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의 기준집
아무리 고민해도 한 끗 차이에는 늘 명확한 기준이 없다.
가끔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못 견디겠다 싶은 순간이 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행이라는 동아줄에 아등바등 매달려, 붙잡을 힘도 없고 놓을 용기도 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한없이 초라해진다. 눈을 뜨는 게 지옥 같다고 느껴지는 어느 날이면, 한 끗 차이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나는 지금 이 불행을 잘 버텨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더 병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도망가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고집과 뚝심은 기준은 참 모호하다. 그나마 타인의 행동에는 사심이 반영되어서 고집과 뚝심을 나름의 내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다 뭐래도 제 길을 가는 게 누구는 멋지고, 누구는 미련하다. 하지만 내 행동에 대해서도 내 맘대로 평가하는, 나만의 우주에 갇힌 바보는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가는 길이 혹시나 다수의 눈에 미련한 버팀, 한심한 고집일까 봐 늘 겁이 난다.
타인의 기준으로 살 필요는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지만, 틀리고 싶진 않다. 틀린 건 고쳐나가는 말랑한 어른이고 싶다가도, 흔들리는 세상에서 단단하게 중심을 지키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세상의 풍파에는 맥없이 녹아내리고, 미운 점은 꾸역꾸역 안고 가는 고집불통인 것처럼 느껴진다. 애는 쓰는 거 같은데, 내가 바라던 나와 진짜 나는 자꾸만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속상할 때가 많다.
요즘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면 '존버는 승리한다.'라는 말이 다시 유행하는 거 같다. 그런데 그 말은 꼭 버티다 버티다 끝끝내 성공한 사람들이 하곤 한다. 마치 부작용은 수면 아래 숨기는 성형수술처럼, 꾸역꾸역 버티다 무너진 그 수많은 사람들은 자꾸만 숨기는 느낌이 든다.
세상에 정답이 있으면 재미는 없겠지만, 그래도 엄마 다리 밑에서 나오기 전, 아기 손에 작은 기준집 하나를 쥐어 내보내 줬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