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의 안부 - Ep.04
불안은 대개 커다란 사건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것도 확실히 일어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자라난다. 해야 할 일은 쌓여 있는데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결정해야 하는데 어느 쪽도 확실하지 않은 날. 마음은 자꾸 앞질러 가는데 발은 제자리에서 미끄러진다. 어디론가 떨어질 수도 있고, 알지 못한 방향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는 막막함이 몸속에 퍼진다. 그 감각은 두려움이라기보다 공중감각에 가깝다.
나는 그 공중감각을 한 번, 아주 물리적으로 겪었다. 새벽에 잠이 깼고 집 안은 완전히 어두웠다. 물 한 잔을 마시려고 늘 걷던 길을 그대로 걸었다. 바닥이 익숙하다고 믿는 순간이 가장 위험했다. 발끝이 닿아야 할 곳이 비어 있었다. 누군가 옮겨놓은 의자 때문이었다. 한 걸음이 허공으로 빠졌고 몸이 순간적으로 기울었다. 손이 벽을 더듬어 겨우 중심을 잡았지만, 그 짧은 찰나에 심장이 먼저 소리를 질렀다. 넘어지지 않았는데도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올라왔다. 불안이란 게 바로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양손을 뻗었는데, 어느 방향으로도 닿는 것이 없을 때. 그때 우리는 허공에 있음을 직시한다.
그날 이후로 불안을 겪는 사람을 보면, 먼저 손부터 떠올리게 됐다. 손끝에 확실히 느껴지는 것이 없는 사람에게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은 너무 막연하다. 필요한 건 거창한 해결이 아니라 무언가라도 더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무엇이든 손끝에 걸리는 감각.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다는 기척. 아주 작은 손길이라도 어렴풋 느낄 수 있도록, 가까운 어느 곳에 누군가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그건 대단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 물을 건네는 일, 불을 하나 켜주는 일, 옆에 앉아 숨을 같이 맞추는 일. 손이 허공을 더듬지 않게 만드는 단순한 조치들. 그런 것들이 먼저 있어야 한다. 불안은 머리로 설득되기 전에 몸이 먼저 내려앉아야 한다. 바닥이 생기면 그제야 생각이 가능해진다. 그제야 사람은 어느 쪽이든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다.
선택은 결국 그 사람의 몫이다. 어디로 가고 무엇을 붙잡을지, 얼마나 기다릴지. 대신 결정해줄 수는 없다. 다만 막연한 불안을 충분한 고민의 수준까지 내려오게 하는 일은 누군가 해줄 수 있다. 허공에서의 선택은 추락과 닮아 있지만, 바닥이 생긴 뒤의 선택은 비로소 선택이 된다. 불안을 없애주는 게 아니라, 불안이 사람을 삼키지 못하게 해주는 것. 그 사소한 닿는 느낌 하나가 사람을 다시 자기 자리로 돌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