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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현대 사회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감시와 처벌

푸코 [감시와 처벌] 분석 및 감상

by 오로지오롯이


들어가며


푸코는 우리의 삶의 일반을 점유하고 있는 다양한 관계 속에 내재된 권력의 양상을 포착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권력 간의 복합적인 연관관계 속에서 근대적 주체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그의 계보학적 연구의 본격적인 시도라고 평가 받는다. 이 책의 주요 담론은 감옥 속의 감옥, 보이지 않는 감옥을 어떻게 볼 수 있게 하느냐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감옥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 과학적 담론들은 때로는 그 제도의 프로그램으로 나타나고 어떤 때에는 말없이 남아있는 관행을 정당화하거나 은폐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렇기에 필자는 서구의 형벌제도와 감옥을 어떤 계보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각 시대의 권력이 통제, 관리하는지를 분석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권력과 지식의 연계 문제를 탐색하고자 하였다.



<감시와 처벌> 분석


푸코에 따르면 18세기 이전에는 죄인의 범죄에 대한 진리를 밝혀내는 것이 군주와 군주의 판사들이 갖는 절대적인 권리였다. 그리고 비밀스런 사법적 과정을 통해서 드러난 진리는 공개적으로 선포되어야 했다. 예를 들어 죄수는 판결문의 내용을 몸에 달고 거리를 행진하며, 사거리에 멈춰 서서 판결문을 낭독하고, 교회 앞에서 공개사과를 하고, 비밀리에 자백한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다시 한 번 자백해야 했다.


하지만 공개 처형은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위기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처형장에서의 민중들의 폭력적 반란과 저항의 반발, 범죄자들의 영웅화, 그에 따른 법과 권력의 일시적 전도 등 예상치 못했던 결과들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것은 부르주아가 탄생하기 시작한 시대상과도 큰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군주에게 집중되어 있던 권력의 형태가 생산, 부, 재산, 인구의 증가에 따라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진 불법 행위를 단속하기 위해 권력이 정교해지고 치밀해지는 권력 메커니즘의 변화를 이끌게 된 것이다.


이후에는 범죄자는 더 이상 복수의 대상이 아니었고, 교화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또한 범죄자의 내적, 정신적 상태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는 정신의학자, 범죄학자들이 처벌의 권력을 위해 동원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다양한 지식과 테크닉 그리고 과학적 담론이 형성되고 처벌의 권력과 불가분하게 연관되게 되었다. 곧 지식과 권력의 결탁이 이루어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대의 변화는 곧 형벌제도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이끌었다. 푸코는 그 과정을 주목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감시의 기능과 보이지 않는 권력 안에서 기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사법 개혁의 당면 과제는 보다 적은 경제적 및 정치적 비용으로 권력의 효과를 보다 규칙적이고 연속적인 방식으로 사회 전체의 미세한 부분들에까지 깊숙이 흘려보낼 수 있는 철저히 계산된 전략을 세우는 일이었다. 곧 새로운 권력의 정치경제학을 수립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푸코는 그 과정에서 감옥이 탄생했다고 판단했다. 즉 감옥은 처벌권의 집중을 막고 처벌이 모든 곳에서 효과적이고, 지속적이고, 세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공개처형 같은 처벌의 가혹함보다 모든 범죄와 불법행위, 죄수를 감시하는 응시가 더 중요해졌다.


그 과정에서 부르주아들은 스스로 권리에 대한 규칙과 법을 위반하면서도 하층민들이 자신들의 재산에 대해 저지르는 불법행위는 더욱 지속적이고 철저하게 감사하고 처벌하고자 했다. 형벌제도의 개혁은 군주의 권력에 대한 투쟁보다는 일반인의 불법행위를 처벌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으며, 처벌의 강도는 약해졌지만 처벌의 효과는 강화되었다.


그렇다면 감옥은 인간에게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푸코는 벤담의 원형감옥 ‘판옵티콘’을 들어 감시와 통제 대상이 된 개인은 원형감옥에 투옥된 죄수처럼 자기 스스로의 의식에 따라 행동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권력 관계가 규정하는 대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선택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즉 원형감옥에서 가시성의 영역에 갇힌 주체는 항상 응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느낌으로서 스스로를 감시하는 효과를 낳고 이로 인해 주체는 권력에 종속되고 권력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푸코는 감옥과 같은 사회의 한 지역에서 폐쇄된 채 행사되던 훈육적인 권력이 국가의 기구나 제도의 틀을 벗어나 탈제도화되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행사되게 되었다고 말한다. 즉 감옥을 통해서 통제되고 조직된 개인들의 집합들로 변모시켜 범죄자들을 정치적으로 훨씬 덜 위험하면서도 경제적으로 매우 유용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처럼 일정한 규모의 공간에서 다수의 인간들을 다루고 그들에게 임무나 특정한 행동 형식을 부과해야 하는 모든 시설과 기관들에게 규율은 보다 큰 권력과 보다 많은 생산을 동시에 확보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푸코는 학교, 공장, 군대, 병원 등 전 사회 영역으로 확대된, 인간의 신체를 정교히 통제하고 구속하는 훈육적 권력을 설명하고 있다. 공개처형은 전통적으로 권력은 보이고, 보여지고 드러난 것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면, 훈육적 권력은 가시성을 통해 주체들에게 행사되는 권력의 장악력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훈육된 개인을 종속의 상태로 유지시켜줄 수 있던 것은 항상 보여진다는, 그리고 항상 보여질 수 있다는 가시성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체들은 학교든 감옥이든 어디든지 사회 전반적으로 어디서 기능하더라도 감시되는 느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고 권력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던 것이다.


