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의 안부 - Ep.02
시골의 겨울은 여백이 많다. 눈이 한 번 오고 나면 길의 경계가 흐려지고, 논두렁은 낮아진 하늘 아래서 하얗게 눌린다. 소리도 함께 줄어든다. 멀리 굴뚝에서 연기가 한 줄 올라가다 옆으로 눕고, 바람은 그 연기를 따라 천천히 마을을 지난다. 숨을 들이마시면 코끝이 먼저 차가워지고, 주머니 속에서도 손가락 마디를 펴면 부서질까 조심스러워진다.
논길 끝에서 개 한 마리를 봤다. 등 위에 눈이 소복이 얹혀 있었다. 털 사이로 스며든 눈이 금세 녹지 않고 작은 덩어리로 남아 있었다. 개는 사람을 향해 달려오지도, 누군가를 찾듯 짖지도 않았다. 그저 바람이 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제 발밑을 내려다봤다. 눈밭 한가운데서도 먼저 살피는 건 늘 발밑이었다.
개는 걸음을 크게 떼지 않았다. 발을 내딛기 전에 잠깐 멈추고, 눈이 얇게 얼어 있는지 확인하듯 발끝을 한 번 눌렀다. 미끄러운 자리를 피하려는 듯 몸의 중심을 낮게 두고, 같은 발자국을 다시 밟아 길을 만들었다. 옆에서 누가 목줄을 잡아 주는 것도 아니고, 앞에서 길을 내어 주는 것도 아니었다.
잠시 후 개가 몸을 한 번 털었다. 등에 쌓인 눈이 흩어졌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털 사이에서 잠깐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는 듯했지만, 금세 차가운 공기에 섞였다. 개는 다시 고개를 들고 서 있었다. 눈이 오는 방향을 잠깐 바라보다가, 다시 발밑을 내려다봤다.
나는 그 개를 한참 바라봤다. 불쌍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내 눈에 들어온 건 다른 것이었다.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 계절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견디는 모습. 눈바람을 맞고도 중심을 잃지 않는 두 발, 이후 털어내고 다시 내딛는 침착함. 그 단순한 반복이 이상하게 숭고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발자국을 한 번 돌아봤다. 금세 희미해지고 있었다. 눈은 아무렇지 않게 또 덮고 또 덮었다. 그 무심함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걸음을 조금 줄였다. 발밑을 한 번 더 보고, 미끄러운 자리를 피해서 걸었다. 그러면서도 눈을 피하려 고개를 더 숙이지는 않았다. 오는 건 오는 대로 맞고, 쌓이면 털어내고, 다시 내딛는 것. 별일 아닌 변화인데도, 방금 본 그 자세가 계속 따라오는 것 같았다. 오늘은 나도 내 방식으로 겨울을 통과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