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osi Dec 21. 2023

20년 만의 1등

思春期 봄이 찾아오는 시기, 그게 사춘기니까

1등을 했다.

상장은 아니어도 꽤 쏠쏠 하달 만한 상품까지 쥐어졌다. 학기 말 본의 아닌 초과근무에 마음까지 춥던 저녁. 반대 편 복도에 긴 생머리 그녀가 허옇게 차려입고  있지나 않을까 섬찟해, 방광도 달래 가며 열일했다. 얼른 끝내고 가자. 히터는 왜 안돼. 씨부렁.



까똑!


에이~씨. 깜짝이야!

만하면 모든 알림을 꺼두는 편이라 이 시간에 울릴 만한 '간만의 발신자'를 예상 못해 놀란다. 요즘은 귀신들도 카톡하나... 처녀라 그런가 등등. 둘이 일 듯, 혼자 말한다.



1등이라니.

이걸 어디다 자랑해;;

병상에 눕던지 방황하던지.

개근이란 묘연했던 유년시절, 출석률은 보장받기 어렵게 살았고, 1등이라... 중고등학생 때의 학업 이외엔 또 언제가 있었더라.


외모가 고운 친구들은 삼삼오오 소개팅하느라 뒷전이었을 대학공부란 걸 신나게 한 덕에?

대학원 졸업을 마지막으로 아줌마 인생에 1등이랄 게 없었다. (래봐야 식욕 1등.  그런 거..)




요즘 웨이트의 매력에 빠져 필테를 거르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원장님께 미안한 마음에 두어 달 전 건강이력(코로나, 독감 블라블라..)까지 끄집어내어 핑계를 둘렀음에도 무한 격려를 보내주신다.



음마~~  나를 따라올 자 없는가~~!!

새삼 기쁘고, 흠칫 민망하다 ㅋㅋ

이게 얼마 만의 1등인가 말이다.


자기만족에 머리를 쓰다듬어 가며 신나게 글을 써봐도.. 필력? 쳇! 이렇다 할 발전이 깜깜하고. 

그렇다고 내가 육아란 걸 제대로 하나.

 읽기마저 동면에 돌입한 듯 온갖 권태기를 겪고 있던 시점에 이게 뭐라고 손 내밀어 날 일으켜준다.




나이 마흔은 그런  나이가 아니다.

자신의 성취를 뚜렷이 알고,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당연히 안정적이기에 충분한 나이.

그간 잘 해온 일과 잘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구별해 내며, 앞으로의 삶을 척척 계산해 낼 줄도 아는 현명한 나이.

흔의 나이란 그러질 못한다.



주춤하거나

잔뜩 바닥에 웅숭그려있는 나이가 마흔이다.

공연히 별거 아닌 게 다 별거가 되어 버려 괴롭고, 일도 육아도 모두 내 탓인 듯 버거운 그런 나이다.

남들의 실수는 너그러이 눙치고 넘겨도 내 것에는 깊게 낙심하는 가여운 나이다. 그간 바라보지 못해 온 나를 마주하며 간만에 자신과 대면하는.. 새삼스런 나이 맞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난 뭘 잘할 수 있지?

10대, 20대 때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을 겨우 꺼내 이제야 자문하는 나이, 40.


 탓에 마흔의 여자들은 대수롭지 않은 격려에 몸을 일으키고, 체온만큼의 온기로도 마음을 회복한다.


마흔의 아내들이, 마흔의 엄마들이!

그저 마흔의 여자 되기를 서두르기 바란다.

그녀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1등으로 좋아할 만한 하나를 꼭 찾길 응원한다. 집안일, 육아, 직장일 할 시간 챙기듯 우선순위로 "나의 그것 할 겨를"을 만들어 두기 바란다. 나를 크게 넘어뜨릴지 모를 그것조차 내게 털고 일어날 힘을 줄 테니까.


미친 척 잔망스럽게 살자. 한 지붕 사람들이 질겁할 것도 천연덕스레 저지르고 보자. 짐짓 겁먹지 말고 40의 용기를 나라도 달갑게 반겨주잔 말이다^^

나에게만 대단할 일이라도 좋다.



여자인생의 사춘기, 40대.

40대 여! 사춘기의 본뜻을 기억하라.

思春期.  사춘기란 "봄을 생각하는 시기"니까.


작가의 이전글 13년 만의 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