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극단적이지 않은 죽음

몸만 자란 어른들의 나라에서 살아내느라 애쓰셨습니다

by orosi

편안한 대장 컨디션.


하루 이틀이 아닌 평생 지닌 고질병이라 질 높은 수업기술 보다 먼저 갖출 과제가 그랬다. 쉬는 시간일지라도 화장실 가기란 큰 맘을 먹고서야 가능했다. 신규교사 때 내가 주로 앓던 병은 위경련 내지 방광염이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하필

체육시간에 신호가 올 건 또 뭐람.

며칠 새 예민해진 대장은 오늘도 편칠 못해 야단이다. 이제 여름도 좀 지나고 날도 선선해지는데 잔뜩 세운 긴장감 좀 내려놓으면 좋으련만.


이 순간

장소불문, 생리활동에 자유로운 금수이고 싶다.




얘들아, 미안.
선생님 금방 올게.




오래 걸릴 농도도 못 되었다.

금방 온다는 약속 정도 가뿐히 지킬 만큼.

바지에 지리지 않고 변기에, 지극히 인간답게 해결한 후 운동장으로 뛸 수 있어 안심한다. 휴~


체감키론 5분도 채 지나지 않은 듯한 시간.

아이들과 나 사이 구별이란 화장실 문 한 칸,

그 이상도 못 되었을 지척인데

운동장이 소란하다. 하필 수업시간에 변의를 느낀 교사의 불안과 비교할 수 없는 기운에 순식간 젖는다. 온몸으로 불안했다.



골대 근처.

얼굴을 감싸 쥐고 주저앉아 우는 소영이.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투명막을 흠뻑 뒤집어쓴 선균이.

둘을 애워 싼 내 아이들.




이 일로

겪게 될 민원과 감사는 태초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순차적으로 밀려왔다.

업무상 과실치상혐의.

사과나 용서를 구하고자 하는 기회는 얻으래야 얻질 못한 채 나는 고소를 당했다.




나는 교사다.

바지에 대변을 누더라도 자리를 지켰어야 한다.

정년을 1년 앞둔 선생으로서 어째, 슬퍼지고 말았나. 마땅히 고소를 당했어야 하는 무책임한 교육자가 왜 압박감과 심리적 고통을 척척 이겨낼 것이지. 지금 여기 죽으러 왔는가.

내 가족들과 헤어지기를 어찌 자처하는가 말이다.


남들은 자살이란 단어 앞,

'극단적'이란 꾸밈말을 즐겨 올리지만

'자연스러운'이 낫다.

달리 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그랬다.

그래서 그랬다.





(세상을 등질 용기 말고는 어떤 기력도 찾을 줄 몰랐던 선배님의 이야기와 초임 때의 내 것을 섞어 각색하였습니다. 안전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교사들의 일상도 꽤나 고단하고 긴장의 연속임을 감히 고백합니다.)




우리 재이였어도
우리.. 마음.
많이 아팠겠지?

당연하지. 내 자식인데.
근데.. 우리가 교사가 아니었어도

하필 그때
화장실에 다녀올 수밖에 없었던
선생님을 고소할 수.. 있었을까?






보통의 교사에게

수업 중 자리를 비운다는 건

알고 보면 정말 절박한 상황입니다.

본인의 선택과 책임과는 조금 다른 문제일 수 있어요.




하루는 후배를, 또 하루는 동료들을, 오늘 다시 선배를 떠나보내는 일. 깊이 슬픕니다. 더는 슬프고 말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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