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자란다는 행운
내겐 없으나 내가 줄 수 있는 그것
슬픈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망각'을 인간이 지닌 고차원적 능력이라 인정한다. 기대한다는 표현이 낫겠다.
다만 이런저런 '꼴'들을 다양히 도 겪은 삶 탓인지 슬픈 기억도 더 이상 나를 괴롭게만 하지는 않는구나 싶어 뿌듯하기까지 하다.
바쁜 일상에 정지버튼을 내가 누르지는 못하나,
어쩌다 예기치 않게 제동이 걸릴 때면 매번 비슷한 회상을 한다.
나보다 먼저 갔거나 갈 그녀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보고 자란다~'는 배움이 꽤 의미가 있겠구나 싶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남들의 것이라 그렇다.
안타깝게도 성인이 되고 나서? 그 의미를 찾아 배울 시기에 난 보고 자랄 기회가 없었다.
할머니의 삶, 엄마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나 ~ 어쩌다 엿보게 되거나, 거기에서 우연히 티끌만 한 지혜라도 알게 되는 영광을 누리고, 나아가 내 멋대로 요리해 볼 무엇이.
내겐 많지 않다는 게 가여울 때도 제법 있었다.
보고 자란다는 행운.
내겐 없었으나, 내가 줄 수 있는 그것.
그래도 이렇게 혼자, 가만 멈춰있을 자유가 올 때면 어김없이 그들을 회상한다.
잊은 줄 알았는데.
완전히 잊긴 글렀다.
다행히 슬프지는 않다.
그리움과 슬픔의 색이 달라진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