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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인류의 영원한 숙제,
꿈이란 무엇인가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감상

by 오로지오롯이


들어가며


따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지 않아도, 프로이트의 저서는 이미 내 방 책장에 여러 권 꽂혀 있다. 그만큼 꿈에 대한 의문, 꿈에 대한 설렘, 꿈에 대한 해석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이다. 우리는 꿈을 선택할 수 없고, 우리는 꿈에게 선택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좋은 징후의 꿈들을 사고팔기도 하며, 꿈을 통해 운수를 치기도 한다. 또한 나라의 큰 선택을 앞두고 왕의 꿈을 해석하는 일이나, 사람이 태어날 때 꾸는 태몽 등 꿈은 한 나라와 인간의 전 생애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렇듯 꿈은 우리 생활의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미지의 꿈을 연구한 프로이트 스스로도 꿈의 해석에 대해 “내가 운수 좋게 해낼 수 있었던 모든 발견 가운데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은 통찰은 한 사람의 평생 가운데 단 한 번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라며 자부심을 내보이고 있다.


프로이트가 연구한 꿈의 해석에 대한 의의와 한계에 들어가기에 앞서 전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꿈과 무의식에 대한 설명인데, 프로이트는 꿈에 대한 연구를 무의식에 이르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했다. 또한 프로이트는 무의식은 의식만큼이나, 아니 의식보다 더 체계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사람들이 사고의 전부라 판단했던 의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오히려 수면 아래 잠겨 있는 무의식이 훨씬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무의식도 의식처럼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욕구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프로이트는 꿈을 소원 충족이나 욕망의 성취로 보기도 하였다.


특히 프로이트는 그 시대의 성적인 억압과 히스테리 과정에서 드러나는 성 억압의 결과를 발견했다. 원초적 장면에 개입한 이들을 가혹하게 책망한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이 히스테리적 출현의 기원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이 꿈이라는 무의식을 통해 발현이 되었고, 무의식의 산물이자 치료의 도구라는 꿈에 대한 발상이 도입되었다. 프로이트는 그것을 일반화했다. 꿈은 인간에게 외부세계의 발현으로서가 아니라, 심리적 현상으로 이해되었다. 꿈은 우리를 가장 고양된 인간 감정의 뿌리들이 악취를 풍기는 물속에 잠겨있는 늪지대로 안내한다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꿈은 우리 내면의 것들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릴 수 있는 무의식의 창문 역할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꿈의 해석>의 의의


꿈은 의식의 소유자가 마음대로 내용을 선택하고 채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의 발현이라 여기고 꿈에서 나타난 상징을 해석하면 꿈꾼 사람에 관한 중대한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즉 프로이트는 인간 존재의 정신적 토대를 분석하는 틀을 제공했다. 프로이트 스스로도 이성과 합리주의가 팽배해 있는 오늘날의 꿈의 해석은 영혼의 치유의 실천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그의 말처럼 꿈이란 무의식적 정보를 담고 있어 현실에서 고려하지 못한 다양한 정보, 특히 정서 본능적 생존정보를 가진 특성에서 꿈 해석적 가치가 있는 경우 꿈의 정보적 가치는 매우 크다. 즉 프로이트가 제시한 이론은 꿈의 잠재의식이 있다는 새로운 증거를 제시했다는 것과 꿈의 해석이 무의식적인 정신생활을 이해하는 데에 놀라운 시사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꿈들은 무의식 속에 억압된 환상을 분석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도구가 되었다. 심리학자인 프로이트가 노이로제 환자 치료를 위해 꿈을 해석했다는 말처럼 우리는 사람과의 대화로만은 알 수 없는 무의식을 꿈을 통해 활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프로이트는 이런 꿈의 무의식을 반복적으로 해석함으로서 꿈의 공통점들을 찾는 과정을 보내게 되고, 결과적으로 꿈 해석의 보편화를 이룩하는 데 동조를 했다.


또한 꿈을 통해 무의식과 관련된 여러 영역의 관계를 파헤칠 수 있었는데, 그 중 언어와 관념의 발달에 관한 영역을 예를 들 수 있다. 즉 프로이트는 영어와 독일어, 라틴어를 비교하며 각각의 단어에 일어난 전도가 꿈의 작업에 의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재생되고 있고 있음을 증명하려 했다. 그는 꿈의 작업을 다른 것과 비교해보며, 인간 정신 분석의 연구가 다른 영역까지 건드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꿈의 해석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의 경험과 내면에 대해 질문하게 하고, 새로운 질문을 찾게 하며, 무의식의 생산적인 확장을 도모하려 했던 것이다.



