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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Jan 25. 2024

8시간 후, 집 나갈 준비를 합니다.

옷가지는 기본이죠

뭐 해 지금? 집 나가게?


 새벽.

제법 잔잔하나 소리가 새어 나갔는지.. 

남편이 깼다. 건넨 말은 짧은데 이미 첫 문장에 심장 뜀박질 중.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숙명]의 여주인공 미사코.

사랑했던 유사코의 부탁으로 수사에 실마리를 풀 문서를 몰래 손에 쥐려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남편 아키히코의 목소리에 흠칫 놀란다.


거기서 손 떼!


기겁했다는 점에서 지금 나와 닮았고,

하고 있는 모양새가  쪽이 좀 더 정신 사나우니, 그 점에선 대조적일 테다. 지난 금요일 북클럽 발제문 3번을 보며 그를 떠올렸다.


사브작 북클럽의 2024  2번째 도서, 숙명의 발제문 중



싸늘한 인물, 키히코 하면 남편이 생각나더니만,

모야! 저도 따라 읽더니..  결국 빙의된 건가.


25일  스케줄을 뻔히 알면서 또 잠  이루고

미친 여자마냥 신나서 하고 있는 짓을 보아하니 저거 단단히 돌았구나~~ 느꼈는지도. 그러거나 말거나 :(


쟤 요즘 왜 저러니.


어제 이 시각에도 글을 썼었다.

하루 전엔? 레깅스를.

오늘은 옷 가지를 챙긴다.

그래. 맞다. 집을 나가기 위해!

(그럼 내일은 뭘 챙길까. 이쯤에서 한 번쯤, 정신 좀 챙겨야겠지. 돌진 않도록 ㅋ)


밝은 밤, 배를 채우기엔 늦었으니 이거라도



아직 깨끗하고, 값도 나가서 버릴 마음은 도통 들지 않아 바라만 보던 옷들을 챙긴다. 도통 마음이 차지 않아  옷장만 채웠던 시기, 무얼 사 두었는지도 잊은 채로 살아왔다. 지나가다 예쁜 가방이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갑을 열고 그 길로 친구에게 던져주고 왔었다. 멋진 코트가 있으면 생각 없이 냅다 사고는 커서 못 입는다 둘러대고 늘씬하고 키 큰 고모에게 건넸다.

그렇게 내가 물질을 거두는지, 물질이 나를 조종하는지도 모르게 살았던 때가 있었다. 사피엔스에서 말하는 농업혁명에 대한 신박한 관점과 유사하달까. 옥수수가! 밀이! 기어이 인간을 움직이도록 하듯 말이다.



열 명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158, 몹시 비루한 신체 사이즈라 유리구두의 주인공을 찾기야 어렵겠지만 기쁜 마음으로 스탠드를 밝혔다.  밤.

둘째 아이 발 밑에 캐리어를 펼쳐두고, 남들은 책을 읽을 때나 밝힐 스탠드불을 빌려 차곡차곡 짐을

싼다. 아침이면 집을 나갈 여자는 이미 설렌다.


큰사이즈 캐리어에 더 이상 넣을공간이없어 드레스는 따로들고 가야겠다



대추차가 오기 전이라 잘 자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거라 위안 삼고 3일 후쯤이면 그 덕에 취할 숙면도 함께 기대해 본다. 내일 상당 수의 옷들을 수거함에 넣고 올지 언정 한 두 개라도 누군가 기꺼이 취한다면 흡족한 귀가를 하겠지.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새것은 아니지만, 이제 막 백화점에서 사 들고 온 선물처럼 전해야겠다.

뭘 입던 걸 가져오고 난리냐 타박줄 이들이 절대 못 되니까. 이것저것 내게 쓰임 받지 못하나 생판 ''주기는 아까워 고이 모셔둔 것들을 가득 담았다.


마음만은 ''이 아닌 모양이다. 

그들이 내게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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