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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Oct 14. 2022

이런 걸 덕질이라고 하는구나.

이제야 깨달음

나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매우 좋아해서 그것에 빠져본 적 기억이 없다.

(그나마 일본 애니메이션과 미드, 책과 순정만화, 취향에 맞는 음악에는 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로 빠졌지만 그때 잠깐일뿐 여러날을 몰입해서 미쳐본 적이 없다.)

누구나 한 번쯤은 선생님을 좋아하거나 연예인을 좋아한다거나 일본 애니메이션만 판다거나 기계를 좋아한다거나 그림을 좋아한다거나 산에 미친다거나 해서 한 가지를 특정한 시기 동안 미친 듯이 몰입해 빠져 본 기억이 있다는데 나는 누구를 열정적으로 좋아해 본 적도 한 가지 분야에 빠져 살아 본 적도 없다.


최근 브런치에 글을 쓰고, 불렛 저널에 나의 모든 것을 하나씩 기록해 가다 보니 근 2년 동안 구매해서 듣고 본  강의와 전자책, 종이책, 챌린지 참여한 횟수가 어마어마했다.

(클래스유, 크몽, 101, 스터디 파이, 와디즈, 유튜브, 라이브 해킹 스쿨, mkyu, 구매대행 개별 강의 3-4개, 챌린지, 종이책 등등 사이트도 정말 많기도 하다.)


처음 시작은 유튜브였다. 회사는 더 이상 못 다닐 것 같았고, 다른 수입원을 찾아야 했다. 유튜브에는 여러 가지 방법의 지식창업으로 돈을 번 사람 수익을 냈다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최소 15년을 제품을 판매하는 업을 삼다보니 물건을 판다는 행위에 지쳐 있었고 이왕이면 지식창업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또 이왕이면 잘때에도 돈이 벌리는 일을 찾고 싶었다.


유튜브에서 정보를 찾고 자주 보고 관심이 생기면 그 유튜버의 강의나 책을 찾아서 보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구매한 온라인 강의를 본다. 요즘 온라인 강의는 짧게 짧게 쪼개져 있어 오래 봐도 한 챕터에 20분. 1배속은 너무 느려 답답해서 무조건 1.2~1.5배속으로 듣는다. 출퇴근 시간 도합 2시간은 충분히 넘어가니 한 사람의 강의를 하루 서너 챕터 이상씩 들었다. 강의를 듣다가 정보를 찾다 보면 또 다른 정보가 나왔다. 그럼 또 그것에 관한 책이나 유튜브, 강의를 찾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2년여의 시간이 지났고 어느순간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마주하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시간을 보낸 지금의 내 기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스쳐지나감.

모든 강의와 모든 서적의 내용들이 나를 스쳐 지나간듯한 느낌이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없다는 느낌. 산만함.

몇백짜리 강의에 영상도 공유해줬는데 이제 와서 보니 영상 몇 개가 없었다. 그동안 결제해서 읽은 전자책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다시 보려면 어디 있는지 찾아야 했고(패드, 폰, 컴퓨터도 여러 대라..) 구매한 종이책은 제목을 다시 보면 내용이 생각나질 않았다.


한동안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회사만 다녀서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되어 빽도 없는 내가 이런 공부에 투자라도 안 하면 미래는 너무 뻔하다는 생각이 컸고 다른 사람들의 돈 버는 노하우를 열심히 뒤적였지만 이렇다 할 드라마틱한 결과는 없었다. 10대, 20대 때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는 건가?'를 나도 모르게 웅얼거릴 정도.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너무 정신이 없구나를 느꼈다. 상대와 대화를 할 때에도 대화에 집중이 안됐다. '지금 뭘 해야 하는데, 다른 걸 찾아봐야 하는데, 지금 그걸 해봐야 하는데' 하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아까워 나도 모르게 다른 걸 꼭 함께 했다. 영상을 보면서 책을 펼치고, 대화를 하면서 핸드폰으로 정보를 찾고, 암튼 한 가지만 오롯이 집중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샤워를 할 때나 자려고 누웠을 때, 아이의 하교나 학원 픽업을 갈 때에도 지금 뭐라도 해야 해라는 생각에 내 뇌와 눈과 귀는 쉼 없이 돌아갔다.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운동을 안 하고 집에 있으면서 50킬로를 넘지 않았던 몸무게는 몰라보게 살이 쪘고, 얼마 전 건강 검진에서는 몸에 근력이 하나도 없다며 이렇게 지내면 그나마 있던 근력도 없어진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 조급함의 열차는 점점 속도를 내고 있었다. 아마 곧 그 열차는 결국 탈선을 하던가 내가 뛰어내리던가 둘 중의 하나를 두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덕질

덕질은 좋아하는 분야를 파고드는 행위를 지칭하는 말로, 일본어인 오타쿠→오덕후→오덕(덕후)→덕으로 변해온 것이다. 그리고 덕이라는 말에 무언가를 하다는 뜻의 말을 낮추어 말하는 질을 합성해서 '덕질' 이 되었다.



정말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고. 나의 이런 정보에 대한 갈구가 집착, 병인가 의심하고 있을 때쯤 새벽 챌린지에서 "나를 위한 덕질을 해보세요."라는 스쳐 지나가는 한마디에 갑자기 무릎이 탁! 쳐졌다.


"아, 이게 내가 좋아하는 분야구나. 난 그냥 정보를 좋아했고 그것을 파고들었을 뿐이구나."


남이 봤을 땐 충분히 그냥 정신없다 말할 수도 있고 덕질치고 참 돈많이 드는 덕질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 한마디에  사람이 이렇게 또 기운을 얻어 새로 시작해볼 마음을 먹게 되는구나 싶다. 한마디 말이나 한 줄의 글로 스스로 같은 상황에 대해 이렇게나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게 알고 있었지만 또 새롭다.


그래도 스쳐지나간 정보들을 정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은 정리에 집중해야할 것 같다. -_-;


다음엔 내가 그동안 어떤 덕질을 해왔는지 하나씩 풀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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