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내게 너무 빨라서 한 걸음만
딱 한 걸음만 느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럼 발맞춤이 가슴 조여올 일은 없으므로
그 생각에 빨간 점을 붙여 놓았다
검은 장판에 널브러져 볼때기를 대고 있노라면
그때에도 빨간 점은 돌아서 다시 뺨을 친다
언제나 같은 속도로 여전히 빠르게
퉁-퉁- 빨간 점이 지나간 자리엔 검고 긴 자국이 남아—영광의 상처 대신—고무 냄새나는 무기력의 상처만이 남아있고 그걸 우린 죽음의 전조 증상이라 부를 수도 있겠어요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고는 주변의 죽음은 이 나이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고 하고는 당신의 죽음은 당신에게도 내게도 아무것도 아니진 않았어요
어른이 된 나는 당신의 거짓을 떠올린다
거짓, 거짓
어른이 되어도 죽음은 익숙지 않아
러닝 머신에서 뛰어내려 볼 생각도 접어버린다
빙빙 도는 빨간 점을 바라보며
당신을 만나기 전까진 죽음이 고통일지 안식일지 알 수 없으니
뺨에 그어진 선들을 따라 오려내지 않으려면
죽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알려주는 것도 방법이겠습니다
내게도 네게도 아무것도 아니진 않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