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에서 보이는 아이의 좁은 글 세상

by 오로라

오후에 출근해 새벽에 들어오는 워킹맘의 삶은 아이의 가방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된 후로는 "잘하겠지"라는 믿음과 "너무 지쳐서"라는 핑계 아래 아이의 가방은 제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오랜만에 아이의 가방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파일철에는 지난 학기 프린트물이 한가득 쌓여 있었고, 그 사이에서 아이의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편씩 썼을 아이의 일기장에는 다양한 소재들이 가득했습니다.

미싱으로 옷을 만들고, VR 체험을 하고, 놀이공원을 가고, 뜨개질을 하고, 66챌린지에 도전하는 등 다채로운 경험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경험들을 단순한 사건의 나열로만 풀어냈다는 것입니다.

"어떤일이 있었고, 무엇을 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그 속에서 아이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는 거의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제 일기장을 보는 듯해 안타까웠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아이도 글쓰기에대해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저는 지금까지도 앞서 말했던 느낌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는 일기 쓰기의 본질이 어떤일이 있었는지를 나열하는 것 보다는 그 당시의 내 생각과 느낌을 글로 적어보는거라 생각합니다.

겪었던 일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그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같은 일을 겪더라도 생각하는 힘을 기르면 더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일기를 통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감정 어휘를 늘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사건의 나열'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


저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일기 쓰기 지도의 핵심은 무조건적인 첨삭이 아니라,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일기장을 보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이가 일기장에 기록해야 할것은 단순히 그날 있었던 '일'이 아니라, 아이의 시선으로 본 '세상'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오늘부터 아이에게 '오늘은 무엇을 했니?' 대신, '오늘 무엇을 보았니?' 혹은 '무엇이 가장 재미있었니?' ‘어떤 생각이 들었니?’라고 물어보려 합니다. 아이의 감정과 생각에 더 귀 기울여, 아이의 일기장이 삶의 기록이 아니라, 삶의 사유로 가득 차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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