은 상처의 결말을 찾으려 한다.

“왜 내가 이렇게 됐을까?”라는 질문에 원인을 정하고, 이유를 찾아내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거라 믿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에 서사와 에피소드를 끼워 맞춘다.

그럴수록 삶은 단단해지지 않고, 오히려 왜곡된다.


박우란은 말한다.


인간의 본능적 추동은 상처를 설명하려는 데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인과론의 함정이 되기도 한다고.

삶은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여러 파편과 조각이 얽혀 있는 퍼즐 같은 것이다.


억지로 맞추려 하면

삶이 더 무거워지고, 결말에 집착할수록 상처는 깊어진다. 결국 우리는 결핍에서가 아니라, 초과된 욕망 속에서 더 허기지는 존재가 된다.


애도되지 않은 것은
결코 내 안을 떠나지 않은 유령으로
지속적으로 여러 표상으로 재현된다.


수없이 잃어버리다 보면 결국 아프지 않은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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