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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Jan 14. 2024

몽마르트에서 기어이 생각나는 이름 석자

남편돈으로 사랑의 자물쇠를 사는 용기

몽마르트 언덕이라면 뭐가 떠오르세요?

순교자의 언덕? 예술가들의 스토리, 사랑의 벽이나..  실팔찌를 채워주고 빵대신 삥을 뜯는 흑형들을 떠올리기도 쉽죠. 경우에 따라  다양합니다.

저는 첫 파리에선 가난한 배낭여행자라 기념품을 사기보단 저기 앉아 팔아도 모자랄 형편이었던지라

10년전, 3년전..갈수록 기념품종류가 진화하네요. 둘째 이니셜 기차득템


금이 없어 구경만 하고 온 자물쇠 생각이 납니다.

이젠... 뭐 마냥 아름답기 힘든 애물단지로 전락했지 만요. 랑의 자물쇠는 다른 관광지에서도 골칫 덩어리 이긴 마찬가지예요. 


처형위기에 처한 이유인즉.

그랜드캐니언에서 사는 대머리독수리의 일종인 콘도르가 버려진 열쇠를 삼키면서 탈이 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출처. 그랜드캐니언국립공원


“사랑은 강하지만 우리 절단기는 더 강합니다.”


미국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이 최근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경고 문구예요. 그랜드캐니언을 찾는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사랑의 자물쇠'를 철조망에 걸면서 부작용이 생기자 예고 없이 철거하겠다는 겁니다. 관광객들이 가족이나 연인의 이름 혹은 이니셜을 적은 사랑의 자물쇠를 철조망에 걸어 잠근 뒤 아무도 열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로 열쇠를 협곡으로 버리면서 부작용이 생긴 거죠. 의미 부여한답시고 손 하나 까딱한 일이 콘도르의 목숨과 직결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예고 없는 철거를 환영합니다.


파리도 사정은 비슷해요. 센강의 퐁데자르 다리에 70만 이상의 자물쇠 무게로 다리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면서 2015년 자물쇠를 강제로 철거한 바 있어요.  없어 못 산 게 되려 다행인가 싶습니다.

자물쇠를 거는 행위도, 그것을 걷는 행위도 의미는  할게요. 둘 다 사랑이니까요.





대개 파릇파릇한 젊음 무기 삼아 하필 맹세란 걸 하죠. 너 아니면 안 된다. 죽는 날까지 사랑하겠다. 죽어서도 너만을! 이라며 터진 입이라 우선 뱉고 보니까요. 빠르면 신혼여행지에서 그 사랑 물러버리는 참사, 오래 견디면 3년 정도 연장 운영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운 좋으면 (?) 사랑과 의리 사이, 경계가 희미해진 줄 당사자들도 모른  뚜벅뚜벅 삽니다. 그럭저럭 애 기저귀부터~ 급기야 배우자 기저귀까지 두루 갈아주다 생을 마감한다 해도 이렇다 할 평가는 삼가겠습니다.

인내차원 말고요. 몹시 설레 시도 때도 없이 설레발쳐 대는 사랑의 경우는요. 남다르더군요.

사랑이란 걸 꽤 지속적으로 유지해 가는 사람들의 비결을 가만 봤더니, 오호라!

나름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사랑할 대상을 수시로 갈아타는 지혜를 장착했다는 점입니다. 지루할 여지가 없겠죠.


웨딩마치마치니. 결연했던 감정에도 함께 브레이크가 걸리고요. 바짓단 해지듯 타오르던 불씨가 명을 다할 즈음, 기름 붓듯  "아이"라는 대상으로 라인을 갈아탑니다.

 기저귀 졸업시점이 부모역할의 종료조건이기 어려우니, 겨우 사람 만들어 시집장가보내고도 연애란 끝날 줄 모릅니다.  떠나보내면 잊힐 줄 알았건만, 기껏 끝낸 .

황혼육아라는 이름의 돈 안 되는 초과근무로 연장되기 십상이니 원. 그 인생 겁나 빡셉니다. (강 건너 불구경. 딸아! 난 아니야, 너로 충분했다)


운 좋은 경우, 아이들이 독립한 후 이제 좀 살만하다 싶으면 지난 인생에 박수를 보내고, 현재에 갈증을 느껴요. 대개 새롭게 사랑해 볼 대상을 이제라도 용기 내어 찾죠. 욕은 먹을지언정 그거 참 바람직합니다.



외도란 게 그렇잖아요? 누굴 사랑할지 곰곰이 기준을 두고 저울질하진 않지만.

어느  갑자기 영화처럼 동공 잔뜩 지진을 느끼면 그만. 띠용~~~~~! 바로   사람이야!


이미 내 마음속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 기어이 찾아낸 듯 말이죠. 남편과도 공유하지 못한 첫눈에 반하는 운명 같은 상대. 남들이 외도라곤 하는데 실상은 진짜 사랑 찾은 거라 봅니다.

비난은 넣어두세요.



몽마르트르 사랑의 언덕에 오르 그 옛날 이루지 못한 첫사랑 함○주, 이름 석자 말고.

또 다른 석자를 새깁니다.

터무니없는 가격 부르기도전에 포장부터뜯어 손에 쥐어주는 사나운 흑형에게 10유로 고이 쥐어줍니다. 펜이랑 셋트인줄알았으나 현금과 함께 빠르게 뺏어가네요.


어째서 몽마르트르냐 그 석자가 왜 이곳에 새겨지는 편이 낫냐 물으신다면.. 제가 이래 봬도 양심은 있어서요. 예술가의 다리도 좋고 에펠탑도 로맨틱하겠으나 절단의 위험도 없고, 이왕이면 하중을 견디라고 할 민폐랄 것도 없는 언덕 위에 고이 걸어두고 갑니다. 더욱이 한국에선 다소 애매하지만 단편에 천부적 재능을 지닌 소설가 마르셀 에메부터 고흐의 거처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이 머물다간 곳이 바로 이곳 몽마르뜨니까요. 




몸은 유럽인데, 마음은 용산이라 매번 잠  이루는 촌 X은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새롭게 사랑에 빠진 이들과의 결의에 찬 꿈을 떠올립니다.


지금은 전국 각지 흩어져 본의 아니게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불금을 함께 하고 있지만..

 노년의 금요일 밤엔 우리, 함께 차린 살롱에 둘러앉아 서로의 얼굴에 침도 튈! 만큼 더럽게 가까운 거리에 마주 앉아 있기를

늙고 나이 든다는 것은 거스를  없는 노화라 언제고 찾아오겠지만..

 함께 읽고 함께 글을 쓰려는 우리의 뜨거운 마음은 해를 거듭할수록 봄을 맞이하듯 젊고 건강해질 거라고 


이 두 가지 소원을 소리 내어 빌고, 누구든 와서 볼 수 있도록 걸어두고 왔습니다.


우리 이름 석자.

사브작, 그곳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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