17세기 이후 발달한 이런 권력 체계는 인간의 신체를 훈육하고 인구를 통제하는 두 가지 방향에서 발달했는데 푸코는 이렇게 인간의 신체를 종속시키고 인구를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테크닉이 발달한 시대를 ‘생명권력’의 시대라고 명명한다. 이 생명권력은 가정, 군대, 학교, 경찰, 병원 등의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형태로 행사되어, 인간의 신체를 자본주의 생산 체제에, 그리고 인구를 자본주의 경제과정에 편입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발달과 자본주의 지배관계에 공헌했다고 보았다.


또 다른 한편으로 생명권력의 발달은 사법적 체계보다 규범이 더 중요해지는 과정과 맞물려 있는데, 특히 법은 항상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권리로 귀결되지만, 생명을 다스리는 것을 과제로 삼는 권력은 지속적인 규제적 교화적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즉 권력의 목적은 더 이상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규범에 맞게 교화시키는 것이 되었다. 생명을 더욱 엄격하고 철저하게 규범화하고 규제하게 된 것이다.


푸코의 권력 개념은 미시적인 권력으로 우리의 일상의 개인과 집단 간의 모든 관계 속에 존재한다. 누구도 권력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결국 순응적인 존재로 주체는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렇게 권력은 개인을 통치하는 단순한 힘의 차원을 넘어 정보와 지식의 체계로 개인을 더욱 철저하게 지배구조의 틀 속에 가두게 되는 것이다.


그런 권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연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즉 지식과 권력은 서로 통합되어 있고 지식이 권력에 의존하기를 중단할 수 없다. 권력은 그것이 효과적으로 행사되기 위해서 대상에 대한 지식을 요구한다. 따라서 권력과 지식은 상관적이다. 그런 지식에 대해서 푸코가 집중한 것은 지식의 내용은 아니다. 그는 지식이 어떻게 구성되는가 하는 문제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즉 지식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각 시대의 사회적 조건 속에서 누가 이러한 지식들을 규정하고 구성하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지식과 진리는 권력 밖에 존재하는, 또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신이 얻을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며, 세상의 담론적, 물적 공간에 있는 것으로 다양한 권력의 구속과 강제의 의해 생산되는 것이다.


완벽한 권력 행사의 처방을 제공하기 위해 고안되었던 판옵티콘도 사실은 원래의 계획대로 기능하지 못한 하나의 유토피아였다. 푸코는 이 책의 뒷부분에서 감옥은 범죄의 예방과 범죄자들의 교화라는 원래 의도되었던 목적과 기능을 수행하는 데 실패했으며 오히려 재범을 조장하고, 비행자들을 양산하고 조직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푸코는 자기 스스로 삶의 구체적인 윤리적 실천을 통해 윤리적 능동자로 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쓰기, 명상, 자신과 타자와의 대화,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적 숙고를 통한 윤리적 개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을 통해 혁신과 창조성을 위한 자유로운 공간을 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행위를 감시하고, 형태를 부여하고, 스스로를 윤리적 주체로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적인 장치에 관심을 두고 모든 각자가 자신의 삶을 창조적인 예술작품으로 사유할 수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자기 구성적인 윤리적 실천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자기의 주체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대 사회 적용


오늘날 우리는 익명성을 띠는 감시를 통해서 권력이 행사되고 있는 훈육적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감시적인 권력의 요소들은 학교, 병원, 공장, 감옥과 같은 근대사회의 수없이 많은 국가 및 공공 기관들과 장소들의 설계 속에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특정한 사람에게 드리워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회의 전반에 걸쳐 다양한 제도들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일단 이런 다양한 제도들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판옵티콘’이라는 원형 감옥에 다시 한번 집중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판옵티콘은 중앙의 원형감시탑에서 각 수용실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공간이다. 즉 감시 권력이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수용자들은 항상 감시당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공간이다. 판옵티콘의 구조에서 죄수들이 자신들이 항상 감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모든 사회는 거대한 판옵티콘이 되어갔다. 사람들은 어디서든지 감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보이지 않는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하게끔 길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푸코에 따르면 그 과정에서 규율의 역할이 생겨났다. 푸코는 감시의 힘에 의해 포박된 주체들이 복종적 주체, 지식의 대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규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규율은 개체를 통제하고 관리하며 훈련시키고 조직화하는 기술을 통해 작용한다. 이렇게 확대된 규율 사회는 신체를 길들이고 감시하는 사회로서 신체를 처벌의 표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길들임으로써 그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즉 규율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구속하고 억압하여 대량적 방식으로 강제하는 피라미드적 권력에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기술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즉 세부적 규제, 연습, 훈련, 시간 사용, 평가, 시험, 기록 등을 통하여 신체의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작용해서 신체를 길들여 가능한 효율을 최대화하기 위해 신체의 동작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즉 규율 사회는 감옥 사회가 확대되어 간 것이다.


