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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Jan 31. 2023

열심히 살았지만 영리하게 살지 못했구나.

PDS다이어리를 쓰면서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나는 본래 좀 차분한 성격이고, 하나에 오래 집중하는 성격이었다. (살면서 많이 바뀌긴 했지만..)


어릴 때를 돌아보면 청소한다고 빗자루 질을 할 때에도 주위 어르신들이 "00 이는 빗자루질도 차분하게 잘한다."라고 하셨었고, 학원이나 학교 선생님들도 "00 이는 꾸준하고 성실하다, 열심히 한다."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었다. 친구나 지인들은 내가 편하다고 얘기해 줬었고, 궁금한 것들이 생기면 보통 나에게 물어오는 쪽이 더 많았다. 회사에서 업무를 하면 대표님들이 나의 의견에 집중해 줬고 프로젝트를 알아서 진행하도록 맡겨줬다. 성급하지 않고 차분한 성격이 한몫했던 것 같다.


그 성격덕일까.

나의 20대, 30대의 메인키워드를 찾으라고 하면 [#열심히]라는 단어 한마디로 표현이 가능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 외에 내 0세~39세까지를 표현할 단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차분해서 좋다, 열심히 해서 좋다는 이야기를 외부로 들을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열심히"라는 단어에 꽂혀 살아왔던 듯하다. 


회사생활을 마무리할 때쯤 난 회사에서 조금씩 발을 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정도의 열. 심. 히. 의 템포로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특히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미미했다. 젊은 친구들 중에 나처럼 워커홀릭의 느낌을 풍기며 일하는 친구들은 대체로 설렁설렁 일하는 사람들보다 월급이 낮았다. 열심히라는 단어에 꽂혀 경주마처럼 주위는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들에게서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11월부터 접한 책들 그릿, 폴리매스,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불렛저널, 하루 4시간만 일한다 등등을 시작으로 오랜만에 자기 계발서, 뇌과학, 진화심리학 쪽에 관심이 생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살았지만 영리하게 살지 못했구나.'


물론 회사에서는 '저 열심히 일했어요.'라는 말을 접어둔 지 오래됐었다. 나이를 먹었어도 한 번씩 내 열정을 몰라주는 것 같을 때는 좀 섭섭하긴 했지만 그래도 성과, 결과가 없는 '저 열심히 일하잖아요,.'가 안 먹히리란 거쯤 알아야 할 짬이기에.


회사를 그만두니 누가 나에게 일을 지시하지도 않았고 억지로 무엇인가를 진행시킬 일이 사라졌다. 그제야 오롯이 '나 와 내 인생'의 민낯이 보였다. PDS 다이어리를 새로 받아 2022년을 마무리하는 칸을 보자마자 3분도 안 걸려 한페이지에 몇줄 적어내려갔다. 


한 달이 지나고 우연히 다른 작가님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글을 보게됐다. 내가 작성해놓은 다이어리의 2022년 페이지가 생각났다. 지난 1년, 365일을 정말 건성으로 되돌아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이내, 내가 지난 해를 돌아본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라는 걸 알게됐다. 


회사에서 매출을 낼 때에는 매일의 매출을 기록하고 주별, 월별 정리를 하고 분기별로 다시 분석하고 년 별로 비교분석하면서 미래의 매출목표를 잡곤 하는 게 당연했는데, 정작 제일 중요한 내 인생은 방에 굴러다니는 쓰지않는 물건 다루듯 방치해뒀다고 생각하니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었는지 심장까지 와 닿았다.


최근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을 읽으면서 매일 아침 저녁, 일주일에 한번, 한달에 한번 자신의 지난 행적을 돌아보며 잘한점, 잘못한점, 깨닫고 바꿀점을 정리한다는 사람들의 예시를 보고 오늘 다이어리를 펼쳐 지난 일주일을 돌아봤다. 처참했다. 내가 목표로한것에 비해 행한 일들이 너무 초라했다.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는것은 내가 매일 아침마다 하루에 해야할 일의 우선 순위를 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매일매일 매달매달 변동되는 스케줄과 그날의 잡다한 일들을 하노라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려 뭐가 급한지, 오늘 했어야만 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정신 차리지 못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는데 요즘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책상에 앉아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적는다. 그리고 그중에 우선순위에 시간을 최대한 많이 할애하려 노력한다. 


40년을 열심히 살아봤으니 이제 남은 인생은 영.리.하.게. 살아봐야겠다. 현재에 충실하되 미래를 위한 선물의 시간은 하루에 단 5분이라도 꼭 배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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