<꿈의 해석>의 의문점과 한계


꿈은 아직 연구되지 않은 부분이 많고, 앞으로 인류가 꿈을 꾸는 한 고갈되지 않을 정도로 무궁무진한 연구 주제이자, 담론 거리이다. 몇 가지 특성으로 모든 꿈을 규정지을 수 있는 없다. 이것은 연구 주제가 꿈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개인마다 다양한 꿈의 해석의 방법과 의미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중 충동과 감정에 따라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이드라고 칭했는데, 이드의 에너지가 특히 성욕에 집중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무의식을 주로 성욕에만 국한시킴으로써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발견한 공로를 까먹은 부분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꿈은 해석할 수 있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꿈은 결코 본래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본래의 것이 왜곡된 대용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무의식을 기억하는 것은 의식이기 때문이다. 즉 꿈에 대한 기억이 더욱 분명했을 때 이 대용물은 더 왜곡된 것이 된다. 프로이트의 말대로 하면 꿈은 무의식인데, 꿈을 표현하고, 해석하는 것은 의식의 ‘말’이다. 의식으로 무의식을 설명한다는 전제가 과연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이 꿈의 해석의 가장 큰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프로이트는 노이로제 환자 치료를 위해 꿈 해석을 시작했다. 즉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한 입장에서 시작된 연구이기 때문에 그는 꿈에 대해 최대한 객관화를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꿈을 꾼 사람들은 자신들이 떠오른 연상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선택시킬 수밖에 없다. 그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그렇기에 프로이트는 꿈을 해석하기 전에 떠오른 연상은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규칙을 일러준 다음 분석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은 번번이 이 약속을 어기게 된다. 무의식을 설명하는 데에는 의식이 계속해서 개입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프로이트 스스로도 한계로 생각했으며, 그는 꿈 해석에 대한 준비가 완전치 못하다는 말을 남겼다.


방대한 꿈 해석하는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직 많은 난관이 있으며, 노이로제 환자의 꿈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치료를 첫째 목표로 삼고 꿈의 해석을 둘째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기에 프로이트는 치료에 필요한 것만을 뽑아내고 불필요한 꿈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또 치료 과정에 나타난 많은 꿈도 대개는 충분한 해석을 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는 것도 지적 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그도 스스로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즉, 프로이트는 꿈의 애매성이나 불확실성은 오히려 필연적으로 예측되는 꿈의 특성이기 때문에 연구 상의 불완전한 해석은 당연한 일이라고 반박을 한 것이다. 허나 이것 또한 꿈 해석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꿈 해석 단계에서 생기는 한계도 있을 것이다. 즉 꿈의 요소를 본래의 뜻으로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상징으로 해석해야 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꿈의 해석은 오로지 해석자의 임의에 맡겨지게 된다. 어떤 꿈의 요소를 우선적으로 풀이하고, 어떤 요소를 부차적인 의미로 풀이해야 할 것인가도 결정되어 있지 않다. 즉, 똑같은 꿈을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위험이 있다. 꿈 자체가 무의식의 압축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윤곽이 분명치 않은 희미한 형상이다. 그런 꿈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 가능할까 의문이 든다.



마치며


꿈의 해석은 19세기 유럽인들의 사생활과 문화, 정치와 기술 등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익숙하지 않고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책이라고 한다. 그 시대의 사람과 그 시대의 무의식, 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의 해석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큰 교훈이 있었다. 우리가 꿈의 그 모순되고 불합리한 내용들을 말하고, 거기 나오는 이미지들을 파헤칠 때 우리는 우리 삶이 그렇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일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경직된 합리성에서 나와 우리 삶의 전체적인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꿈에 대한 프로이트의 흥미는 그의 소년시절 때부터 시작되어 그는 평상시의 꿈을 일기처럼 매일 기록해 두었다고 한다. 실제로 꿈을 해석하고, 해석하는 과정들을 엿보며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꿈은 문학작품이나 영상물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등장하여 큰 뼈대를 이루는 사건을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하고, 꿈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창작자라면 꿈의 장면을 기록하는 과정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이 된다. 릴케가 꿈꾸는 진정한 시인이란 바로 무의식 속에서 시를 끌어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물론 독자들은 그것을 의식으로 읽겠지만, 체험을 무의식 속으로 넣고, 창작을 통해 그 무의식을 발현시키는 과정에서 무의식의 무한한 위용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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