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익숙한 길을 달릴때의 안정감
취미로 오토바이를 타는 주부인 나는 굉장한 기분파다. 내 라이딩엔 딱히 계획이 없었다. 일단 나간다. 나가면 어디든 도착하겠지.
당일 라이딩 계획이 없었지만, 문득 음악을 듣다가 혹은 시장 보고 오는 길에 하늘이 너무 맑아서 라는 이유로 오토바이 시동을 건다.
목적지도 대게 기분대로 정했다. 오늘은 어딜가지? 심지어 날씨도 확인 안 하고 출발해 오후 복귀길에 비를 쫄딱 맞아도 행복함에 젖어 불편함을 알지 못했다.
젊었을 때는 모르는 거, 잘 안 되는 거 시간 더 쏟아부어 체력으로 커버했다. 마흔이 넘은 지금의 나는 아이도 키우고 직장도 다녔어야 했다. (지금은 퇴사 후 전업주부지만) 체력으로 커버 치는 것에 한계가 생겼고 시간도 부족해졌다. 체력으로 가려두었던 내 부족함들이 사방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그즈음 나에게 깊은 우울증이 찾아왔다.
새로운 것은 늘 즐겁고 짜릿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아주 익숙한 길로 라이딩 코스를 정하게 되었다. 몇 번 다녀봤던 길이라도 가는 길에 여러 불편한 요소들이 있음을 기억하기에 라이딩 코스는 정해져 있다.
내가 잘 알고 익숙한 길로만 다닌다. 요즘의 나는 늘 똑같은 휴게소에서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항상 들리는 커피숍에서만 시간을 할애한다.
매일 똑같은 방향, 똑같은 목적지
오늘은 오랜만에 다른 곳을 가볼까 싶다가도 결국엔 또다시 내 오토바이는 같은 곳을 향한다.
998cc, 공차중량 214kg의 제법 잘 나가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나는 도로에서의 다양한 돌발상황을 겪어봤기에 대처도, 도로의 흐름을 읽는 시야도, 판단력도, 방어운전 스킬도 초보때보다 월등하게 늘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다.
나는 분명 수도권에서 멀리 완도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가 배에 선적하여 제주도 투어도 해봤고, 전국을 돌아다닌 경험도 많은데 왜 늘 똑같은 코스에 잠겨있는 걸까?
무엇이 나를 3년 간 늘 같은 코스로 다니게 하는 것일까?
혼자서 익숙한 길을 달릴 때의 안정감은 나를 즐겁게 하지 못한다.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날들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여전히 안정감을 택하여 혼자서 달리고 또 달린다.
단 하루라도 삶을 치열하게 살아보았다면, 누구의 삶도 방향도 평가하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 고통스러움은 겪어 본 자 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늘 내일을 살았던 내가 어제에 발이 묶여 오늘을 상실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다.
내게 주어진 보이지 않는 밤, 흐르지 않은 시간들, 변하지 않는 라이딩 코스는 나를 어디로 인도하고 싶은 걸까 나를 어디에 닿게 하고 싶은 걸까
그곳이 어디라도 나는 만개(滿開) 하고 싶다.
매일 똑같은 라이딩 코스만 다니는 조금 부족한 주부의 평범하지만 조금 특별한 도로 위 다양한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