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3 Mon
다사다난. 오늘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바로 다사다난이 아닐까 싶다. 정말 천당과 지옥을 순식간에 오고 갔다.
오늘은 학교에서 교환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웰컴 데이가 있는 날이었다. 모처럼 일찍 기상해서 학교로 향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 강당에 앉아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동양인은 단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미국인이 70% 이상이었고, 'From Asia?'라는 질문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괜히 손들었다 말을 걸 거 같아서 나도 손을 들지 않았다. 몹시 절망적이었다.
캠퍼스 투어까지 돌고 작은 다과회가 있었는 데 삼삼오오 모여 영어로 떠들어대는 크고 작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쫄보처럼 찌그러져 있었다. 그때, 구석진 곳에 홀로 서있던 나에게 폴란드에서 온 산드라가 다가왔다.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바짝 쫄아있던 것이 조금은 풀어졌다. 조금 뒤 사람들이 하나 둘 다가오기 시작했고, 스위스에서 온 플리츠와 터키인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했다. 물론 나는 그들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진 못했지만, 내심 든든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뒤이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을 만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노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잠시 목을 축이고 한인 마트로 향했다. 오전부터 너무 기가 빨려서 그런지 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3시 반쯤 도착했는데 가게 문이 5시에 연다고 해서 에스파냐 광장 벤치에 앉아 잠시 사람 구경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웬 할아버지가 지나가며 나에게 윙크를 하더니, 이내 내 옆에 앉아 말을 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지, 한국의 인구와 성비는 어떻게 되는지, 크기는 어떻게 되는지 묻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나에게 터치를 하기 시작했다. 내 머리스타일이 신기하다며 머리카락을 만지기도 하고, 내가 예쁘다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둥, 자신이 스페인어를 알려줄 테니 자신에게 한국어를 알려달라는 둥,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 함께 미술관을 가고 플라멩코를 보며 데이트를 하자는 것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불길한 느낌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야 한다고 말했고, 그는 따라 일어나 손을 뻗어 내 목을 만지고, 전화번호를 달라, 함께 사진을 찍자 요구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잔뜩 겁을 먹은 나는 거듭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알겠다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내가 손을 잡자마자 그대로 나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나는 으악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서 도망가버렸다.
형용할 수 없이 더럽고 찝찝했다.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두렵고 끔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광장 안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며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손이 벌벌 떨려 그대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해가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고, 마음이 너무 고달팠다. 지친 몸을 이끌고 ATM기에 들러 현금을 인출하고 다시 걸어가고 있는데 허름한 복장의 남자들이 나를 길가에서 불러 세우는 거 같았다. 이어폰을 꽂고 있어 잘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나를 계속 부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종종 길에서 동양인 여자만 보면 희롱하기 바쁜 놈들이 있곤 했다. 늘 불쾌했지만, 오늘은 그 할아버지 얼굴이 다시 떠올라 더 무서웠고, 애써 안 들리는 척하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뒤를 돌아보았는데 웬 아주머니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있어 아주머니의 부름을 듣지 못하는 나를, 그 남자들이 대신 불러 세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인즉슨 내가 현금인출기에 카드를 꽂아 놓고 갔다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그 멀리서부터 카드를 들고 내 뒤를 쫓아왔던 것이다. 나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 인사했고, 아주머니는 웃으며 다시 그 먼길을 되돌아가셨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하루가 참 길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머리맡에 내려두고 푹 잘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내일은 플리츠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내일은 웃는 일만 가득하길.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