푸코는 이런 예시로 작업장에서 감독자는 일정한 공간적 배치를 통해 직공의 출결상황, 근면성, 작업의 질을 확인하고 직공들을 비교하여 그 숙련도와 신속도에 따라 분류하고 제조 과정의 연속적인 단계를 감시한다고 보았다. 또한 일정한 서열 안에 개인을 배치한다.


또한 규율은 시간을 정교하게 만들어 가급적 작은 단위로 계산한다고 보았다. 군대, 학교, 작업장, 병원 등은 시간을 세밀하게 분할한다. 푸코가 본 관건은 어떻게 개개인의 시간을 자본화하여 그것을 활용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개인들의 신체, 힘, 능력에 축적할 수 있는가이다. 이처럼 규율은 시간을 자본화하는 장치이기도 한 것이다. 규율은 단순한 용수철 장치에 의해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거대한 기계가 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푸코는 이러한 규율적 권력이 위계 질서적 감시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위계 질서적 감시는 일정한 위계질서 하에서 감시를 통해 생산과 통제를 통합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개인을 규율적 공간에 묶어두고 그들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모델은 군대, 공장, 대규모 작업장, 학교, 기숙사 등에서 활용된다. 즉 감시를 통해 통제하며, 늘 가시적 공간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시킴으로써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이용하는 것이다.


푸코는 이런 위계 질서적 감시의 구조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준이 필요했다고 본다. 즉 정상적 행위를 설정한 뒤 그것에 위반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탈에 대해 처벌하는 경우를 현대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시간에 관한 일탈로서 결석, 지각, 업무 중단을 들 수 있으며, 행위에 관한 일탈로서 부주의와 태만, 태도에 관한 일탈로서 무례와 반항이, 언어에 관한 일탈로서 수다와 건방짐, 신체에 관한 일탈로서 버릇없는 자세, 적절치 않은 동작, 불결함 등을 들 수 있으며, 성에 관한 일탈로서 저속함, 음탕함 등이 처벌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이에 순응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경우는 모두 감시나 처벌 및 교정 대상이 된다.


푸코의 이론에 따르면 학교 교육에서의 지식의 습득도 학생이 그 지식의 습득을 통한 이성의 개발을 통해 자유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그 지식은 힘, 즉 감시의 구속의 양식으로 작용된다고 보았다. 공유할 가치에 대한 논의의 장으로서의 학교 공간이 아니라 권력의 다양한 통치기술에 의해 밖에서 주어진 객관적인 지식의 효율적인 습득을 강제하기 위해 학생을 관리하고 훈련시키는 훈련의 메커니즘의 성격을 보다 강하게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검사를 통해 개인의 세밀한 자료를 분류, 기록 관리하여 기록의 그물에 갇히게 만든다고 보았다. 푸코는 이를 기록하는 권력이라고 명명한다. 예를 들면 학생 기록부는 학생들의 품행, 신앙심, 지식습득, 정신 상태 등을 세밀하게 기록해 놓는다. 이것은 개인을 하나의 사례로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서 기록좌표에 한 자리로 자리매김하여 개인들을 집합적 다수로 방치하지 않고 권력 지식의 효과나 대상으로 만드는 주요방식인 것이다.


마치며


근대적 감옥과 사법제도는 범법자들을 교화시키고 그들을 선량한 시민으로 변화시키기는커녕 새로운 범죄자들을 만들어내는 제도적 장치가 되었고, 권력은 이것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 푸코의 주장이다. 과거에는 위험한 범죄자를 단순히 격리시키는 것에 불과했던 감금은 수감자에 대한 절대적 권력의 감시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푸코는 이러한 권력과 감시체제의 전략으로 인간은 개인화되어 왔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푸코가 모든 것을 권력 기술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근대 사회를 판옵티콘적 권력에 의해 완벽하게 밀폐되고 통제 및 관리된 하나의 거대한 수용소로 그렸다는 점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푸코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탐색함으로써 각 시대에 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특정한 방식으로 통제 관리하는가를 고찰했다. 또한 이러한 분석과 문제의식이 함축하고 있는 철학적 의미를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드러난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반면 숨은 것은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시된다는 것. 이런 당연시되었던 역사를 푸코가 파헤쳐본 것이다.


그는 우리 주변의 보이지 않는 시선을 통해 우리가 주체적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부분을 포착하려 한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푸코의 이론이 주목 받을 만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의 이론을 통해 우리는 주체적 자유를 박탈당한 이 비극적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존엄성을 회복하고 진정한 주체로서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진지한 고민에 임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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